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새정부는 긴축의 망령을 되살릴 셈인가

윤석열 정권과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오늘 다시 작은 정부를 이야기한다. 국가를 악, 시장을 선으로 놓고 대립시킨다. 그러나 일찍이 칼 폴라니가 밝힌 바와 같이 시장은 국가의 도움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시장은 중앙집권적 권력에 의해 먼저 국가 단위로 창출되고 조직되고 관리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사회의 여러 제도와 더불어 시장이라는 특수한 제도를 형성시키는 조성자의 역할을 맡았다. 시장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기능할 수 있도록 규제자의 역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시장을 나누는 이분법은 오늘날 경제학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케인스주의가 퇴조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래 그런 경향은 더욱 굳어졌다. 경제학계에서 주류적 지위를 꿰찬 극우 담론은 반복된 금융위기와 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윤석열 정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원리주의에 입각해 국가의 공적 책임을 부인한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강조와 민영화 지향이 그 귀결이다. 우리가 ‘긴축’이라고 이름 부르는 것들이다.

건전재정과 민영화의 긴축정책은 국가의 공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

그러나 긴축정책은 경제적 실패를 부르는 잘못된 선택이기 쉽다. 국가채무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지출을 삭감하는 결정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대개 경제에 무익하다. 긴축은 성장도 분배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특히 한국경제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자칫 성장 역량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 요인인 불평등과 양극화, 인구구조 변화와 같은 문제는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분배를 개선하는 꾸준한 노력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그런데도 새정부는 당장 재정운영의 기조를 적극재정으로부터 건전재정으로 바꾼다면서 재정준칙부터 들먹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도 성남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던 중 잠시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2022.06.16. ⓒ뉴시스

재정준칙은 성장도 분배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기실 국가채무나 재정적자 자체가 문제인 경우는 드물다. 거꾸로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다. 재정준칙은 나라 빚이 늘면 경제성과가 나빠진다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잘못된 교리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국가채무나 재정적자는 경제성과를 결정하는 원인이기보다는 경제성과에 따른 결과에 가깝다. 재정준칙은 공공지출이 경제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고 경제의 동태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낡고 단선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긴축은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무너뜨리기 마련인데 그런 사실을 외면하는 재정준칙은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관점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국가가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이다. 국가의 재정이 얼마나 생산적으로 얼마나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게 쓰이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공공부문이 산업전환의 적극적 주체로서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기여하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편이 옳다.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기술과 생산조직에 큰 변화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국가는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조정하면서 변화되는 산업 환경에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두터운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신기술과 직무교육에 대한 공공투자가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직무전환에 소요되는 사회적 갈등 비용도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고용안전망과 복지제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이 가능하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고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늘어난 세입으로 국가채무 부담도 관리할 수 있다.

공공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깎아주면 민간투자가 늘 것이라는 헛소리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또 정부지출이 늘면 민간투자가 줄어든다고도 주장한다. 공공투자가 민간투자를 몰아낸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경제학 교과서들은 예외 없이 그렇게 설명한다. 각종 입사시험과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그 생각을 기계처럼 주입받는다. 하지만 그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기업이 어떤 분야에 얼마나 투자할지 결정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미래 성장 기회를 따진다. 그런데 기업의 미래 성장 기회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설명처럼 정부가 기업에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의 기반 투자가 기업의 미래 기회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공공지출이 민간투자를 몰아내기는커녕 실은 정반대다. 공공투자는 민간투자가 가능한 분야를 창출하고 민간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준다. 역사적으로 공공지출은 경제의 장기적 진화에 있어 방향타 역할을 맡기도 했다. 국가의 재정 활동이 장기적으로 경제의 생산 능력에 영향을 미쳐온 셈이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이 투자를 알아서 늘릴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기업은 언제든 투자하려고 애쓰는데 세금이 일종의 장벽이 되고 있는 양 거짓말을 한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새정부가 밀어붙이니 부자들만, 기업들만 좋아라 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공공투자가 줄면서 미래 성장 기회를 보기 어려워진 기업이 세금을 덜 낸다고 투자할 리 없어서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련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6.16. ⓒ뉴시스


