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권에 집착하는 미국, 그것으로 몰락할 수 있다

2016년 부통령 시절 델라웨어에 있는 도버 공군 기지를 방문한 조 바이든.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소련의 붕괴로 유일 강대국이 된 미국을 옹호하기 위해 1992년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울포위츠 독트린'을 정의했다. "우리의 첫째 목표는 소련의 영역은 물론 다른 곳에서 미국의 새로운 경쟁자가 다시 출현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신방어전략의 주요한 고려사항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유일 초강대국 행세를 하며 세계를 주물렀던 미국의 통제력이 많이 약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약화가 특히 부각됐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권 이후 미국은 특히 러시아와 중국과 각을 세우며 세계 패권 유지에 집착하고 있다.
이를 다룬 외교관 출신의 마르코 카르레노스가 쓴 미들 이스트 아이의 기사를 소개한다.  2017년까지 이라크 대사를 역임한 마르코 카르네로스는 이탈리아 외교관 출신으로 소말리아, 호주, 유엔 등에 파견됐다. 카르네로스는 1995년부터 2011년까지 3명의 이탈리아 총리 아래에서 외교정책을 담당했으며 이탈리아의 중동평화프로세스 조정관으로 시리아에 특사로 다녀오기도 했다.

원문:  Russia-Ukraine war: US quest to preserve global hegemony could be its downfall

외교정책의 권위자인 헨리 키신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양도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을 보며 서방이 또 한 번 큰 실수를 하려 한다는 불길한 느낌이 몰려들었다.

키신저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게 지나치게 망신스러운 패배를 안겨줘서는 안 된다며 그러면 유럽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장기적인 유럽-러시아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다. 러시아는 유럽의 필수적인 일부이자 유럽 내의 힘의 균형이 조정될 때마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있은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키신저는 서방이 러시아를 중국과 영구적인 동맹을 맺게 만드는 것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키신저의 엄숙한 경고가 미국과 영국이 급하게 작성한 대본을 따랐던 유럽 국가들에게 경종을 울렸을 것이다. 최소한 자기네의 전체적인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을 검토할 정도로 말이다. 모든 러시아군이 2월 24일 이전의 국경 밖으로 후퇴해야 한다는(이는 점점 불가능해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결과가 진정한 ‘승리’일지 검토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이다. 유럽연합(EU)는 약해지는 의지를 겨우 숨기며 막판 협상을 통해 러시아 6차 제재안에 러시아 원유 금수조치를 포함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나토(NATO)와 EU, G7은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의 강한 저항, 서방의 단합된 도움, 전례 없는 제재가 맞물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고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는 계속 믿고 있다. 서방의 ‘전략가’들은 시간이 더 필요하니 서방의 의지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 총리는 오는 여름이면 제재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시험을 겪고 있는 세계 경제

한편, 러시아는 초기에 심각한 군사적 실수들을 저지른 후 서서히 돈바스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서방 언론도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하루에 최대 100명 죽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몇 달 전에 서방이 자신 있게 예측한 것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상임이사는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세계 경제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시험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다보스 포럼은 우크라이나의 메시지, 그러니까 러시아를 ‘문명세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라 돈 벌기를 하자”라는 모토 아래 스위스의 고급 리조트에 모여든 세계 최고 비즈니스 리더들이 이 입장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보스 포럼은 그동안 세계화와 상호연결성을 설교하고 찬양하는 성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참석자들이 원자재 강국을 세계 경제와 차단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

그런 조치가 세계적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평가하기 위해 신뢰할 만한 경제적 시뮬레이션이 이뤄졌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끄는 서방 세계가 지난 20년 동안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그랬듯 또 다시 알 수 없는 결과를 몰고 올 오산을 향해 몽유병이라도 걸린 듯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러시아 제재가 1달 정도 됐을 때 나는 무엇이 먼저 무너질지 궁금했다. 러시아 경제일까, 세계 경제일까. 러시아 제재의 파장이 과소평가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엇이 먼저 무너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제 자료들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무역 전쟁

공급망의 혼란, 식량 및 에너지 부족, 전례 없는 물가상승, 주요 주식 시장의 붕괴. 이것이 2년 간 극적이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기근도 빼놓을 수 없다. 기근으로 인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난민들이 대거 발생할까봐 EU가 매우 걱정하고 있다.

