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만민보를 다시 선보입니다. 우리 사회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웃들의 인생 이야기를 권종술 기자가 매달 전해드립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서울대 출신의 육십 대 남성을 뜻하는 ‘서육남’과 같은 출신의 오십대 남성을 뜻하는 ‘서오남’이 유행어가 됐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가 ‘서육남’과 ‘서오남’에 치중되면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육남’과 ‘서오남’ 가운데서도 검사 출신들이 주로 기용되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이런 비판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 배현진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인선 기준은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유능함, 그리고 직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이다. 성별, 지역, 연령에 따른 제한을 두지 않고 국민이 부여한 직을 성실히,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를 국민 앞에 선 보인다는 입장”이라며 “지역, 여성, 연령에 대한 안배를 안 하는 게 인수위 인사 기준이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민들께 보여주기 위한 트로피 인사는 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력의 기준으로 ‘전문성’과 ‘유능함’을 언급한 인수위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전문성 있고, 유능한 이들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를 증명해주는 건 이들이 거둔 ‘성과’나 ‘가능성’, ‘비전’ 등 그 무엇도 아닌 화려한 ‘이력’뿐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수많은 ‘트로피’를 차지하며 기득권을 가진 그들이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통해 또 다른 트로피를 나눠 가진 것이다. 오죽하면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의원조차 “능력주의에 이렇게 휩싸이다 보면 다양성이 가진 힘을 간과하기 쉽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편중 인사가 가진 문제점을 꼬집었다.
다양성이 가진 힘과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다양성을 보장하면 실력 있는 이들은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다양한 목소리를 보장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지는 것일까? 다양성을 둘러싸고 많은 질문이 나온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다양한 이들의 삶을 담아온 ‘만민보(萬民報)’가 이번에 만난 사람은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https://diversity.or.kr) 소장이다. 김 소장은 어쩌면 만민보가 전하려 했던, 뛰어난 천재 몇 사람이 아닌 다양한 ‘만민(萬民)’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지난 16일 그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이나 청년들이 이번 인사에 없는 건 실력이 없기 때문이지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고 해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능력은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능력일 뿐이에요.”
“능력으로 뽑았는데 ‘서육남’에 ‘검사’뿐이라구요? 그 능력을 누가 정의하고, 누가 평가하나요? 결국 서울대 나온 50~60대 남성들이 규정하고 평가한 거에요. 높은 자리에 오른 그들이 스스로 평가 주체가 되어 능력 있다고 평가한 겁니다. 능력은 무엇을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누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렇게 스스로 평가해놓고 그것이 ‘공정’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김지학 소장은 ‘능력’과 ‘공정’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능력과 공정은 윤석열 정부 등장을 전후해 화제가 됐던 말이다. 능력대로 뽑아야 공정하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주장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을 ‘공채’로 뽑지 않아서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한 것이라고 항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또 여성할당제 등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나온 각종 제도를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게 하는 이유였다. 김 소장은 이런 주장 자체가 모두 능력과 공정이란 단어가 잘못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이나 청년들이 이번 인사에 없는 건 실력이 없기 때문이지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고 해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능력은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능력일 뿐이에요. 다양성을 주장하고, 모두의 안전을 주장하고, 평등과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이 볼 때는 그들이 능력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들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일 뿐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능력 있고, 그들이 성공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여성차별, 성차별은 과거의 문제일 뿐 지금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윤 대통령도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보정해 나가는 노력을 역차별이라고 규정하게 하고, 차별을 해소해야 하는 국가의 할 일을 오히려 감추고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공정주의’입니다.”
