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을 앞둔 지난달 29일 검찰이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해 9~11월 코로나19 확산 위험에도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검찰이 ‘반노동 기조’를 갖는 윤석열 정부에 ‘과잉 충성’하느라 검찰권을 남용했다고 날을 세웠다. 집회·시위 이후 수개월이 지난 지금 뒤늦게 구속 수사를 벌일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검찰이 노사 합의로 수개월 전 파업을 종료한 노조 지도부에 뒤늦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저지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이번 구속영장 역시 법원에서 가로막할지 주목된다.
지금, 갑자기, 구속 수사?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 최국진 조직쟁의실장은 오는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다.
혐의는 집회시위법 위반(미신고·금지통고 집회 주최), 감염병예방법 위반, 일반교통방해다. 구체적으로 윤 부위원장 등이 당시 구속기소된 양경수 위원장의 직무대행으로서 지난해 10월 20일 총파업,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강행했다는 혐의다. 서울종로경찰서가 지난 25일 윤 부위원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9일 이를 청구했으나, 검찰 요구로 경찰에서 영장을 신청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영장청구권 행사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검찰은 범죄의 중대성, 도망할 염려, 증거인멸의 우려, 재범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당시 집회·시위가 진행된 상황에 대해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로 휴직·해고·차별 등으로 일상이 무너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총파업 등 대규모 집회를 벌이겠다고 밝혀왔다. 그동안 민주노총 집회·시위로 확진자가 발생한 사례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혐의에 명시된 시기에 스포츠 경기·콘서트·결혼식 등에 대한 방역지침이 완화하면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이 시작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윤 부위원장은 통화에서 “세종 정부청서나 한강 고수부지 등 인적이 없거나 교통량이 적은 곳에서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모두 불허됐다”며 “공연, 스포츠 경기 등은 풀렸는데 민주노총 집회만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를 지방정부 고시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관련 감염병예방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낸 상황”이라며 “우리가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한 게 아니라 우린 도로로 내몰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시점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다. 이미 양경수 위원장이 지난 5~7월 대규모 집회를 연 혐의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의 중대성이 크지 않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그렇다면 중형 선고를 예상해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청구 사유도 검찰 주장일 뿐이다.
검찰은 영장청구서에 “국가방역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며 감염병예방법 위반의 중대성을 강조했지만,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대상이다. 수사기관에서 관련 사진을 확보하고, 윤 부위원장 등의 휴대전화 포렌식까지 완료한 상황에서 증거인멸의 우려 역시 과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2일 성명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어떤 경로로 전달이 됐어야 하는가”라며 “결국 유일한 수단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법이 정한 구속 수사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영장이 청구된 두 명은 그 신원과 주거지가 확실하고 그간 진행된 여러 차례의 소환조사에 응해 도주의 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의 영장신청과 영장청구는 그 저의가 뻔하다”라며 “새 정부의 반노동 기류에 편승하고 소위 ‘검수완박’ 국면에서 자기 조직의 이익과 위상을 지키고 세우려는 경찰과 검찰의 이번 영장신청과 영장청구는 이들 기관이 보여줄 예고편”이라고 꼬집었다.
“법원, 검찰 영장청구권 남용 제동 걸어야”
오는 4일 법원 판단을 예측해볼 수 있는 사건이 최근 있었다. 지난해 9월 파업 과정에서 파리바게뜨 등 SPC그룹 가맹점의 제품 운송을 막은 혐의를 받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달 26일 기각됐다.
당시 화물노동자들은 업무 과중을 이유로 증차를 요구하며 48일간 파업을 벌이다 사 측과 합의하면서 파업을 종료했다. 그러나 검찰은 노사 합의가 종료된 지 수개월이 지나 갑자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는데,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하면서 검찰의 무리한 영장청구가 사실로 인정된 셈이다.
이와 관련 윤 부위원장은 “보통 노사 문제에 법의 과도한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노사 합의로 파업이 끝난 지 수개월 뒤 영장이 청구된 사건”이라며 “긴급한 사유가 있거나 증거인멸, 도주우려가 없는데 굳이 영장청구권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번에도 법원이 무리한 검찰권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국가권력의 부당한 남용과 집행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오는 4일 구속심사를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