[리뷰] 죽은 자에게 보내는 애도와 살아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동화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국립극단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1년여의 창작 기간을 걸친 작품 개발 프로젝트 [창작 공감:작가, 연출] 본 공연의 마지막 작품인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를 상연 중이다. 이 공연은 기록의 의미가 남다르다. 아마 공연 기록자에 따라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무대 공연은 같은 대본이지만 매 회차 조금씩 다른 변주를 한다. 원 캐스트가 아닌 더블, 트리플 캐스트의 경우는 변수가 더 복잡해진다. 어떤 캐스트, 어떤 배우 조합이냐에 따라 공연의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무대 공연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그것은 무대 공연이 갖는 큰 매력이다. 설사 이 연극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천차만별이라 하더라도 놀랄 것은 없다. 이야기가 품은 다양한 이슈, 환경오염, 동물권, 사회적 차별과 소외 등 어떤 것이라도 각자의 심장을 건드리는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원의 기억에 들어가 시공간을 종횡무진 돌아다녀야 한다

무대 위로 이 연극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다. 이 작품을 필자는 다중 인칭 시점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것 같다가도 서술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등장인물은 사람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다. 사람이었나 싶으면 다시 동물이 되어 대사를 던진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의 이동도 자유롭다.

우리가 배운 것에 따르면 연극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제약이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르다. 2044년이었다가 1997년이었다가 다시 2044년이 된다. 관객은 영원의 기억에 들어가 시공간을 종횡무진 돌아다녀야 한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면 아이들은 순간순간 변하는 시공간에도 찰떡같이 이야기를 알아듣고 만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이들의 눈으로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된다.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국립극단


도시에서 밀려난, 삶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

이곳은 영원의 방이다. 방 한가운데에는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노트북이 켜져 있다. 모니터에는 무언가를 쓰려고 했는지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떠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영원의 앞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동화’가 마주하고 있다. 영원은 동화 작가다. 어느 날 지혜는 영원에게 작은발톱수달의 이야기를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비가 오던 날 개천에 사는 수달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나갔던 지혜는 성북천 한 산책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영원은 지혜의 소원대로 동화를 쓰기로 결심한다.

시간은 1997년 지혜의 젊은 날로 돌아간다. 지혜는 재활용 선별장에서 플라스틱 분리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지혜의 작업 공간에 자동화 ‘기계’가 배치된다. 지혜는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분리 작업을 하는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지혜의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정현은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의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설상가상 정현은 뜨거운 화마와 힘겹게 싸우다 죽게 된다.

별보다 더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구슬이 비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 도심 개천에는 작은발톱수달이 산다. 도시의 쓰레기가 밀려 내려와 둥둥 떠다니는 하천 구석 어딘가를 둥지 삼아,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수달이 산다. 가끔 도시 개천은 범람한다. 쏟아지는 비에 개천이 범람하면 수달의 둥지도 떠내려간다. 도시에서 밀려난, 삶에서 밀려난 존재들을 품고 있었던 구슬도 떠내려간다.

이야기는 사람과 동물을 오고 간다. 지혜는 지혜 수달이고 정현은 정현 수달이다. 영원은 영원 수달이다. 지혜와 정현은 세상에 쓸모가 다해 버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부족한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며 살아갔다.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엉켜있는 수달의 모습은 서로의 손을 잡고 크고 작은 고난을 버텨내는 우리와 닮아 있다. 마지막 영원 수달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행히 영원의 동화 <작은발톱수달과 구슬>은 진행형으로 끝이 난다.

별 보다 더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구슬이 비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범람하는 하천이 토해내는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영원도 영원 수달도 버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 동화가 삶을 치유하는 모험담이 되었기를 바라게 된다.

국립극단의 [창작 공감:작가, 연출]전의 마지막인 이 작품은 배우 경지은, 김광덕, 김수량, 김시영, 백소정, 이미라가 함께 한다. 이번 공연은 전 회차 공연의 이해를 위한 지문이 낭독되어 시각 장애인, 비시각장애인 모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4월 28일 ~ 30일 공연에는 한글 자막과 한국 수어 통역이 함께 제공된다. 또한 추후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을 통해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공연날짜 : 2022년 4월 20일(수) ~ 5월 1일(일)
공연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공연시간 : 평일 19시 30분/토, 일 17시/화요일 공연 없음
러닝타임 : 115분
관람연령 : 14세(중학생)이상 관람가
창작진 : 작 배해률/연출 이래은/드라마트루기 이오진/움직임 손지민/무대 소품 장호/조명 신동선/의상, 오브제 김미나/음향 임서진/분장 장경숙/조연출 심지후
출연진 : 백소정, 경지은, 김시영, 김수량, 이미라, 김광덕,
문의 : 1644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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