“이런 차별이 없어진 세상에선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요. 똑같은 날 같은 시험지로 시험만 보게 되면 차별 없이 공정한 것이라고 여겨요. 여성도, 장애인도 노력하면 된다면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마치 특혜로 여기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보수정치세력이 만든 게 아니라, 이미 널리 퍼져있던 생각을 정치권이 활용한 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좀 보정해 나가는 노력을 역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차별을 해소해야 하는 국가의 할 일을 오히려 감추고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공정주의’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다양성 교육’을 통해 시각이 전환되면 사람들의 생각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김 소장은 믿는다. 그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다양성 교육’을 접하기 전까지 그도 그것이 능력이라 믿어왔다. 부모님의 뜻을 따라서 소위 사회에서 강조하는 ‘능력’인 학벌을 따기 위해 애썼다.
“부모님들로부터 ‘공부하라’는 얘기를 늘 들으면서 자랐어요, ‘의대에 가야 한다’, ‘교수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어린 시절부터 들었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렇게 마냥 따라만 가다 보니 삶에서 재미도, 희망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의대엔 진학하지 못했고, 의대가 안 되면 의학전문대학원이라도 가야 한다고 해서 관심도 없던 생물학과에 진학했어요. 관심 있던 학과가 아니었는데도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뒤엔 학력이라도 높이자는 생각에 편입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미국대학 편입학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애리조나주립대로 유학을 갔고, 심리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학력만 바라보며 우울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삶의 변화 편견을 벗고 다양성의 가치를 만나다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보냈던 그는 청소년들을 상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런데 심리학과에서 그는 ‘편견의 심리학’이라는 과목을 듣게 됐고, 그 수업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멕시코에서 오신 여성 교수님이 강의하셨어요. 그 교수님께 처음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들었어요. 그때 거의 20대 후반이 다 된 나이였거든요.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조별 토론이나 대화를 많이 했는데, 같은 그룹 동료 가운데 흑인 남학생들이 많았어요. 흑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찰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마치 우리가 ‘차 조심하라’는 이야기처럼 자주 듣는다고 해요. 경찰이 멈추라면 멈추고 엎드리라면 엎드려야지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곤봉에 맞아서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흑인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경찰을 제일 무서워한대요. 여성들도 단지 성기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성차별을 당하고, 성폭력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고 배우게 해준 수업이었어요. 그렇게 주변 친구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교육이 가진 힘을 경험한 거예요.”
그런 경험을 통해 그는 비로소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차별과 인권에 대해서 더욱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 학교에선 자기 전공을 자기가 설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인간의 다양성과 인권’으로 정하고 관련한 수업과 실습에 나섰다.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다양성 훈련기관인 NCCJ(National Conference for Community and Justice) 세인트루이스에 지원해 인턴으로 활동하며 많은 걸 배웠다.
“청소년들하고는 7박 8일 함께 캠프를 열고, 참여형 인권 교육을 해요. 첫날 오전에는 ‘인종 차별’ 오후에는 ‘성 차별’ 저녁에는 ‘장애 차별’, 다음 날 아침에는 ‘성소수자 차별’ 오후에는 ‘나이 차별’ 등, 정체성을 넘나들면서 내가 차별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그런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게임도 하고, 토론도 해요. 삶이 진짜 180도 뒤집히는 것처럼 아주 충격적이고 강력한 경험을 그 프로그램을 통해 했어요. 나중엔 다양성 훈련을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과정을 이수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직접 진행했어요. 내가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많은 청소년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삶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는 걸 들었어요.”
