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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금 한국 록의 맨 앞에는 세이수미가 있다

사랑을 노래하는 세이수미 정규 3집 [The Last Thing Left]

사랑을 노래하는 세이수미 정규 3집 The Last Thing Left ⓒ비치타운뮤직

지금 한국의 밴드 음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이수미를 들어야 한다. 물론 세이수미 한 팀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새소년, 잔나비, 혁오를 비롯해 수많은 밴드가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the 1234-dah!, 공중그늘, 더 보울스, 보수동쿨러, 브로큰티스, 소음발광, 아디오스 오디오, 위아더나잇, 코토바, 해서웨이 같은 팀들은 놓칠 수 없는 한국 록의 새로운 현재다.

그 중 세이수미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밴드로 2017년부터 꾸준히 해외 투어를 하고 있다. 지금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 한국음악은 케이팝만이 아니다. 새소년, 악단광칠, 잠비나이, 혁오 같은 팀들이 투어를 다니기 시작한 지 수년째다.

지난 5월 13일 발표한 세이수미의 정규 3집 [The Last Thing Left]를 들으면 왜 세이수미가 해외에서 호출을 받는지 알게 된다. 세이수미를 들어야 한국 밴드 음악의 오늘을 이해한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인디 팝, 서프 록, 펑크를 뒤섞은 세이수미의 음악은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있다. 경쾌하고 귀여운 음악, 바다가 떠오르는 음악, 청춘과 낭만을 대변하는 음악이면서 세이수미의 음악은 음악적으로 단단하게 확장하기 때문이다.

Say Sue Me 세이수미 - No Real Place

새 음반에 담은 10곡에서도 세이수미의 매력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세이수미의 매력은 더 깊어졌다. 이번 음반에 담은 세이수미의 노래에는 누구든 경험했음직한 쓰라린 마음의 기록이 가득하다.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고 서운해하고 쓸쓸한 시간의 흔적들이 바닷가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애써 잡으려면 빠져나가 버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바라볼 뿐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채 써 내려간 이야기는 파도와 부딪치며 더욱 반짝거린다.

너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자신이 길을 잃곤 했을 뿐 아니라 주변이 엉망진창이라고 느끼곤 했다는 고백이 노래가 되었다. 젊음과 멀어지고 있다는 탄식을 노래하기도 한다.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도 얘기한다. 그냥 운다고 털어놓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음반에는 용감해지고 싶다는 노래가 있다. 너와 나를 위해 사랑이 퍼질 거라 장담도 한다. 세이수미는 넌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너와 나를 사랑하고, 사랑은 결국 남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평이한 영어 가사로 쓴 노랫말들에는 과장이 없고, 거짓이 없고, 허세가 없다.

예술작품에서 진실성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의 진실성이 예술가의 실제 삶과 얼마나 이어져있는지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세이수미의 노랫말들은 한숨으로 눌러쓰고, 눈물로 물들인 것처럼 다가온다. 젊음의 기록이라 해도 좋고, 어느 한 시절의 흔적이라 해도 무방할 노랫말은 핍진해 몰입을 부른다. 세이수미의 노랫말은 멜로디와 비트, 사운드의 뒤로 숨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노랫말은 음악의 실체로 소리의 모음과 함께 세이수미의 음악을 구성한다.

Say Sue Me 세이수미 - To Dream 꿈에 (feat. 김오키 Kim Oki)

세이수미의 노래와 연주는 끝끝내 사랑을 믿는 세이수미의 세계를 실현한다. 대부분의 노래는 경쾌한 비트가 지배하지만 세이수미의 음악은 단순한 형식을 반복하지 않는다. 첫 곡 ‘Now I Say’가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만으로 곡을 채운다면, 두 번째 곡 ‘George & Janice’은 선 굵은 드러밍으로 선명하게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건반과 기타 연주는 그 사이를 예쁘게 채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역동적인 브라스 연주는 곡의 서사를 확장하며 비상해 세이수미의 야심을 터뜨리고야 만다. 반면 연주곡 ‘그 때의 기억’은 조심스럽고 몽롱한 아름다움으로 초대한다. 곡과 곡 사이의 거리는 모두 세이수미의 음악 영토다.

세이수미는 느린 곡에서나 빠른 곡에서나 자신들이 해오던 스타일을 갈고 닦고, 음악의 기본에 충실하다. 일렉트릭 기타와 보컬로 표현하는 멜로디는 내내 상큼해 인디 팝의 지향을 고수하고, 몽롱하거나 거친 플레이는 록의 일가임을 스스로 잊지 않는다. 그래서 세이수미 음악의 진가를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전면에 부각한 소리의 뒷면까지 들어야 한다. ‘Still Here (Feat. Kim Ildu)’에서 흐르는 말랑말랑한 기타 간주가 거친 연주로 이어지는 드라마는 세이수미 음악의 핵심이다. ‘Around You’의 비트를 따라 가볍게 출렁이는 즐거움이 크고, ‘We Look Alike’의 리프에 젖어들며 싱그러워지는 일도 유쾌하다. 펑크의 호흡이 느껴지는 ‘No Real Place’의 리듬감은 여전히 매혹적인데, 노래의 뒤편에서 갈아대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없었다면 곡의 아름다움은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김오키가 피처링한 ‘꿈에’는 강렬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로 세이수미의 다양한 면면을 아낌없이 분출한다.

음반이 끝날 때까지 좋은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Photo of You’는 유려하고, ‘ The Last Thing Left’는 풍성하다. 그래서 음반의 모든 이야기에 설득당한다. 앞으로는 한국의 밴드를 이야기 할 때 세이수미부터 거명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에도 설득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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