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억압과 차별을 넘어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 ‘연속성과 교차성’

책 ‘연속성과 교차성’ ⓒ갈무리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가능할까?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마치 오지 않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처럼 낡은 예언으로 들리고,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호소는 마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누구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하는 것 같다. 마르크시즘은 이제 강단의 학자들에게서만 박제된 채 만날 수밖에 없고, 변혁 이론으로 주목받았던 마르크시즘은 이제 현실 세상에서 힘을 느끼기 힘들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20년 전의 기억이 있다. 바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MBC TV ‘백분 토론’을 통해 펼쳐진 서울시장 토론회 장면이다. 당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모 진보정당의 후보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에게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고, “당선이 되면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 “사회주의자인 내가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에 대해 뜻밖에도 이명박 후보는 “좋은 일이다. 21세기는 다양한 사회고 진보나 사회주의도 다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얼핏 듣기엔 다른 사상을 향한 포용처럼 들리는 이 말의 밑바탕엔 ‘사회주의’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시즘에 대한 일정한 무시도 깔려 있었다.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는 기득권 세력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간은 더욱 흘러 20년이 지났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첫 원내진출 등으로 잠시 다른 세상을 향한 꿈에 부풀었지만,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받아든 진보세력의 성적표는 과거의 희망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처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과거의 이론과 달라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통’이라는 이유로 과거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새롭게 변화된 현실을 풀어내기 위해 새롭게 혁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책 ‘연속성과 교차성’을 출간한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을 출간하기 이전에 전지윤을 주목하게 된 건 그가 SNS 등을 통해 이른바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인사들이, 스스로 사상의 자유를 중시한다고 외쳤던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종북몰이를 당했지만, 침묵했다. 나와는 상관없다며 선을 긋는 등 외면할 때 그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 책 머릿말에서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좌파가 더욱더 철저하고 일관되게 맞서 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편견과 정치적 고려를 떠나서 오로지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를 봐야 한다는 강조 속에 쓰인 이글의 초안을 쓸 당시만 해도 내 사상적 기조는 근본적인 점에서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견해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선후배, 동료들과 생산적인 토론보다는 파괴적 결말에 이르게 되었다. 매우 안타깝고 쓰라린 경험과 기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류를 인식하거나 교정하지 못한 채 계속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이론적 문제점들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민은 여러 쟁점으로 더욱 확장되어 가기 시작했다”면서 “나는 전통의 충실한 고수가 아니라 이론적·정치적 현신을 주요한 방향으로 설정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적 혁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먼저 ‘억압과 차별’ 문제를 꼽았다. 2018년 이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이 보여주듯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저자는 그 양상과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사회운동 사회의 성폭력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보고 문제의 해결에 직접 관여하게 되면서 ‘억압과 차별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관점이 경직되어 있고 현실과 잘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기존의 관점을 혁신할 필요를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의 1장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 모순의 교차와 투쟁의 결합」에서 저자는 ‘생산 현장에서의 착취가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조직 노동자들의 산업 행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장 「생태 사회적 변혁 이론의 재구성, 하나의 시론」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들이 남긴 생태학적 유산들을 검토한다.

3장 「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 ― 새로운 투쟁의 도약을 위해」에서 저자가 고찰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에 가져온 변화와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다.

4장 「사회 변혁과 민주주의 ― 재평가와 혁신을 위한 시도」는 사회변혁과 민주주의의 관계,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경험과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 사회운동과 변혁조직의 민주적인 건설과 운영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를 검토한다

이 책의 5장 「마녀사냥과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계급투쟁」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무기였던 종북몰이 마녀사냥이 내란음모 사건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그 뿌리가 2012년 소위 ‘진보당 경선 부정 사태’에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당권파에게 새겨진 부정적 낙인이 이후 마녀사냥에서 희생자들이 별다른 방어를 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분석한다. 통합진보당의 탄생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세력의 무리한 통합과 그 속에서 싹튼 불신과 갈등이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보 진영의 분열과 갈등은 개선되기보다는 더 악화하거나 지속되고 있다. 더구나 이 당시에 나타난 우파 정치세력과 기득권 카르텔의 공격 수법, 검찰과 언론의 유착과 협공, 민주당의 타협과 굴복, 진보·좌파 진영의 혼란과 분열은 지금까지도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기에 이 글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결론 「플랫폼 자본주의와 코로나 시대의 변혁 이론」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변화 경향을 검토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떠한 문제들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한다.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위험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재앙일 수 있다는 점도 살펴본다. 더구나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혐오, 낙인찍기, 마녀사냥을 무기 삼은 극우파와 파시즘의 위험은 더 큰 우려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팬데믹이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돌봄의 중요성과 팬데믹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새로운 계급투쟁의 물결에 주목한다.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가 그 바탕이 되어 여성, 소수자, 청년, 다인종 노동자들이 주도한 새로운 투쟁 물결이 등장하고 있고, 이것은 전통적인 정당과 조직들로 포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정치적 전통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재평가, 대담하고 끝없는 정치적 혁신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정통’에 대한 집착과 강조보다는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이단’적 상상력과 접근 방식, 그리고 투쟁과 쟁점의 분리, 단절이 아니라 그것의 연속과 교차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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