그는 이후에도 ‘NCCJ 세인트루이스’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꼭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서 취업이 됐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 꿈이 된 ‘모두가 평등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배운 것들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였던 故 육우당이 사망한지 약 15년이 지났지만, 입시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의 삶 그리고 故 육우당이 죽음을 결심하게 한 당시와 한국은 달라진 것은 없었거든요.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공고했어요. 살아남은 내가, 육우당이 꿈꾸었던 그리고 나의 꿈이 된 ‘모두가 평등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배운 것들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청소년다양성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14년엔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들과 청소년다양성훈련을 진행했다. 그는 ‘‘교육 참여자들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해야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방식의 교육이, 아직 이런 접근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 잘 진행될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교육을 시작했지만 참여 청소년들의 반응은 정말 좋았고,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참여자들의 생각과 태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독립적인 재정 구조를 갖고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는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2015년 설립한 한국다양성연구소
“프로그램을 지원한 기업에서 연말보고서에 사용할 홍보용 사진에 ‘피부색이 어두운 이주민들의 사진이 들어가야 한다’며 이주 결혼여성들을 동원해서 교육 장소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었어요. 기업 임원들 중에는 평등을 강조하는 다양성 훈련을 ‘불온한 교육’이라며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구요. 이런 경험들은 좀 더 독립적인 재정구조를 갖고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는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2015년 교차성과 포함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다양성운동단체를 설립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호응한 나눔과나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등의 활동가들이 이사회를 구성하면서 ‘한국다양성연구소’라는 단체의 형태를 갖추고 본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연구소의 활동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후원회원으로 함께 해주기 시작하셨고, 다른 활동가들이 합류하여 함께 활동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후원회원님들의 후원금과 지원 사업 수행으로 재정을 마련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를 통해 그는 ‘다양성 훈련’과 ‘모두를 위한 성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진행하는 ‘다양성 교육’의 핵심은 앞서 그가 경험했던 것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개인은 한 가지 정체성만 가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한다.
“다양성 교육은 다양한 정체성의 위치에 서는 것을 게임과 활동을 통해 경험하게 해요. 차별할 수 있는 정체성과 차별받을 수 있는 정체성을 골고루 체험하게 하면서 내가 한 가지 정체성만 갖는 게 아니고, 수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요.”
“개인은 여러 정체성을 가져요. 한국인은 미국이나 다른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지만, 한국인은 우리 사회에선 선주민(이주민에 반대되는 표현)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한국인 여성은 성차별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지만,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다양성 교육은 이런 다양한 정체성의 위치에 서는 것을 게임과 활동을 통해 경험하게 해요. 차별할 수 있는 정체성과 차별받을 수 있는 정체성을 골고루 체험하게 하면서 내가 한 가지 정체성만 갖는 게 아니고, 수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람들을 한 가지 정체성을 기준으로 차별하고, 때론 혐오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를 마치 인류의 당연한 본성이라며 정체성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이런 인식의 바탕에 이 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아주 교묘한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에겐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결국, 이런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근거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자원 배분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분야와 정체성에서 ‘정상성’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이 체제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인 거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차별과 억압은 자본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상’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정상’은 자본의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제 한 몸 던져서 일할 수 있는가가 ‘정상’의 기준이 된다. 이런 기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아이와 청소년들은 쉽게 배제된다. 이런 기준에 따라오는 것이 실력이 되고, 이런 기준에 따라오지 못하면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차별과 억압은 자본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상’임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정상’인 이들도 영원히 정상일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일하다 다치면 언제든지 ‘비정상’과 ‘차별’의 영역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해요. 사람은 정체성에 따라 때론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인권과 차별은 단순히 차별당하는 대상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걸 ‘권력의 교차성’이라고 말합니다. 기존의 운동 방식은 대부분 당사자 운동이었어요. 노동 차별은 노동자들이, 성 차별은 여성들이, 장애인 차별은 장애인들이 나서서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권력의 교차성을 알게 되면 모두가 당사자라는 생각으로 어떤 정체성 차별에 대해서도 함께 싸울 수 있어요. 내가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겁니다. 성차별을 여성에게만 해결하라고 맡기는 게 아니라 남성이 성차별과 성폭력의 해결 주체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마치 혐오의 상징처럼 이해되고 있고,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여성들에 의해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조선족 동포를 비롯해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번 대선과 지방선거를 지나면서는 이런 차별과 배제의 인식을 보수정치권이 노골적으로 이용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서 알 수 있듯 그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이주민한테 기회를 주는 건 나와 내 자녀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고, 여성에게 기회를 늘리면 남성의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고 여겨요. 마치 모든 걸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어디가 높아지면 내가 피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인식이 나와 다른 정체성을 배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기게 해요. 이렇게 서로를 비교하게 만들고 누가 더 힘드나 또는 상대방의 인권이 올라가면 내 인권이 내려가는 것처럼,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기득권자들의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예요.”
