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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소환한 전력 판매 민영화②] 일본의 잃어버린 회사들

윤석열이 소환한 전력 판매 민영화

윤석열 정부가 전력 판매 경쟁 체제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더 커집니다. 민영화인지 아닌지, 앞서 경쟁 체제를 도입한 외국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3편의 기사로 살폈습니다.

① 개방은 혼란이었다
② 일본의 잃어버린 회사들
③ 꼼수의 허점


도쿄에 거주하는 하타노 후사코(66) 씨는 전력 판매 시장 개방 이후에도 신규 기업 요금제로 옮기지 않았다. ‘안정성’을 고려해 발전사가 운영하는 요금제를 유지했다. 도쿄전력을 쓰다가, 최근 가스 결합 할인을 받기 위해 도쿄가스 요금제로 옮겼다. 도쿄가스는 도쿄전력과 제휴를 맺어 가스와 전기와 결합된 요금제를 팔고 있다.

도쿄전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듬해 국유화됐다. 발전사이면서 전기요금도 판다. 도쿄가스는 미쓰비시 계열 신탁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일본 최대 가스 기업이다. 도산 위험이 적은 기업이라는 의미다.

하타노 씨는 “전기는 재해가 일어난다든지 회사가 도산해 멈춰버리면 정말 곤란하다”며 “전기요금이 회사마다 다르고 복잡해서 안정성 위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도 여러 전력 판매 기업에서 자기네 조건이 좋으니 옮기라며 직장이나 가정으로 전화가 온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늦은 더위로 전력 수요가 일시에 몰리면서 전국적으로 곳곳에 정전 사태가 일어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서울 마포구 한 건물의 입주민들이 정전으로 인해 냉방이 중단돼 삼삼오오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뉴스1


13일 도쿄상공리서치가 지난해 일본 내 신규 전력 판매 기업 137개 실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적자 기업이 102개에 달한다. 절반 이상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적자 기업 비중 추이를 보면, 2019년 24%, 2018년 30%였다. 지난해 들어 적자 기업이 급증했다.

조사 대상 기업 총매출은 1조 8,699엔으로 전년 대비 1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93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 증대-적자 확대’는 출혈경쟁이 심화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2016년 4월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한 이후 신규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6년여 만에 시장이 곪아버렸다. 줄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 기업분석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31개 신규 전력 판매 기업이 도산·폐업하거나 사업철수했다. 도산 기업만 보면, 2020년 2개에서 지난해 14개로 늘었다.

엘피오덴키는 오는 31일부터 전력 공급을 중단한다. 이번달 말까지 다른 기업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으면 전기가 끊긴다. 엘피오는 가스사였는데, 시장 개방 직후 전기요금제 판매에 뛰어들었다. 해당 기업 전기요금제에 가입한 14만명 소비자가 불편을 겪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카즈의 파워는 지난해 2월 영업을 중단했다가, 1년 2개월 만인 지난달 영업을 재개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에서 사용한다는 목적으로 2019년 설립된 기업으로 아키타현 가즈노시가 출자했다.

IT 대기업집단 라쿠텐그룹 계열사인 라쿠텐에너지는 지난 3월부터 신규 계약을 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도산해 회생절차에 들어간 에프파워(F-Power)는 최근 다른 기업에 전력 판매 사업을 양수했다.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유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져 경영이 악화했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전력 판매 시장 개방 이후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기존에 전기요금을 팔던 대형발전사가 규제요금을 유지하도록 했다. 규제요금은 경제산업성이 내부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개방된 시장에서 규제요금은 민간 기업 요금을 하향 압박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신규 기업 요금은 대형발전사 규제요금 대비 3~5% 낮게 형성돼있다. 규제요금보다 싼 요금제를 팔면서 가격경쟁에 나선 신규 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그만두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례적으로 사업 철수 위기를 딛고 재개한 카즈의 파워는 도매가격 등 원가에 연동되는 요금제를 파는 방식을 택했다. 저렴한 요금제 속에서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전력 판매 시장은 엄혹하다”며 “신규 전력 판매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 더해 전력 조달 비용 비대화라는 이중고에 노출돼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업계 내 재편과 도태 위험이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출혈경쟁을 이겨낼 만한 자금력을 가진 일부 대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이들 대기업이 독점하는 시점이 되면 정부 통제가 제한되는 민간 시장이 되는 것이다.

