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세계정세 격변기,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선택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⑤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 금지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동참은 각국의 결정 사항이라고 밝혔다. 2022.03.09. ⓒ뉴시스


격변기에 등장하는 윤석열 정부

현시대를 체제전환기, 혹은 격변기라고 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그 이전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변화가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표현일 것이다. 짚어보면 우리 삶 속에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신냉전시대 도래, 금융세계화의 붕괴 등 다양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격변의 한가운데 1990년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강력한 군사력으로 온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의 단일 패권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 자리 잡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 돈을 내라고 윽박지를 때, 혼자 기후협약에 동참하지 않을 때, 멕시코 접경지역에 긴 장벽을 쌓을 때, 중국과 무역전쟁을 펼치며 긴장을 높여갈 때 이미 조짐은 보이고 있었다. 바이든 정부 들어 기약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쳐 나오는 모습이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 이제 미국의 패권은 도처에서 저항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중갈등이 격렬해지고 미국과 북의 대립이 한판 싸움으로 치달아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 정부의 실정에 기대 아주 근소한 표차로 등장했다. 그가 용산에서 임기를 시작하든 잠자리를 외교부 공관으로 하든 필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민족의 힘을 모아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아둔한 지도자의 등장은 늘 외침과 전쟁을 불러왔고 많은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윤석열의 공약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시절 20대 안보 공약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및 남북관계 정상화와 공동번영 추진’, ‘한미동맹 재건과 포괄적 전략동맹’, ‘상호존중에 기반한 한중관계 구현’, ‘북핵 미사일 강력대응’ 등을 내세운 바 있다.

첫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은 문재인 정부 실패의 답습 정도가 아니라 훨씬 후퇴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일방적인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북과 합의로 이끌어낸 바 있다. 이것은 CVID를 앞세운 미국식 일방통행을 적극적으로 가로막아 나서 설득하며 이룬 성과이다. 선핵포기와 이에 따르는 보상 및 안전보장의 약속은 리비아, 이라크의 참혹한 결과를 잘 알고 있는 북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이다. 더욱이 북은 수소폭탄과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 갈 수 있는 운반체를 갖고 있는 엄연한 핵보유국이다.

이미 CVID는 실패했다. 이것을 다시 들고 나오면 윤석열 정부는 대화조차 해보지 못하고 남북관계의 완전한 파탄에 봉착할 것이다. 북은 여러 차례 일방적 선의는 없을 것이며 비본질적 교류협력보다 근본적인 정치군사적 대립을 매듭짓자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대화의 전제도 만들지 못한 채 관계정상화와 공동번영의 제안은 그 누구에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북의 조롱을 불러왔던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의 판박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얼마 전 필자는 언론 기고를 통해 지난 문재인 정부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만 강조하다가 남과 북이 맺은 많은 합의사항을 단 한 가지도 이행하지 못한 무능과 철학부재의 정부”였다고 질타한 바 있다. 그런데 도리어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재건이라니? 현재 한미동맹이 무너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우리는 한미워킹그룹의 사사건건 방해와 한미연합훈련이 불러온 긴장과 대립이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이룬 소중한 합의사항을 어떻게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엄밀히 보면 그동안 남북관계는 한미동맹의 약화로 꼬여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 굴종적이라 파탄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관계를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이것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통용되었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넘어 완벽하게 미국과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저 태평양 건너 미국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훨씬 더 깊이 얽혀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말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윤석열 정부의 공약에는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한중관계 구현’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정립에 대한 말풍선이 아니라 행동의 언밸런스를 시정하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시절 3불 정책 재고 및 사드 추가 배치를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인내심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중국의 안보를 상당한 수준으로 위협하는 내용을 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그는 TV토론에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허용가능’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날 언론은 이것을 대서특필하기보다 우크라이나 젤린스키의 아마추어리즘을 제기한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더 크게 문제 삼았다. 전형적인 물타기였다. 그러나 이 자위대 발언은 사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를 구축하고 돌격대로 한국을 세우고 싶어 하는 미국의 오랜 요구에 답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북아 신냉전을 더욱 부추기고 대립과 갈등의 화약고로 한반도를 등장시킬 것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가 취임 초, 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버금가는 매국적 합의를 ‘일본과 새로운 관계 정립’이라는 미명 아래 단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넷째, 윤석열 당선자는 ‘북한의 미사일에 강력대응’ 일환으로 미국의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핵우산 실행력 강화) 및 한국형 3축 체계의 조기부활을 공약한 바 있다. 킬체인은 선제타격론의 근거로 원점 타격을 말한다. 현실성 여부를 넘어 이런 무모한 발언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5일 열병식에서 ‘북의 근본이익 침해의 우려가 발생하면 핵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원래 모든 전쟁은 먼저 말로 싸우고, 경제적 압박을 하고, 군 무력을 동원한 훈련이 벌어지고,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무력충돌을 하기 마련이다. 전쟁의 위험이 커질 수 있는 발언을 특히 대통령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참 걱정스럽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월 10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제공

진보진영의 대응

올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전망은 불투명하고,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미국의 신냉전 정책은 한반도에 새로운 전쟁의 먹구름을 불러올 만큼 위험하다. 미국은 올 2월 대북강경파로 알려진 필립 골드버그를 주한 미 대사로 지명했다. 북은 올 초부터 지속적으로 다양한 전술유도탄 및 ICBM 발사를 하며 미국과 한판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이에 미국도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진보진영은 윤석열 정부의 겁 없는 결정으로 인한 파국 또한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인도의 비협조로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쿼드에 덜컥 뛰어들거나, 사드를 재배치하며 중국과 일촉즉발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제재에 적극 동참하여 파멸적인 관계로 나가고 일본과 동맹 체제를 구축하며 미국의 MD체계에 편입되어 북과 극단적 대결자세를 취할 가능성은 더욱 크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진영은 지금이야말로 기다리며 촉구할 때가 아니라 투쟁해야 할 때가 분명하다.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신냉전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고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대미추종과 모험주의적 행동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예속적 한미동맹 재편,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군사력 증강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등 전면적인 반전평화운동 및 남북합의사항 이행운동을 펼쳐야 한다. 가야할 길이 참 험난하다.

이미 국민들은 미국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남북관계의 협력을 가로막고 주권을 침해하고 평화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미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힘으로 개척해나가려는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성주 사드기지 배치가 증명하듯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의 핵심이다. 한반도 위험이 커갈수록 필자는 이제 진지하게 미군주둔에 대한 근본문제의식을 제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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