모든 문제는 무엇이 정말 문제이고, 누가 잘못한 건지 보지 못한 채 을들의 싸움으로 변하고 만다.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 때문에 내가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문제는 무엇이 정말 문제이고, 누가 잘못한 건지 보지 못한 채 을들의 싸움으로 변하고 만다.
“이주 노동자들과 여성들 때문에 내 일자리가 부족하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항의하면 남성들도 산업재해의 위험에 시달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노동을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위험하고 착취적인 노동 구조와 문화를 누가 만들고, 그 시스템을 통해 누가 돈을 벌어가고 있는 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취약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비난하게 돼요. 나와 비슷한 처지 또는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에게 화살을 돌리도록 하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바꾸기 위해선 청소년 대상 교육이 중요하다. 그가 ‘한국다양성연구소’를 만들고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다양성 훈련을 해온 지 7년 여가 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그는 청소년과 했던 여러 교육을 통해 많은 가능성을 봤다. 그가 교육하면서 깨달은 건 각종 수치와 자료를 제시하면서 팩트를 가르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접근하는 방식은 ‘통계나 현실을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힘들어 이게 팩트야’가 아니라 문제 자체를 고민하게 해요. 여성 차별을 이야기하면 단골로 나오는 게 군대문제와 노동문제에요. 남자는 군대에 가고, 여자는 안 간다는 것과 남자가 더 힘들게 일한다는 주장이에요.”
“남성도 얼마든지 다른 이유로 성별이 아닌 노동의 형태, 학력, 학벌, 소득 수준 등 수많은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을 수 있다는 거를 깨닫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군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문제임을 인정하면서 교육을 한다. “군대가 문제인데, 군대를 누가 보내지?”, “우리가 스무살에 원치도 않은 군대에 가서 총 쏘는 것도 배우고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누구를 죽여야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건 문제일까 아닐까?” 이어서 징병제가 좋을지 모병제가 좋을지도 묻고, 모병제는 휴전중이어서 힘들다고 하면 이야기는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연이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게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아내면 군대 문제가 여자들을 징병제로 보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여가부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걸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요. 이렇게 대화를 통해 답을 찾기도 하고, 또 게임을 통해서 내가 특권그룹(privileged group) 또는 억압그룹(oppressed group)에 속하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해요. 수많은 다른 교차하는 정체성으로 인해서 남성도 성별이 아닌 노동의 형태, 학력, 학벌, 소득 수준 등으로 인해 차별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여성도 마찬가지에요. 여성도 항상 남성에게 차별받는 정체성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비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을 차별할 수 있고 또 비성소수자라면 성소수자를 차별할 수 있고 또 선주민이라면 이주민을 차별할 수 있는 정체성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가장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인 화장실은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닮은 공간으로, 화장실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공화장실의 모습은 성인 중심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적이며 성별이분법적이거든요.”
