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우리가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 외치는 이유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⑥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pixabay

나오미 클라인의 말대로 지구가 불타오르고 있다. 작년 6월 북반구의 여름 캐나다가 50도 폭염에 타들어 갔고 올해 1월 남반구의 여름에는 호주가 50도 폭염에 익어갔다. 모든 대륙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대규모 산불에 도시 하나, 나라 하나가 사라지기 일쑤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것은 지구뿐만이 아니다. 다른 한편에선 기후위기에 맞서는 전 세계 청년들의 거대한 운동이 타오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기후 운동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구호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다.

이 글은 한국사회의 진보의 길로 시스템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을 소개하고 동참을 제안하는 이야기다. 이 글은 가장 먼저 기후위기가 왜 흔히 아는 것처럼 ‘인류 전체 국민 모두의 일’이 아닌지를 말한다. 그리고 위기를 만들어 낸 지금의 정치 시스템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 위기 해결이 불가능한 이유를 짚는다. 지금의 파괴적이고 불의한 시스템을 지배하는 소수의 거대기업과 정치 엘리트들의 기만적인 기후대응도 폭로한다. 그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재앙과 멸종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멸종과 학살에 맞서는 기후정의 운동을 제안한다.

기후위기는 억압과 착취, 불의와 불평등의 문제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환경문제에 있어서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논리가 사회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우주선 지구호’라는 개념은 이러한 논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례다. 하나의 우주선에 타고 있는 승무원으로서 개개인은 인류 전체가 직면한 공통의 기후위기에 대해 동일한 책임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당사자를 ‘인류 전체’로 뭉뚱그려 접근하는 태도는 ‘신맬서스주의’로 이어진다. 초기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서 수많은 노동자 빈민들이 가난 속에서 죽어 나가는 이유는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던 19세기 경제학자 맬서스의 유령이 다시 돌아왔다. 오늘날 남반구의 인구는 너무 많아 기후위기 가운데 먹여 살릴 수 없다. 이른바 우주선의 탑승 가능 인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처럼 ‘신맬서스주의’는 필연적인 자원고갈과 생태위기를 야기하는 인구 증가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맬서스주의’는 기후위기의 실제 주범들이 자신들의 학살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유포하는 사기극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통계자료를 통해 바로 알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상위 10%는 무려 전 세계 부의 절반을 독점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 탄소배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반면 과잉인구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 세계 인구 절반인 하위 50%가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탄소의 채 10%밖에 되지 않는다. 탄소배출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건 상위 10%의 선진국 부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많은 탄소를 배출해도 기후재앙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나머지 90%의 평범한 사람들, 가장 먼저 죽어가는 것은 남반구에 사는 하위 50%다.

발생 원인으로부터 피해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를 둘러싼 전 과정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다. 대다수를 희생시키고 죽음으로 내몬 대가로 소수의 부자들이 천문학적인 탄소를 끝없이 배출할 수 있는 불평등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진짜 원인이다. 이제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보다 정확히 짚어 볼 차례다. 현재 기후위기가 ‘인류 전체의 위기’라는 상식만큼 보편적인 상식은 기후위기가 ‘기술과 환경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이므로 기존의 탄소기반 기술을 새로운 탈탄소 녹색기술로 전부 ‘대체’하고 ‘교체’하면 된다. 이에 따라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로는 신기술을 개발할 ‘기업과 기술전문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기후위기가 ‘기술과 환경의 문제’라는 발상은 ‘녹색성장주의 또는 녹색자본주의’에 근거한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기존의 석탄발전소를 핵발전 또는 태양광 발전으로 전부 대체하거나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수소전기차로 전부 교체하는 이른바 ‘녹색성장’으로 기후위기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색성장주의’에서 기후위기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을 전례 없는 끔찍한 재앙과 학살로 몰아넣을 위기가 아니다. 위기는 그저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자본의 투자처, 상위 10%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녹색성장주의’는 기후위기의 진짜 주범인 성장 그 자체를 포장하는 사기극이자 일종의 판타지다. ‘녹색’성장은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선량한’ 히틀러와 같다. 기후재앙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GDP 성장경제는 그 자체로 파괴적이다. 천문학적인 화석연료 사용과 그에 따른 탄소배출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다. 우리는 그 아래에 존재하는 거대한 빙산의 실체를, 기후위기의 진짜 원인을 보아야 한다. 천문학적인 에너지 소비와 천문학적인 자원 소모, 끝없이 폭주하는 천문학적인 생산이 있다. 성장주의가 만들어 낸 공룡 경제가 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자동차 개수는 약 20억대로 추산되며 연간 신차판매 중 전기자동차 비율은 여전히 3%에 불과하다. ‘녹색성장주의’에 따라 20억대의 자동차를 전부 새롭게 생산하기 위해 전 세계 철강석을 고갈시키는 데에는 초대형 내연기관 광물트럭을 굴려야 한다. 산업공정 부문 탄소배출 1위인 철강산업은 규모가 배로 늘어나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석탄발전소 역시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한다. 한편 2020년 기준 전 세계 에너지 소비 중 핵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에 불과하다. 여전히 에너지의 85%가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된다. ‘녹색성장주의’에 따라 화석연료 에너지의 단 3분의 1만을 핵에너지로 대체하더라도 대략 핵발전소 930기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 발전용량이 3~4배 작은 신형모듈원자로(SMR)의 경우 3~4000기를 건설해야 하는 셈이다.

