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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비우고 덜어내는 시간을 위한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선물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올해 두 번째 EP [Remainder]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올해 두 번째 EP Remainder ⓒ빅베이비드라이버

음악의 효능은 어디에 있을까.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을까. 미술과 함께 가장 빨리 스며드는 예술 언어인 음악은,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휘두를 수 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와는 무관하다. 좋은 음악은 현재를 바꾼다. 기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꾼다. 우리의 기분도 생각도 쉽게 바꿀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시대, 음악 역시 상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음악은 세상에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상품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고 말해준다. 꿈과 절망과 게으름은 나의 것이며, 팔거나 소유할 수 없다고, 나누고 교감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수줍게 웃는다.

음악을 따라 웃고 우는 이유다. 음악을 들으며 내가 유별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하고, 내 삶도 의미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까닭이다. 음악을 스쳐 지나간다고 갑자기 행복해지지는 못한다. 그래도 소나기 같은 음악을 통과하면서 얻은 위로와 자긍심, 평화와 열망으로 순간을 버틸 수 있다. 삶은 그렇게 채워진 순간의 연속이다.

Big Baby Driver - Let Me Take You To The Edge Of The World @ 재미공작소 2022.03.26

싱어송라이터 빅베이버드라이버가 내놓은 새 EP [Remainder]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빅베이비드라이버라는 뮤지션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가 계속 새로운 음반을 내놓는다는 사실, 그가 내놓는 음반이 늘 근사하다는 사실은 2022년의 한국대중음악에 대한 상식을 점검한다. TV나 유튜브, 소셜미디어에서 흔히 만나지 못한 뮤지션들의 면면은 현실이라고 믿는 음악계의 실체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한다.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즐기고 느끼기 위해 답해도 좋을 질문이다.

솔로와 밴드를 오가며 활동해온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포괄한다. 그의 음악은 트렌드에 대한 강박이 없고, 장르에 대한 열망이 넘치지 않는다. 낙차가 크지 않은 대신 다채로운 음악이다. 순하고 부드러워 누가 들어도 술술 넘어가는 음악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오래도록 다양한 음악을 듣고 품어온 노련함이 있다. 소소한 평화와 여유에 이르기 위해 갈고 닦아온 정성이 있다. [Remainder]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나머지가 아니다. 싸게 팔 수 없는 현실의 일부이다.

‘O’부터 ‘우리, 함께’까지 다섯 곡의 노래를 차근차근 듣다보면 그의 노래에 나의 절망이 겹쳐진다. “사랑받을 이유가 없다”는 자각이라거나, “쓸모없고 무력하다”는 생각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빅베이비드라이버는 허술하지 않다. 다른 이들의 관심과 동정을 얻기 위해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절망으로 멈춰 서지 않는다. “겁쟁이가 아니니까 네 연민은 필요 없어 / 네가 나쁘다는 걸 알았을 때 좋은 말을 듣는 것보다 나쁜 건 없어”라고 노래하는 이의 심지는 단단하다. “넌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안 써”라는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디에 있든 괜찮아요 / 하지만 이제 나는 어디로 가든 상관 없어요 / 왜냐면 나는 둥근 시위에 당겨져 날아오를 테니까요 / 왜냐면 나를 둥근 시위에 걸어서 쏘아버릴 테니까요”라고 노래할 때는 자유로움마저 느껴진다.

Remainder, by Big Baby Driver  듣기

음반을 감싸는 공기는 투명하고 세련되기보다는 흐릿하고 예스럽다. 그 질감이 빅베이비드라이버를 다른 뮤지션과 구별한다. 작사, 작곡, 편곡을 다 스스로 해냈을 뿐 아니라, 보컬과 오르간, 키보드,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하모니카,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담당한 빅베이비드라이버는 ‘Useless & Helpless’에서는 부드러운 소리의 리듬감으로 감겨온다. ‘White Sneaker Boy’에서도 느긋한 블루스를 선사하는데, 공들인 밴조 연주에서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차이와 깊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예쁘게 다듬은 곡 ‘여름의 끝’에서도 예스러운 편안함이 이어진다. 반면 ‘우리, 함께’에서는 명실상부한 블루스 사운드를 내비치며 음반을 마무리 하지만 음반이 쌓은 소리의 담장을 넘지는 않는다.

이 음반은 누군가의 쉼 곁에 베개처럼 놓아둘 음악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렬하게 사랑하는 시간 말고, 텅 비우고 덜어내는 시간을 위한 음악이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부담 없이 추천할만한 음악이기도 하다. 새롭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인정하게 하는 음악이며, 빅베이비드라이버의 다른 음악을 찾아 듣게 하는 음악이다. 큰 일을 해내지 않아도 대체할 수 없는 음악. 그것이 이 음반의 효능이다. 빅베이비드라이버의 고군분투로 완성한 20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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