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평화나무 리포트] 아무나 추앙하면 안 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 후 권양숙 여사 예방을 위해 권 여사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김 여사 왼쪽에 있는 여성이 지인이자 코바나컨텐츠 전무인 김모 씨. 2022.06.13. ⓒ뉴시스

최근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등 잇따른 활동으로 시끌벅적했다. 전직 대통령 부인들을 차례로 만나고 다니는가 하면 ‘동물권 강화’를 골자로 언론 인터뷰에도 나서는 등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내조만 하겠다’더니, 광폭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봉하마을 방문 시 함께했던 한 여성을 둘러싸고 ‘무속인 아니냐’, ‘비선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질 않은 것.

결국, 무속인은 아닌 것으로 판명은 났으나, 왜 의전까지 받는 공식 일정에 사인을 동행시킨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면 혼자 다닐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느냐”는 취지로 반문했고, 심지어 “대통령은 처음이라서”라는 황당한 어록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종부세 인하 등
기업에게 선물을 안기는 이명박 정권 시즌2를
더욱 강도 높게 이어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 파악 못 하는 무책임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은 이뿐이 아니다. 경기 불황에 물가까지 고공행진 중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경제위기는 국민이 자신감가져야 극복한다”고 한 것이 언론 속보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민간기업에 기대겠단다.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인들과 함께 정책을 만드는 부분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업인들에게 ‘저녁에 언제든 연락 달라’는 메시지도 남겼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6.14 ⓒ뉴시스

오랜 기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너도나도 힘들었던 데다 금리도 오르고 물가도 치솟는, 그야말로 ‘악’소리가 나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에 의존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참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기업에게 의존해 눈앞에 놓인 불황을 타개해 보겠다면서 기업에게 당근 정도는 던져줘야 할 것이고, 당연히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법인세·종부세 인하 등 기업에게 선물을 안기는 이명박 정권 시즌2를 더욱 강도 높게 이어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처럼 기업에게 선물을 안기면 기업들이 투자도 열심히 하고 고용도 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떤 기업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투자를 늘릴까.

당연히 부자 감세로 세수가 줄면 국가 경제가 더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면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고 극빈층일수록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런 대책이 없어 기업에만 의존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의 역할’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우려가 한숨으로 바뀌는 이유다.

대통령 부부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어디서 뭘 먹고 얼마짜리를 입고, 뭘 봤는지,
친서민 코스프레 행보가 언론 지면을 차지···
목사들의 각종 동정 보도만 가득한
기독교 교단지들과 닮아 있어


그러니 대선 과정에서부터 내내 지속됐던 ‘무속논란’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끊이질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민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에게 그 어떤 희망을 찾아보기도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 부부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어디서 뭘 먹고 얼마짜리를 입고, 뭘 봤는지, 친서민 코스프레 행보가 언론 지면을 차지하는 현실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관련한 가십성 기사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런 기사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인터넷 캡쳐

사실 이런 모습은 문제많은 교회들과 개신교 언론에서 참으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늘 이렇게 외쳐왔다.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부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믿음을 가지십시오’

밑도 끝도 없이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외쳤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도 사실상 목사는 상관없다. 왜? 교인 스스로 ‘내 믿음이 부족했구나’ 반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없는 살림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헌금도 바치면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자신이 하는 발언들이 ‘가스라이팅’에 가깝다는 걸 알까.

대통령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것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기독신문, 한국기독공보, 침례신문, 한국성결실문, 크리스챤연합신문, 기독교연합신문,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CTS, CGNTV, GOODTV 등등 개신교 언론사 홈페이지 아무 곳이나 한번 들어가서 살펴보라. 대부분 ‘땡땡 목사가 블라블라 말했다’, ‘땡땡 교회가 어떤 행사를 했다’, ‘땡땡 목사가 어딜 다녀왔다’ 등등의 소식이 주를 이룰 뿐이다. 그나마 기획을 했다면 어떻게 개신교 세를 불릴 수 있을지를 고민한 기사일 것이고, 신앙 양심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공공적 메시지로 포장한 ‘동성애 반대’메시지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중에 대한 삶에 관심을 가지라고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자신들 울타리 내‘ 교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삶은 어떤지’, ‘어떤 잘못된 목사 때문에 교인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교단이 나서서 어떻게 해결하기로 했다든지’ 뭐 이런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더라도 세상에서 너무 크게 이슈화가 된 경우 구색 맞추기용, 또는 면피용으로 지면에 등장하는 경우랄까.