아울러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서 다양성과 포함(포용과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보다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강조한 표현이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도 벌이고 있다. 여전히 공간에서 배제되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다양성훈련의 연장으로 이런 공간에서의 배제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공간변화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첫 사업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인 화장실은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닮은 공간으로, 화장실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공화장실의 모습은 성인 중심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적이며 성별 이분법적이거든요. 그렇게 때문에 영유아와 장애인 그리고 자신과 성별이 다른 영유아나 장애인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별 이분법이 불편한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배제됩니다. 이러한 화장실의 모습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에 따라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는 지난 몇 해 동안 교육이나 자문 등으로 관계 맺은 단체들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제안해 왔다. 공공운수노조가 전체 7개층 가운데 3개층의 화장실을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설치했다. 과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성공회대학교에 설치됐고 산청 간디학교와 성미산학교에도 올 해 만들어 질 예정이다. 올해는 공공시설 중 상징적 의미를 갖는 개방된 청와대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한 ‘다문화’이려면 한국 문화도 여러 문화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여겨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이주민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을 한국인화 하는게 목적처럼 되어버렸거든요.”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과거엔 유효하다 느껴졌던 해법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실효성을 잃거나 변질되기도 한다. 많은 학교와 지방자치단체에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문화 다양성 사업도 이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다문화’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쓰이다가 2000년대 들어 이주노동자들과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차별을 없애자는 좋은 의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이 단어가 이제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꼬집는다. 다문화는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를 뜻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선 우리 민족의 문화를 주류 문화로 두고, 이주민들의 문화를 ‘다문화’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다문화’이려면 한국 문화도 여러 문화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여겨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이주민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을 한국인화 하는게 목적처럼 되어버렸거든요. 인종차별을 없애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는 ‘동화’ 사업처럼 되어버렸어요. 최근 학교 현장에서 조선족 등 중국 국적의 부모님을 둔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요. 지원도 안 받는다고 해요. ‘다문화’라고 지원을 받으면 낙인이 심하니까 숨기는 거에요. 진정으로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엄마 또는 아빠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다양한 문화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건데, 너무 안타까워요.”
이주민 부모를 둔 청소년들에게 찍히는 ‘다문화’ 낙인은 따돌림과 빈곤을 낳고, 이런 현실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주민 자녀들은 학교에서 따돌림 등으로 선주민에 비해 자퇴율이 2~3배 높아요,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다보니 학력주의가 심한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고, 빈곤해질 수밖에 없어요. 빈곤 그 자체도 문제지만,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런 이주 노동자 자녀들의 빈곤이 극단적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고, 테러 단체 등이 이들을 테러에 악용하는 비극도 벌어질 수 있어요. 어떤 이들은 이주민들을 아예 막고, 이슬람교가 우리나라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우리나라가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이주민들과 이주민을 부모로 둔 자녀가 우리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일이에요.”
아울러 그는 최근 외국인, 특히 중국 국적의 조선족들을 향한 혐오 정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각종 매체와 영화 등을 통해 조선족 거주 지역이 범죄의 온상으로 묘사된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을 빌미로 비난의 화살을 조선족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국인의 범죄율과 비교하면 중국국적자 또는 외국인의 범죄율은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과 허탈감을 해소할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숟가락만 얹는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2020년 기준 한 해 동안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1조4915억 원이지만, 건보공단이 이들의 치료비 등에 쓴 급여비는 9200억 원으로 5715억 원의 재정 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혐오 정서와 시각을 바로잡고, 다양성과 통합을 위해 나서야 하는 정치권에서 오히려 혐오 정서를 정치에 이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 소장은 이주민들에게 “아주 큰 낙인이 찍혀있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의 삶과 성경 전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환대입니다. 이웃을, 사회적 약자들을,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예수께 하듯 극진히 대하라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거부하는 세력들을 우린 삶의 곳곳에서 만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건 보수주의적 성향의 개신교 신자들이다. 이런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소수자, 이슬람교 신자, 난민. 이주노동자 등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특히 성소수자의 경우 성경에 위배된다고 여겨 ‘치료 받아야 하는 대상’ 혹은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때문에, 한국다양성연구소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개신교 신자들이 많다. 개신교 신자들이 만든 반동성애 단체 홈페이지에는 한국다양성연구소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그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지난 2018년엔 성경이 성소수자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인권옹호자 예수- 성경과 성소수자’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기독교는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고 말하며 이 세상 모든 것보다 한 사람이 더 귀하다고 하면서 그 한 사람을 무조건적, 무제한적으로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조건적, 무제한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성소수자는 빼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의 삶과 성경 전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환대입니다. 