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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만나는 첫 번째 방법

책 한국 팝의 고고학 1980’과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한국 팝의 고고학 ⓒ을유문화사


고고학.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옛 인류의 생활, 문화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김학선, 신현준, 최지선 이 세 명의 대중음악평론가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유물과 유적을 바탕으로 한국 대중음악을 연구했다. 신문과 잡지를 뒤적이고 음반을 들었으며 크레딧을 살폈다. 각종 아카이브를 확인했음은 물론이다. 책과 논문을 빠트렸을 리 없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여년 전 신현준과 최지선을 비롯한 필자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지층을 탐색할 때부터, 이들은 당시에 활동하던 뮤지션과 제작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어떻게 음악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누구와 어떤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국내외를 뒤져 한국 팝의 주역들을 만난 다음 구술 채록 작업을 통해 사실 관계를 파악했다.

이렇게 사람의 만남과 엇갈림을 복기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사의 빈 틈이 비로소 채워졌다. 지난 2005년 나온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은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나온 역작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걸려 ‘한국 팝의 고고학 1980’과 ‘한국 팝의 고고학 1990’이 뒤이어 선을 보인다. 이번 책에서도 필자들은 자료를 뒤지고 사람을 만났다. 대개 음반과 히트곡, 뮤지션으로 채워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이들은 국내외의 역사와 변화까지 충실하게 반영했다. 국내외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변화를 추적하고, 제작자/뮤지션/조력자를 비롯한 대중음악 생태계 당사자들의 다양한 실천을 고르게 기술했다.

20여 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계를 구성한 모든 영역을 포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장르, 완성도, 작가정신, 독창성이라는 기존의 프레임만으로 음악과 활동의 가치를 줄 세우지 않았다. 우열을 가르지 않음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일부 뮤지션을 앞세운 신화와 전설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강박에서 벗어났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다양한 가치와 지향, 미학과 장르가 공존하는 생태계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이 책의 가치는 이것만이 아니다. 세 필자는 ‘한국 팝의 고고학 1980’을 쓰면서 지역과 공간이라는 더듬이를 앞세웠다. 대부분 서울에 대한 연구에 그치고 있긴 하지만, 여의도/영동/정동/광화문/신촌/대학로/강북/강남/방배동/이태원 등의 지역과 공간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장르와 지향의 실천들을 범주화했다. 이로써 당시 대도시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진 급격한 변화와 욕망의 차이를 통해 대중음악을 인식할 수 있게 돕는다. 특정한 장르와 지향을 가진 이들이 왜 특정한 지역과 공간에 몰리고, 그 곳에서 만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조합이 창작/생산/유통/보급에서 어떤 결과물을 남겼는지 정리한 덕분에 한국 대중음악은 연결된 관계의 동시대적 종합으로 생생하게 복원된다.

오래 전 지역과 공간에 대한 서술은 필연적으로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1990년대의 주요한 사건과 장르를 묶어 ‘상상과 우상’이라는 맥락으로 써내려 간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노래들은 아직도 노래방에서 부르는 곡이고, 방송에서도 계속 리메이크 하는 노래다. 댄스/록/알앤비 발라드/힙합/인디를 비롯한 장르의 흥망성쇠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현실이며,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독자의 옛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다룬 시대가 다수 독자층들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 어려웠던데 반해, 이번 책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수많은 독자들의 체험을 호출한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다.

또 시대의 변화와 뮤지션에 등·퇴장에 대한 소회를 완전히 감추지는 않은 서술은 이 책을 공부하듯 읽지 않아도 되는 책으로 만들어준다. 대중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뮤지션과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청·장년 세대는 드물다. 17년의 기다림만큼 다듬어진 문장은 그 정도의 관심만 있는 이들도 책의 어떤 부분을 펼치든 빠져들어 읽게 할 만큼 흡인력이 넘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책들은 한국 대중음악 40년을 만나는 첫 번째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평가를 ‘이 책은 완벽하다’는 이야기로 듣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이 다루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는 대표 필자 격인 신현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미 적었다. 빠진 장르와 지역, 부문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부분을 다 채웠다면 10년은 더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 필자들의 비슷한 연배와 관점으로 인해 과대평가 하거나 과소평가 했다고 여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부분을 지적하는 일은 너무 쉬운 비판이다. 진작 나와야 하는 책이 이제야 나오고, 이 책 말고는 이렇게 기록하고 연구한 책이 드문 현실은 업계와 정부, 관련자들의 맹성을 촉구한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은 다른 책으로 행해지는 게 최선이다. 그 전에 할 일은 이 책을 읽고 옛 노래를 다시 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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