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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5·18에 듣는 당사자 여성들의 노래 16곡

음반 [오월 어머니의 노래]

오월어머니의 노래 음반 ⓒACC

1980년 5월부터 5·18 광주민중항쟁 42주기인 2022년까지 많은 음악인들이 5·18을 노래하고 연주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만이 아니다. 문승현의 ‘오월의 노래 1’에서 시작한 5·18 음악은 민중가요에서 시작해, 대중음악과 전통음악, 고전음악까지 아우르며 100여 곡의 음악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잠시 뒤늦은 법의 단죄를 받았다. 5·18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기념일로 격상했다. 하지만 아직도 학살의 진상은 다 밝히지 못했다. 5·18로 죽어간 이들을 모두 찾아내지는 못했다. 반면 수구세력들은 꾸준히 5·18을 왜곡하며 폄하하는 중이다. 5·18을 기념하는 이들 중에서도 오늘의 죽음과 눈물을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계승하는 일은 이리 어렵다. 5·18을 계속 노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월어머니의 노래 포스터 ⓒACC

그동안 5·18을 음악으로 만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전문음악인들이었다. 물론 수많은 5·18 음악을 듣고 부르며 삶으로 받아 안은 이들 또한 5·18 음악을 함께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지만, 직접 창작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지난 해 10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아시아문화원(ACI)이 (사)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과 함께 만든 [오월 어머니의 노래] 음반은 더욱 각별하다. 이 음반에 담은 노래 16곡은 김원중, 김현성, 류형선, 박종화, 백창우, 손병휘, 이지상, 한보리를 비롯한 음악운동 진영의 뮤지션이 만들었다. 하지만 이 음반은 뮤지션들만의 손길로 완성하지 않았다.

음반에 수록한 노래 대부분은 5·18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직접 쓴 사연으로 만들었다. 이들 모두가 ‘어머니‘로서 가족을 잃은 것이 아님에도 모든 여성들을 어머니로 통칭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5·18의 피해자인 동시에 당사자로 42년을 버텨온 이들이 함께 노랫말을 쓴 곡들은 어떤 노래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고 절절하다.

오월 어머니의 노래Ⅰ MV 30번 남자 - 김옥희 어머니 오월 어머니의 노래Ⅰ

오월 어머니의 노래 MV 엄마 안 보고 싶었어? - 김길자 어머니 오월 어머니의 노래Ⅰ

오월 어머니의 노래 MV 그리운 내 사람아 - 박유덕 어머니 오월 어머니의 노래Ⅰ

“상무관 내 남자 30번의 남자, 싸늘한 당신을 지게에 싣고 비틀비틀 걸어 갔던 금남로 십리길 아아 상무관 내 남자”라고 남편을 잃은 그 날을 기록한 김옥희의 ‘30번 남자’라는 노랫말만으로 먹먹해진다. “엄마 안 보고 싶었어?”라고 묻는 김길자의 노래는 제목만 들어도 목이 메인다. “내 아들로 와줘서 고맙구나”라고 노래하는 원사순의 ‘내 마음 속 꽃 한 송이’, “참 아까운 사람 / 죽 한 그릇 못 먹고 면회 한번 못한 너무나 미안한 그 사람 / 죄 없이 끌려간 멀고도 먼 교도소 / 무정한 사람아 한번이라도 오지 그랬소”라고 쓴 박유덕의 ‘그리운 내 사람아’도 마찬가지다. 음반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통과 그리움과 약속이 그득해, 5·18을 익숙하고 상투적인 태도로 기억할 수 없게 제지한다.

사실 5·18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왔던 이들은 당사자들만큼 아프거나 간절해지기 어렵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 잊고 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은 당위를 반복하는 대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구체적인 사건들을 당사자처럼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준다. 예술은 타인의 삶과 욕망과 고통을 자기화하고 이해하는 체험이자 훈련이다. 그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5·18의 당사자인 여성들의 아픈 사연을 직접 노랫말로 쓰고, 전문 창작자들이 곡을 붙이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쓴 노랫말을 직접 노래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얼굴로 담담하게 노래하는 이들 가운데 빼어나게 노래를 잘하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인지 음반 제작 발표회와 공연에서는 혼자서만 노래하지 않고, 노래 짝꿍인 광주 지역 음악인들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오월 어머니의 노래 MV 꽃신 - 박행순 어머니 오월 어머니의 노래Ⅰ

당신에게 가는 길(이향란 어머니) MV - 오월 어머니의 노래

사실 이들의 노래는 목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자신의 삶으로 부르는 노래다. 42년의 한숨과 눈물과 분노와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다. 군부의 권력욕과 국가폭력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고, 평범한 삶의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 그럼에도 절망으로 주저앉지 않고 5·18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남은 삶을 다 바친 이들의 얼굴은 아프고 무겁고 숭고하다. 이들이 공연에서 노래하는 모습이나 뮤직비디오에 담은 옛 모습을 보면 권력이 한 사람에게 가한 상처가 너무 깊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5·18을 겪지 않았다고 행복하기만 했을 리 없고, 5·18을 겪었다고 불행하기만 했을 리 없지만, 5·18은 이들에게 다른 삶의 평범한 가능성을 봉쇄해버렸다. 잊는 일도, 지우는 일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찾아보는 일은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통과한 이들의 삶을 대면하는 일이다. 과거가 될 수 없고, 번번이 오늘로 복귀하는 사건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다. 당사자가 주인공이 되어 빚어낸 예술의 힘을 확인하는 일이다. 노랫말을 쓰고 노래하는 순간이 힘겹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 쌓아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그리운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이들에게도 충만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당사자들이 말하고 노래하기를 기다려 본다. 더 많은 이들의 입이 열리고, 더 많은 노래가 들릴 때 세상은 천천히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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