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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울산 동구 김종훈의 약진, ‘진보정치 1번지’ 돌아올까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가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민중의소리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9일 오후 5시, 울산 동구 바닷가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HYUNDAI’라고 가슴에 적힌 회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줄지어 나왔다. 버스 안에도 현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가득했다. 울산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울산진보연대 임상호 상임의장은 이런 울산 동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옛날엔 여기야말로 탄압받던 노동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해방구’라고 불렀는데...”

한때 ‘진보정치 1번지’로 이름을 날렸던 울산 동구는 진보정당의 분열에 그 명성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다르다. 제3당에 머물던 진보정당 후보들이 ‘진보단일후보’로 일제히 나서면서 울산 동구를 ‘진보정치 1번지’로 탈환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진보당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가 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울산 동구 남목전통시장 입구에서 진보단일후보인 진보당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와 이은주 시의원 후보, 노동당 정영상 구의원 후보가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울산 동구는 김종훈!”

최근 울산 동구청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천기옥 후보와 진보당 김종훈 후보가 오차범위 안팎에서 치열한 양자 대결을 펼치고 있다. ubc 울산방송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16~17일 실시한 2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구는 국민의힘 천기옥 후보 38.4%, 진보당 김종훈 후보 34.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정천석 후보는 현역 구청장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초라한 지지율(16.4%)로 3위에 머물더니 결국 선거를 열흘 앞두고 사퇴했다. 울산 동구에선 이미 ‘권력 교체’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4년 전인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는 ‘박근혜 탄핵’으로 정권교체 열망이 높아지면서 민주당이 전국을 ‘싹쓸이’ 했던 선거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그 틈에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정천석 후보가 당선됐는데, 그 후 4년을 지내고 보니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는 게 동구 주민들의 평가다.

동구 남목전통시장에서 만난 정모(70)씨는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당 이름 가지고 모두 당선되는 선거가 어딨나. 지난번 선거 때 민주당이 그렇게 해서 다 당선되지 않았나. 이번엔 다 갈아치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 위에선 “민주당이 인물이 없어서 정천석한테 또 공천을 줬던 거 아니냐”며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결국 울산 동구엔 ‘누구’로 권력이 교체될 것이냐만 남았다. 보수정당 후보냐, 진보정당 후보냐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울산 동구에선 ‘진보 구청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진보당이 지난 대선에서 거둔 성적은 초라했지만, ‘지방선거는 다르다’는 여론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려있다. 중앙정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만큼, ‘구청장은 일을 잘 하는 것이 최고’라는 분위기다. 남목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김종훈 후보의 선거유세를 유심히 지켜보던 70대 어르신은 “대선 땐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뽑았는데 지방선거는 다르다”며 “그동안 했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김 후보에 대한 동구 주민들의 점수는 후한 편이다. 대선 때 이재명 후보를 뽑았다는 또 다른 동구 주민 윤모(60)씨는 “동구청장은 김종훈 후보를 지지한다. 동구청장을 할 때도, 국회의원을 할 때도 일을 굉장히 잘했다. 주민들이 말하면 즉각 들어줬다. 내가 그걸 직접 경험했다”며 “우리 집 뒤에 공원을 만들어준 것도, 울산대교 통행료 문제를 여론화한 것도, 모두 김 후보였다. 남편이 현대중공업 근로자인데 근로자를 생각해주는 것도 김 후보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후보 캠프에서 만난 최석환 정책국장은 “김 후보는 지지층을 넘나든다. 보수 지지층에서도 ‘구청장은 김종훈만한 사람 없다’면서 지지해준다”며 “진보정당이 (현재 정치구도에서)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후보가 가진 인지도와 영향력이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 후보에 대한 동구 주민들의 신뢰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김 후보가 동구에서 오랫동안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쌓아온 신뢰가 동구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가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북 경주 출신인 김 후보는 울산대에 진학한 후 1987년 동구에서 촉발된 노동자투쟁을 계기로 이곳에 아예 눌러앉았다. 최 국장은 “그때 김 후보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생활했다. 김 후보 성격상 대인관계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도 김 후보에게 ‘여기서 같이 살자’는 얘기를 많이 했고, 김 후보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 후보와 울산 동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지역사회 원로인 울산진보연대 임상호 상임의장도 김 후보를 ‘현장의 노동자와 늘 함께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임 의장은 “김 후보는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현장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의식을 느끼면서 노동자들과 늘 함께 했고, 그런 삶을 계속 살아왔다. 지금도 김 후보는 늘 ‘가장 아픈 손가락은 하청노동자’라고 얘기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거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전경 ⓒ민중의소리

김 후보는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광역시의회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2011년 당시 정천석 동구청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받으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동구청장으로 처음 당선됐다. 진보정당 분열 속에 치러진 2016년 20대 총선에선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투쟁하는 노동 현장에, 민생 현장에 늘 머물렀다.