언론개혁이 사회적 의제가 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해도 이제는 어떻게 손 쓸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진 느낌이다. 워라벨을 칼 같이 지키고 언론이라고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들던 개신교 교단지들 수준으로 대한민국 언론이 일제히 하향 평준화됐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개신교 내에서는 언론 양심의 보루처럼 느껴졌던
CBS마저 제대로 우클릭 논란에 빠져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특히 개신교 내에서는 언론 양심의 보루처럼 느껴졌던 CBS마저 제대로 우클릭하고 자본의 노예로 살기로 작정한 것일까. 지난해 사장으로 취임한 김진오 사장이 지난해 차별금지법 반대 토론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해 ‘동성애 설교가 편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더니, 자신의 ‘동성애 설교가 편집됐다’며 항의했다는 소강석 새에덴 교회 목사는 지난해 말 CBS 이사로 영입됐다.

최근 CBS는 미디어비평지에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특히 보도국장이 연예계 가십성 어뷰징 기사를 ‘속보’ 등을 달아 직접 쓰고 있다. 사진은 미디어오늘의 관련 보도 ⓒ인터넷 캡쳐

그러더니 최근 CBS는 미디어비평지에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특히 보도국장이 연예계 가십성 어뷰징 기사를 ‘속보’ 등을 달아 직접 쓰고 있다는 비판은 보는 사람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필시 포털에서 제목으로 클릭 장사를 해보겠다는 심산일 터. CBS가 최근 네이버 300만 구독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CBS보도국장은 미디어오늘 측에 ‘네이버 300만 구독자 달성 목표’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취지로 반론했으나, 그렇다면 보도국장은 굳이 왜 그런 기사들을 직접 써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명시적으로 네이버 300만 구독자 달성이라는 목표 제시가 아니더라도 CBS에 흐르는 분위기 속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털 클릭 수를 높여야 한다는 전사적인 압박감이 흐르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김진오 사장에게 이와 관련한 해명 또는 입장을 청취하기 위해 연락했더니, 그는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CBS 보도국장까지 지낸 김진오 사장의 언론관이 참으로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아울러 개신교 언론 수준으로 떨어지는 언론들의 사망선고를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는 마음이다.

“경제가 살려면 국민이 자신감을 가져야”
“부자 되려면 교인들이 믿음을 가져야”
닮아 있는 두 발언


여기서 잠깐, 끝으로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다. 김지원, 손석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는 관심 있게 지켜봤다. 내가 문화평론가는 아니지만, 작가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과 외로운 감정선을 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업이 어떻든,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누구에게나 조건을 달지 않고 응원해 줄 사람은 필요하다는 메시지에도 공감이 갔다.

그러나 ‘추앙’까지는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내가 평화나무를 통해 지속적으로 내 온 메시지가 ‘사람을 추앙하지 말자’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누구든 추앙하고 추앙받기엔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다. 물론 이 추상적인 단어를 꼬투리 잡아 드라마 전체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고, 드라마가 히트 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그러나 나는 적어도 그저 목사란 이유만으로 교회 내 교인들의 추앙을 받다시피 하는 자칭 성직자들, 어떤 리스크가 쟁점으로 떠오르든 지지자들의 추앙을 받다시피 하는 정치인, 소수일지라도 누군가의 맹목적 지지를 받는 권력자 등등. 누군가의 추앙을 자산으로 삼아 다음 행보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살려면 국민이 자신감을 가져야”
“부자 되려면 교인들이 믿음을 가져야”

국가든 종교든, 그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 이들의 발언이라고 밖엔 설명이 안 된다. 아무나 추앙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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