한전 적자인데 시장 개방 효과 있을까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일본 전력 판매 시장 상황을 한국에 대입해보자. 한국전력은 최근 적자 규모가 불어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6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냈다. 올해는 그 규모가 1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전 적자 구조도 일본 전력 판매 기업이 처한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력거래소에서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입하는 도매가격이 높은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니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전은 공기업인 만큼 전기요금 결정에 정부가 개입한다. 도매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마음대로 요금을 올릴 수 없다.

한전이 전기요금을 올리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한전 지분은 산업은행(32.9%)과 정부(18.2%)가 과반을 보유하고 있다. 이사 선임 권한이 정부에 있는 셈이다.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조정을 산업부에 신청하면, 산업부가 기재부와 협의 후 전기위원회가 심의한다.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 위원은 산업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한다.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 등 전력 원가 변동을 반영하는 데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은 공장 가동 비용 증가 등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한전이 전기를 싸게 팔고 있어, 민간 기업이 참여해도 추가적인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전의 기준 전력 공급 비용 요소를 보면, 전력 도매 구입 비용이 약 85%를 차지한다. 송·배전 비용은 10% 안팎이다. 판매 부문 원가는 3% 수준에 불과하다. 전력 도매 구입 비용은 국제 유가 영향이 커, 전력 판매 기업 노력으로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송·배전 비용도 한전에 사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지불해야 한다. 판매 부문에서 아무리 원가를 줄인다고 해도 한전보다 싸게 판 요금제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전력공가사 1분기 5조 7천억대의 영업손실을 비롯해 올해 17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내에서 시민들이 전력량계 앞을 지나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전망하는 한전의 올해 적자 규모는 17조 4723억원이다. 2022.05.10. ⓒ뉴시스

원가주의와 시장 개방은 별개

한전의 전기요금 조정은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여겨진다. 한전이 원가를 반영해 전기요금을 매겨야 다른 사업자도 수익을 내며 영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도 전기요금을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을 우려하는 쪽에서도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한전 적자가 쌓이면 전력 공급 안정성이 위협받는다. 극단적으로는 발전사에 전력 구매 대금을 내지 못해 전력 공급이 정지되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요지부동이던 전기요금에 대한 조정이 최근 가시화됐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 전기요금을 1kWh당 3원 올렸다. 8년 만의 인상이다. 지난달에는 1kWh당 6.9원을 인상했다. 오는 10월에도 한 차례 더 인상이 예고돼있다.

산업부는 2020년 12월 원가 변동 요인을 전기요금에 연동하는 방안을 담은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확정했다. 전기요금 구성 항목에 연료비 조정요금을 신설해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하도록 했다.

전기요금이 급등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정부가 연료비 변동분 반영을 유보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한전이 신청한 연료비 조정단가를 수용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전력 소비 절감 효과도 있다.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을 과다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시각이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이라는 게 소비를 결정하는 신호 기능도 있다”며 “전기요금에 원가를 적정 수준에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해서는 복지 정책으로 지원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전 적자 누적 등 전기요금 조정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원가 반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주의에 매몰돼 공공성이 결여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기요금과 연료비 간 연동성이 커지면, 국제 유가 추이에 따라 소비자가 지불하는 전기요금이 요동칠 우려가 있다. 들어오는 월급은 매달 같은데 전기요금이 들쑥날쑥하면 가계가 타격을 입는다. 고유가 시기에는 서민 물가 부담이 가중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한전 전기요금에 원가주의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변동성이 커져 공공적인 기능을 잃게 된다”며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할 필요는 있지만, 물가 상승 국면에서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가주의 도입과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은 별개라고 강조한다. 전기요금은 조정하되, 시장 개방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작용이 커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구 기획실장 “원가주의 도입을 통한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 판매 시장 개방을 연결 짓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시장 개방에 따른 폐해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입증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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