최 국장은 “현대중공업이 조선산업 경기 침체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정규직은 줄이면서 비정규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늘리고, 법인 분할과 본사 이전으로 여기에는 껍데기만 남겨놓을 때, 김 후보는 늘 노동자 생존권을 중심에 두고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노무 구조가 바뀌면서 지역경제도 어려워졌다. 비전이 없으니 청년들이 동구를 떠나게 되면서 인구도 크게 줄었다. 옛날에는 현대중공업에 다닌다고 하면 대기업의 정규직이라는 자부심 있었는데, 지금은 임금도 낮고 노동 환경도 좋지 않은 비정규직 아니면 단기 아르바이트다. 게다가 산업재해도 많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 곳이다”라며 “그래서 노동자가 살아야 동구가 산다는 데에 방점을 찍고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20년째 현대중공업에서 설비 업무를 하고 있는 김동엽(43)씨도 이번 선거만큼은 김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국민의힘 구청장도, 민주당 구청장도 다 경험했지만 정작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음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8년 동안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다. 그때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대신 진보정당, 그리고 김 후보가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싸워줬다. 추운 겨울 구조조정에 반대하던 선배 노동자들을 위해 아침에 어묵국을 끓여 나눠주며 응원해준 것도 김 후보였다. 힘들 때 같이 옆에 있어주면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김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울산 동구 하청노동자 지원 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벌여 4천여 명의 참여를 이끌었고, 그 서명부를 지난 10일 동구의회에 제출했다.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의회가 구성되면 즉각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동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김 후보 공식선거운동 출정식에 참석해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라며 김 후보에 대한 지지를 조합원들에게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울산 동구 남목전통시장 입구에서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선거운동원과 천기옥 국민의힘 울산 동구청장 후보 선거운동원이 유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진보단일화 없인 어려운 선거였다

그렇다고 김 후보에게 마냥 유리한 선거구도는 아니다.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대통령의 승리로 귀결된 지난 대선의 여파는 국민의힘 천기옥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 동구에서 만난 일부 주민들은 누구를 지지하는지 공개하길 꺼려하면서도 “대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동구에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지낸 천 후보는 동구를 중심으로 국회의원만 내리 7선을 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노동자의 편에 서있는 김 후보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스펙’으로만 따지자면 천 후보가 김 후보에게 밀리지만, 보수성향이 짙은 울산에선 그에 대한 지지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어찌 보면 울산 동구의 역대 선거는 늘 이런 구도로 치러졌다.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울산 동구청장은 김창현→이영순→이갑용으로 노동계 인사가 줄곧 자리하다가 정몽준계인 정천석이 새롭게 당선된 이후 정몽준계 인사가 줄곧 자리를 꿰찼다. 과거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이었던 정천석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김종훈이 당선되면서 잠시 노동계가 자리를 탈환했지만, 이내 정몽준계인 권명호(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 구청장직을 다시 내줘야 했다. 정천석은 박근혜 탄핵 후 민주당으로 입당해 ‘당색’을 바꿔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최근까지 구청장으로 지냈지만, 또다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심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는 결국 후보직 사퇴에 이르게 됐다.

이는 김 후보가 다시 동구청장을 탈환할지가 이번 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된 배경이다. 최 국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울산 동구에는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뿌리가 없다. 그 전에는 기업인이 정치하던 도시다. 정몽준이 7선 의원을 하면서 기업을 위해 정치를 이용한 거였다”며 “현대에서 부장을 달고 일하다가 정몽준 따라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가 보수정당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울산 동구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회와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조합원들이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울산 동구 남목전통시장 입구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치실천단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 유세를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 후보 개인 경쟁력도 있고 노동자 중심의 지역 특수성도 있지만, 진보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더욱 어려운 선거가 됐을 뻔했다. 김 후보는 울산 동구청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던 노동당 이갑용 전 예비후보의 지지를 얻은 진보단일후보다. 노동당과 진보당뿐만 아니라 정의당과 녹색당까지 4개 진보정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뤘는데, 그 시발점은 울산이었다.

그러자 민주노총도 진보단일후보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선거운동에도 결합했다. 이날 김 후보 선거운동 출정식에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과 정병천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 정동석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을 비롯해 조합원들까지 총출동한 배경이다. 특히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정치실천단’을 구성해 지역 곳곳에서 피켓을 들고 김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유세를 펼쳤다. 80대 고령의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백발을 휘날리며 울산에서 3박 4일 동안 선거운동을 돕는 강행군을 펼쳤다. 

최 국장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나 사내하청지회, 현대미포조선노조도 진보단일후보 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전에는 진보정당이 각각 후보를 내다보니 한쪽에만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며 “지금은 노동조합 소식지를 통해서도 진보단일후보를 알린다. 힘이 조금씩 모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게 단일화의 힘”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자세한 여론조사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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