‘녹색성장주의’는 사기극이자 일종의 판타지

기후위기는 1.5도 티핑포인트라는 제한된 시간이 있다. 이미 산업화 이후 1.1도가 상승한 지구온도가 1.5도를 넘어설 경우 지구는 찜통계곡에 빠지기 때문이다. 여태껏 자기조절능력을 통해 온난화를 억제하던 지구는 1.5도라는 한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스스로 탄소를 뿜어대고 온도를 끝없이 높인다. IPCC와 과학자들은 1.5도 도달을 억제할 탄소 잔여예산이 채 10년도 남지 않았다고 매섭게 경고한다.

기후주범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거대기업과 정치 엘리트들이 추진하는 녹색성장은 기후위기를 막기는커녕 가장 빠르게 남은 탄소예산을 고갈시키고 1.5도 붕괴를 향해 질주하는 지름길이다. 파괴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은 채 기후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성장은 결코 멈출 수 없다. 자본주의는 늘 낭비를 부추겨 소비량을 그리고 생산량을 어마어마하게 늘림으로써 무한한 이윤 창출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 역시 파괴적이고 불의한 성장시스템을 공고히 하는데 앞장선다. 한국의 경우 극우 정치세력인 국민의 힘과 자유주의 보수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사회의 오직 둘뿐인 정치적 선택지로 존재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전략과 방식을 이용해 궁극적으로는 함께 자본주의 성장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계와 이에 투자한 거대금융자본의 손을 든 반면, 이번 윤석열 당선인은 핵 산업계와 원전 마피아의 손을 들 뿐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당사자인 농민들을 농지에서 내쫓은 자리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태양광을 깔도록 지원한 반면, 이번 윤석열 정부는 지역 주민들을 핵 재앙의 위협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원전 마피아들의 천국을 제공할 뿐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이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기후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다시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구호를 생각한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기후위기에 맞선 결석시위를 진행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의 작년 공식 슬로건 역시 “시스템을 전복하라 Uproot the System”였다. 시스템을 뒤엎을 자들과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될 자들은 누구인가. 한 편에는 한여름 등이 익어가는 건설노동자들과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쪽방 주거촌 독거노인들, 폭염과 가뭄에 망한 농사로 빚더미에 나앉는 농민들과 실업난, 비정규직 인생에 시달리며 천정부지로 오를 식량 가격에 고통받을 청년들이 있다. 다른 한 편에는 초국적 기업과 거대금융자본, 거대 원유회사와 신규석탄발전소를 건설 중인 재벌기업, 그들의 기후범죄를 적극 보장하고 지원하는 거대 보수 양당이 있다.

한편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의 2019년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급동원과 같은 규모의 전 지구적 동원에 실패할 경우 2050년 전에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생존 불가능한 장소로 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산 자(The alive)와 죽은 자(The dead)의 땅이 나뉠 것이다. 더 안전한, 아직까지는 안전한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과 그 경계를 넘을 수 없는 자들이 나뉠 것이다.

5월은 광주민중항쟁의 달이다. 1980년 광주에서는 군부독재의 폭력과 학살에 맞서 평범한 시민들과 대학생, 청소년들이 싸웠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아이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에 그들은 피를 토하는 분노로 저항하지 않았을까. 2022년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성장시스템의 조용한 학살 앞에 서 있다. 곧 닥쳐올 학살 가운데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존과 미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선 역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시대 학살자들에게 맞서 파괴적으로 불의한 시스템을 전복하기 위한 싸움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다양한 단체와 운동들이 모여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을 출범시켰다. 나와 대학생기후행동 역시 함께했다. 대학생기후행동의 경우 대학생과 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기후정의동맹 세력을 구축해나가려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한국에서도 시스템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 운동이 불타오를 수 있도록 나와 당신이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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