민영화의 덫

긴축은 국가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그 과정에서 공공서비스의 공급도 줄어든다. 경제가 더 성장하고 더 고르게 부를 분배할 기회가 포기되고 만다. 긴축의 한 형태인 민영화는 공공부문이 원래부터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에 근거해 있다. 그래서 공공부문 사무라도 민간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주장된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공공서비스가 기업 영리 활동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공부문 스스로도 민간 기업처럼 활동해야 한다는 선동이 이미 널리 퍼져 있다. 공공기관 평가를 위한 잣대로 공공성보다 효율성 기준이 우선시된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까지 집중 관리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때도 됐다. 마추카토가 저서 <가치의 모든 것>에서 지적했듯이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아웃소싱하는 시장부터 이미 독과점 상태다. 독과점 시장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 점은 가장 기초적인 경제 원리에 속한다. 최소 마진을 보장받아야 하는 민간 기업 특성상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공공서비스의 공급 가격이 오르고 공급량이 줄어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피해는 사회 전체가 입는다. 점점 더 많은 공공서비스가 민간 사업자의 수익 기회로 전락하면서 경쟁을 빙자한 착취와 노동권 침해는 일상이 되어간다. 민간 사업자의 지대 추구 경향도 뚜렷해진다. 예산을 어떻게든 최소화하려는 정부를 대신해 민간 사업자가 공공사업에 자본을 댄다. 민자 사업으로 개발된 기반 시설은 소수 사업자들이 과도한 특혜를 누리는 수단이 된다. 정부는 사업자들의 최소수익을 보장해준다. 그러다 보니 공공부문이 직접 지출했더라면 들었을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민간의 독점 사업자에게 가져다 바치는 결과도 비일비재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정치는 사회를 뿌리부터 공격한다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의 저자 마크 블라이스가 언급했듯,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긴축정책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 가치를 근저에서부터 흔든다. 긴축정책의 효과는 비대칭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저소득층일수록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소득과 재산이 적으면 긴축정책이 초래하는 다양한 부정적 충격을 견뎌낼 여력도 부족하기 마련이다.

양극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일수록 빈곤층이 가난을 못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된 경제에서 늘어나는 것은 민간부채이고 줄어드는 것은 성장률 수치다. 문제를 완화하려면 분배를 개선시킬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그와 같은 정치를 표방했다. 불과 한두 해 만에 약속을 포기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새정부는 아예 대놓고 분배를 악화시키는 정치를 하려는 것만 같다. 양극화가 더 심해지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가치가 토대부터 흔들릴 수 있다. 한때 마가렛 대처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회를 없애는 것은 바로 대처 식의 나쁜 신자유주의 정치다.

긴축과 감세는 미래 세대를 포기하는 최악의 정책 조합

한편 보수정치의 긴축정책은 감세, 특히 부자 감세, 기업 감세를 동반하는 일이 잦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세금을 깎아주는 것만큼 앞뒤가 안 맞는 모순도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어차피 지출을 억제해 복지국가를 약화시키면서 최고 소득층과 자산가들, 독점자본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그들 지배계급의 숙원사항 아니었던가. 그들은 재정건전성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국가의 공적 역할이 최소화되면 미래 세대도 피해를 입는다. 감세와 긴축의 기막힌 조합은 미래 세대를 포기하는 최악의 정책 조합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가 지금 딱 그렇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 엿새째인 12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입구에서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2022.06.12. ⓒ뉴시스

긴축에 맞설 대담한 노동의 정치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긴축이 경제적 성공에 도움이 되었던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축은 현실 정치에서 중심 정책 의제로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블라이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어쩌면 아무리 틀린 생각이라도 기득권 세력한테 유리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기에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른다. 긴축정책은 자산계급을 위해 복무하는 보수정치가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었던가.

답답하게도 때로는 진실이 허위를 못 이긴다.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어도 당분간은 거짓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다. 오늘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반동의 정치, 긴축의 정치가 진실을 가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필자는 지금은 평등, 민주주의, 지속가능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긴축에 반대하는 시민적 실천이 준비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보다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한국경제의 성장경로 상에 뚜렷한 변곡점들을 만들어가는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 기획을 5년 후로 미뤄두고 손 놓고 있을 것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언제나 조직된 노동의 힘뿐이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극우세력의 긴축과 민영화 공세에 맞설 용기 있고 대담한 노동의 정치, 우리에게는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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