이웃을, 사회적 약자들을,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예수께 하듯 극진히 대하라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원수도 아니고 자신에게 잘못하거나 피해를 준 적도 없는,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향해 성경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생각을 고집하는 개신교 신자들의 마음을 그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 역시 과거에는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모태 신앙인이에요. 부모님들이 두 분 다 신앙생활을 하는 집에서 태어났고, 30년 이상 교회에 다녔고, 선교단체에서 2년 동안 단기 선교사로 활동할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물론 그 당시엔 저도 성소수자는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미국에서 8년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성소수자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생활하면서 생각이 달려졌어요, 성소수자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경험을 해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구요. 죄인이 아니고, 그냥 저처럼 자신의 소중한 삶을 소중한 사람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하도록 그의 삶을 이끈 곳도 교회였다. 그는 자신의 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조리한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모두가 환대받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예수를 닮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한 곳 역시 교회였습니다. 저는 지난날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폭력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는 의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개혁 필요해”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치제도 개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교육을 통해 개개인들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인식 수준이 향상돼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제도, 사회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권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제도는 기득권 세력들의 목소리만을 대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소선거구제 중심이고, 이런 제도는 보수양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은 정치세력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정치에서 다수결이란 이름으로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당제를 바꾸고, 비례성 확보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가 바뀌어야 해요. 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해요. 진보정당들은 지지율에 맞는 의석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보수 양당은 30%의 지지로 50%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또한, 가능하다면 의원들의 구성도 소수자, 청년, 여성, 장애인 등 인구 비율에 맞게 반영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야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는 의회가 될 수 있거든요.”
정치제도의 변화가 시급하지만, 저절로 바뀌길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도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이뤄지길 기다리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맏기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일지 모른다. 때문에 정치권을 바꾸기 위해선 대중들의 의식 변화도 함께 요구된다. 아주 더디더라도 말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 노력해온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대면활동이 어려워지면서 2020년 9월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한국다양성연구소)을 개설해 온라인 사업을 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유튜브 채널 개설 240여 개 영상 공개하며 대중들과 만나
“오프라인 활동을 그대로 온라인에 옮기는 것이 아닌,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로 다시 기획하면서 ‘온라인 다양성훈련’을 시작했어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담하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나의 역할을 점검하는 콘텐츠, 백래시에 대응하는 백가지의 대답을 전하는 콘텐츠, 대화의 도구를 활용해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콘텐츠, 최신 인권이슈 등에 대응하여 질문에 답변하는 콘텐츠 등을 제작해 공개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연구소 행사를 라이브로 중계하거나 녹화 후 편집하여 영상을 제공하면서 물리적으로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동안 238개의 영상을 공개했고, 15만 시청자(중복 포함)가 함께 했다. 현재는 2천3백여 명의 구독자가 함께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영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 중 시의적절한 이슈를 선정해 카드뉴스로 재가공하여 공개하며 대중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전하는데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열정적인 활동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많다. 2017년 말부터 후원회원을 모집해 300여명이 넘는 후원자들을 모았지만, 월세와 관리비 활동가들의 급여를 보장하기도 빠듯하다. 부족한 운영비는 그가 특강이나, 강연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런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어려움과 고민 속에서도 한국다양성연구소를 키우고 이끌어가는 그에겐 어떤 바람이 있을까? 그는 만민보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차별과 폭력과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그냥 우리는 내버려 두고 책임을 방기한다면 결국에 그 문제는 나에게 돌아온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나 역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양성과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모두가 포함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고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을 때 그게 나에게도 안전하다 그래서 결국에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사회라는 거를 좀 깨달을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더 널리 전하는 게 저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목표에요. 그래서 다양성 훈련 등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펼칠 겁니다. 나아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 법 재정 운동도 벌일 겁니다. 혹시 이런 운동에 함께하고 싶은 신 분들은 연구소의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거나, 유튜브 영상을 주변에 공유하는 등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전하는데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