BRICS와 ‘제3세계’라 불렸던 국가들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서방은 그들에게 마음을 바꾸도록 2차 제재를 가할 수 있을까? NATO, EU, G7은 지난 40년 동안 이란에서 실패한 전략을 전 세계적으로 적용하고 싶을까?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은 상호연결된 세계화의 세상에서 무역블록으로 쪼개지거나 무역전쟁으로 서로 부딪히는 세상으로 가고 싶을까?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설명했듯, 미국이 러시아 다음에는 중국을 타겟으로 잡으면 어떻게 될까?

미국 유권자들은 곧 바이든 정권이 불과 몇 달 사이에 540억 달러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승인하라고 의회에 압력을 가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치솟는 물가 속에서 신생아 분유 공급 대란을 맞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오는 11월의 중간선거에서 무너질 위험이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출구 전략이 정말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의 최종 목표가 러시아의 패배라면 그건 비현실적이다. 최종 목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확실한 승리를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건 모호하다. 또 최근 유출된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서에서 나온대로 최종 목표가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전쟁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는 가능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서방의 이중 잣대

서방의 가장 큰 문제는 NATO, EU, G7이 다시 한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치체제 사이의 종말론적이고 실존적인 투쟁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게 BRICS나 세계 다른 국가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 서방 국가들조차 국내적으로 국민이 이에 전적으로 합의하는 것도 아니다. NATO, EU, G7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과 러시아가 아니라 서구 신자유주의 모델의 실패와 불평등의 심화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최근 몇십 년 동안 내뱉은 말과 그들이 취한 행동이 달랐다. 서방 국가들은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지금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네가 무엇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이 법치에 기반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끝없는 전쟁과 이중 잣대, 미국과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들에게는 이런 세계적인 규범이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냄으로써 점차 신뢰성을 잃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과 서방이 자유나 인권을 마음대로 짓밟으면서 이를 주창하는 것도 점점 설득력이 없어지고 있다.

BRICS와 세계 다른 국가들은 서방의 목표가 새로운 세계 질서의 기반이 될 규칙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그와 가까운 지도자들은 이를 이뤄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3월 “지금 세상은 변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는 이를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공식 주장과 다르다. 미국은 자기네 패권에 도전할 만한 다른 강대국이 있는 다극화한 세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이후 소위 ‘울포위츠 독트린’으로 뻔뻔하게 확립된 글로벌 헤게모니를 고수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세상은 변했다.

NATO의 팽창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를 내걸자 유럽 국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미국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자기네가 무엇에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현명한 외교관 중 하나인 차스 프리먼은 “미국 정치가 양극화되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재정은 늘 적자이고 인프라는 무너지고 있으며 교육 시스템은 점점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의 사회 구조는 쇠약해지고 있고, 국제적 위상은 떨어지고 있으며, 1860년대의 남북전쟁 이후 국내적으로 가장 분열됐다. 그리고 미국은 전략적 사고에 대한 집단 면역을 달성한 것 같다”고 최근 지적했다.

새로운 미국 내전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금기시 되는 주제가 아니다. 미국을 바꾸겠다는 바이든의 주장으로만 보면 바이든은 (세계에게는 좋지 않겠지만) 미국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주장과 다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하고 NATO의 동쪽 팽창을 추진한 미국은 지난 8년 동안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고 훈련을 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 군대의 용기를 키워왔다. 그 결과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중립을 명시한 민스크 협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는 러시아의 피비린내 나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매우 불편한 사실은 미국과 영국, 몇몇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몰락을 위해 싸우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긴장을 더욱 고조 시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게 공급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이 정말 유럽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미국

미국은 중국과도 대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 방문 동안 바이든은 중국이 위협할 경우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겠다고 맹세하며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약속을 했다. 이 민감한 주제에 대한 40년간의 미중대화가 큰 타격을 입은 순간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정권의 중국 전략을 발표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동안에도 우리는 국제 질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기적 문제가 되는 중국에게 계속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란과의 핵협상 재개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미국은 이란의 요청에 따라 상징적으로 제재하는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를 미 국무부의 테러단체 목록에서 빼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머지않아 이란이 핵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단독으로 법치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거나 새로 구축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야심이 역으로 이미 약해진 미국을 끝내는 최후의 한방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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