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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낯선 음악이 선사하는 해방의 가능성

일렉트로닉 뮤지션 새눈바탕의 음반 [손을 모아]

일렉트로닉 뮤지션 새눈바탕의 음반 '손을 모아' ⓒ새눈바탕

음악을 들을 때 대체로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과, 노랫말의 서사를 반영하고 증폭시키는 멜로디·리듬이다. 노랫말·멜로디·리듬을 둘러싸는 소리의 앙상블과 장르의 고유한 방법론에도 주목한다. 이 중 하나라도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이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음악은 노랫말이 없고,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음악을 채우는 소리의 영역에서 그동안 들어왔던 악기나 사운드의 전형을 거부하기도 한다. 지금껏 알고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음악은 고정관념으로부터 탈주한다. 탈주함으로써 음악의 언어가 얼마나 자유롭고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음악이 얼마나 일부였는지 드러낸다. 음악을 감지하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자신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차이 앞에서 얼마나 열려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한다.

자신의 감각을 전시하고 모방하는 일이 라이프 스타일을 구성하는 지금, 취향은 적절한 방패가 된다. 하지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 혹은 자신의 취향에 맞거나 맞지 않음을 확인하는 일이 예술작품을 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예술가의 의도를 상상해보고, 다양한 예술언어의 역할을 존중해본다면 어떨까. 자신에게 던지는 파장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다른 이들의 반응에 귀 기울인다면 더 풍성한 이야기를 건네받을 수 있지 않을까.

눈바탕 (Bird's Eye Batang) - 손을 모아 (Flood Format)

일렉트로닉 뮤지션 새눈바탕의 음반 [손을 모아]는 그렇게 들으면 좋을 음반이다. 이 음반은 아방가르드라고 불러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어 설명하자면 “이전의 예술 양식과의 형식적 단절을 선언”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에 관한 형식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모든 관념과 결별”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음악이다. 새눈바탕은 수록곡 8곡의 제목부터 우리의 통념을 배반한다. ‘미손 미끌’, ‘혔것’, ‘돌고 돌’, ‘빙의빙’, ‘윙윙’, ‘브럭스 바탕’, ‘산신’, ‘수’라는 곡의 제목들은 대부분 생경하고 모호하다.

낯선 것이 제목뿐 일리 없다. 대부분의 음악이 인트로-벌스-프리 코러스-코러스-브릿지-아웃트로의 구조를 활용하는데 반해, 새눈바탕은 계속 새로운 사운드를 연결한다. 그 사운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인데, 때로는 노이즈이고 때로는 음악이며 때로는 여러 소리의 혼합이다. 대개 음악이 일정한 테마를 중심으로 구조를 형성하는데, 새눈바탕의 음반에 담긴 곡들은 그 방식을 거부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한다. 소리의 높낮이가 돌발적으로 생성·분출·소멸하고, 노이지한 사운드를 자주 등장시키는 방식도 일종의 단절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명쾌한 구조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야말로 새눈바탕의 [손을 모아]를 완성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처음 곡을 들을 때부터 반복해서 곡을 들을 때까지 번번이 새로운 곡을 처음 듣는 듯한 낯설음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고, 이쯤 되면 이렇게 흘러가다가, 결국은 이렇게 마무리 할 거라는 예상은 수시로 부서진다. 파편 같은 소리들은 제각각의 부드러움과 제각각의 날카로움과 제각각의 매끄러움으로 순간을 불태운다. 일렉트로닉 음악이기 때문에 낯설거나 아방가르드 한 게 아니다. 어떤 장르의 음악도 이렇게 표현하고 구성한다면 낯설고 아방가르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수록곡들에서 선보이는 소리들은 명징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흐릿하고 몽롱하며 중층적인 소리의 울림은 의식 너머의 세계에서 와서 다시 그 곳으로 인도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마치 꿈을 소리로 옮긴 것 같은 질감이다. 사람의 생각이 뻗어나가고, 무의식이 드러나는 방식처럼 소리는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포복하고, 꿈틀거리고, 뒤섞이고, 부서진다. 밀려들고, 터지고, 웅크리고, 노닌다. 꿈꾸고, 흔들리고, 무너지고, 솟구친다.

새눈바탕의 자유분방하고 폭넓은 사운드 스케이프와 드라마는 세계와 존재의 정동을 포괄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발견하는지는 듣는 사람의 자유다. 정답이 없는 것처럼 펼쳐지는 음악은 어떤 가능성을 남겨주고 사라진다. 해방의 가능성이다. 만약 이 음악에 끌린다면 반드시 공중도덕, 공중도둑, 그림자 공동체를 이어서 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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