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 미군기지, 조급한 공원 조성 안 된다

정부가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 미군기지(캠프 킴 부지) 땅의 발암물질 오염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별다른 정화조치 없이 연내에 인근지역을 공원으로 개방하겠다고 한다. 올해 3월까지 실시한 환경부 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 벤젠과 페놀류가 기준치보다 각각 3.4배, 2.8배 높게 나타났고 토지의 기름오염정도를 나타내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기준치의 29배가 넘었다. 일부지점에서는 지하 9m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확인된 오염지역의 면적은 4만5184m²고 부피는 22만1257m³에 달한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7개에 달하는 넓이다.

하지만 정부는 ‘위해성 저감 임시조치’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오염토지를 잔디밭과 아스팔트로 덮고, 일부지역 출입제한과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임시방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정화조치가 아니다. 정부 내에도 이견이 없지 않았는데도 서두르는건 ‘반환 미군기지 일부를 연내개방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다. 이는 용산 집무실에 이어 이른바 ‘윤석열의 용산시대’를 열고 싶어하는 매우 개인적 선호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지난 2000년 한강독극물 무단방류사건(일명 맥팔랜드사건)부터였다. 이후 환경부가 파악한 유류 유출 사고만 해도 88건에 이른다. 지난 2017년 서울시가 실시한 용산기지 주변 오염조사 결과에 따르면 용산구 녹사평역 주변에만 벤젠이 허용기준치의 280배, 캠프 킴 주변은 TPH가 918배 검출되었다. 하지만 기지 안 오염원에 대한 환경조사는 미군의 반대로 실시하지 못했다. 이제서야 반환된 일부 기지에 대해 환경부가 조사 결과를 내놓은 수준이다. 그러니 정부가 해야할 일은 섣부른 공원조성과 시민개방이 절대 아니다.

앞서 문재인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은 반환 예정 용산 미군기지 전체에 대한 토양정밀조사와 정화작업을 위한 설계단계에 해당한다. 나아가 천문학적인 정화비용은 국제법 기준에 맞게 오염자 부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미군이 오염시켰다면 치유도 미군의 책임이라는 의미다. 미군이 정화비용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심각한 외교적 문제로 비화시킬 각오도 해야 한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일본과 독일도 그렇게 했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앞에 두고 윤석열 정부는 가장 나쁜 결정을 했다. 지금 공원 개방을 서두른다면 이미 반환된 기지는 물론 앞으로 예정된 12곳의 주한미군기지 반환협상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서 공원으로 개방할 정도라면 ‘무엇이 문제냐’는 미군의 억지에 답할 방법이 없어진다. 시민의 건강을 위해서나, 되찾은 땅의 제대로 된 정화를 위해서나 이렇게 마구잡이로 풀어나갈 일이 아니다. 국회와 시민사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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