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숑의 프랑스 총선 쾌거, 중도화 거부하고 대중과 함께 싸웠다

장뤼크 멜랑숑. 2022년 6월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19일의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이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마크롱의 중도 르네상스당을 포함한 여권 ‘앙상블’의 의석수는 245석으로 전체 577석의 과반인 289석에 크게 미달해 불과 두 달 전 재집권한 마크롱의 국정 운영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 반면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연합 ‘뉘프(NUPES)’는 131석을 얻어서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의석수만큼 의미 있는 것은 멜랑숑이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지도자로 우뚝 서며 범좌파를 아우르고 이끌게 됐다는 점이다. 예견됐던 멜랑숑의 쾌거를 총선 전날 이미 설명한 자코뱅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Jean-Luc Mélenchon Is Popular Because He Confronts the Powerful

자기가 이끄는 좌파연합이 총선 1차 투표에서 중도여권과 0.1%P의 득표율 차이로 사실상 동률을 이뤘기 때문에 장뤼크 멜랑숑은 2차 투표까지 타협적인 입장을 보일 만도 했다. 2차 투표까지 간 선거구의 절반 이상에서 멜랑숑의 좌파 동맹세력이 재선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신자유주의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자들과 맞붙었다.

그러나 멜랑숑은 2차 투표 후 자신이 총리가 돼 마크롱과 연립정부를 꾸리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에서 마크롱과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앵주미즈)’의 대표인 멜랑숑은 오히려 이번 총선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두 비전이 충돌한다고 강조했다.

멜랑숑은 지난 화요일의 툴루즈 유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멜랑숑은 “파산한 신자유주의 질서와 갈라설 때가 됐다. 신자유주의는 자정 능력이 없는 위험한 제도이다. 코로나부터 기후 재앙까지 늘 소수에게 이익이 될 방법을 찾아내려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멜랑숑은 “자본주의의 단기적인 시각이 인간 및 자연과 맞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은 끊임없이 단기적인 방법으로 장기적인 지배를 도모하고 단기적인 수익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연합의 생태학적 계획 프로그램은 “생산의 리듬을 자연과 조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합리적인 생산 통제가 현재의 혼란을 대체하려면 특수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자재인 시간을 국영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논리와 표현은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적 논쟁의 일반적인 내용보다 확실히 고차원적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흔치 않다. 물론 프랑스에는 영어권에는 없는 장시간의 정치토론 TV 프로그램들이 있다. 멜랑숑이 프랑스의 정체성, 치안, 경제, 동물복지 등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황금 시간대에 3시간 넘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멜랑숑은 예를 들어 소음공해가 자연의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 등 일상적인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질문을, 여가시간이나 마크롱이 밀고 있는 정년 연장에 대한 반대와 같은 더 일차원적이고 물질적인 이슈와 연결하는 데에 유독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바로 여기에 하나의 정치운동으로서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가치가 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국민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생산과정과 사회를 지배할 대안적인 가치와 연계하면서 두려움 없이 방어해 왔고, 선거 경쟁력이 커지면서 마침내 이를 주류 의제로 자리잡게 했다.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양대 정당 중 하나였던 사회당도 급진적인 표현을 사용해 활동가들을 동원할 때가 많았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늘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멜랑숑이 커리어 초반에 합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캠프도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권 장악후 미테랑은 1980년대 초반에 긴축으로 돌아섰다. 프랑수아 올랑드도 마찬가지였다. 올랑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금융권을 ‘적’이라 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노동권을 앗아가고 젊은 마크롱을 경제장관으로 임용했다.

2016년에 창당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확실히 주류 사회당과 다른 길을 걸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창당 이래 제도정치권과 옛 사회당류의 사회적 자유주의와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조약을 체결했지만) 2005년 유럽 헌법 조약 반대 투쟁을 승리로 이끈 후 멜랑숑은 사회주의자들과 주류 정치를 떠나 짓밟힌 프랑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길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지방정부에 뿌리를 깊이 내린 기존의 좌파정당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멜랑숑을 거부하고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많이 충돌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폐지하려는) 대통령제 때문에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시스템과 2012년, 2017년, 2022년 대선 출마 덕분에 멜랑숑의 비전과 정책에 대한 지지는 점점 커졌다. 대선 득표율이 11.1%에서 출발해 19.6%, 22.0%로 계속 올라 좌파와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비판을 잠재우고 다양한 대중과 습관적 투표 불참자들, 그리고 좌파세력의 대부분을 결집시켰다.

그 결과 ‘이슬람 좌파주의’와 ‘극단주의’라는 여당의 공격이 거세졌음에도 멜랑숑은 마크롱의 중도파와 르펜의 극우와 함께 프랑스의 3대 정치 세력 중 하나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자리잡았다.

4월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멜랑숑의 부상이 보장되지 않았다. 실제로 대가 약한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강성인 멜랑숑과 다른, 사람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대선 후보를 찾았다. 그리고 멜랑숑의 지지도가 급상승하자 녹색당을 선두로 소수 연성좌파 정당들은 ‘푸틴에게 너무 우호적’이라고, 사회주의자들은 ‘너무 반기업적’이라고 멜랑숑을 몰아붙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이런 좌파들을 압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따르게 만든 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큰 성과이다. 5월 결성된 좌파연합 ‘뉘프’는 최소공약수로 여러 정당을 모아 정책을 취합한 수준의 조직이 아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확실하게 이끌고 있는 조직이다. 뉘프 후보의 절반 이상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출신이고, 뉘프의 정책은 압도적으로 멜랑숑의 대선공약에 기반하고 있다. 뉘프는 이제 좌파정권을 방해하는 EU 조약에 불복종하겠다고 굳게 약속할 정도로 대담해졌다.

좌파의 균열

물론 이 과정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올랑드 전 대통령도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뉘프에 대항한 ‘반대파’ 연성좌파 중 2차 투표에 진출한 후보는 577개 선거구에서 11명에 불과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뉘프에서 좌파의 기존 분열이 다시 수면에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검문에서 멈추지 않은 운전자가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하자 멜랑숑은 “경찰에게 응하지 않으면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하나”라며 경찰을 비난했지만, 경찰노조는 경찰을 옹호했고 공산당의 파비앙 루셀은 “경찰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멜랑숑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지난해 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경찰노조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뉘프 유일의 정당이고, 이슬람포비아나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도 훨씬 강력한 입장을 취한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지도자 그룹의 고립성, 내부 민주주의의 결여, 다른 좌파 세력에 대한 우월성 때문에 비판을 자주 받지만, 이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점이기도 하다. 다원주의를 위한 다원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늘 자기의 비전과 정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 강조 지점이 변하기는 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대통령직 폐지, NATO 탈퇴, EU 탈퇴 등을 주장하며 늘 변혁적인 목표를 내세웠고, 유럽의 규정보다 자신의 공약을 우선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의 모든 매체로부터 공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자기의 비전과 정책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영국에서 비슷한 언론 공격을 줄곧 받았던 제레미 코빈은 당조직과 그가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둔 반대파 등 노동당 내부의 반발로 결국 무너졌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코빈의 2019년 패배 이후 멜랑숑은 브렉시트나 과장된 반유대주의에 대해 당내 반대파와 ‘공통지점’을 찾으려 했던 코빈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 내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논리를 만들어내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도, 그것의 해결책도 대중 속에 있다. 대중의 기대, 대중의 의지, 대중의 필요. 코빈은 그 속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냈어야 했다. 그러나 코빈은 반대로 당내 기득권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찾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아울러 “코빈이 정적들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하자 코빈을 지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좌파세력

이런 의미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대중적 기반으로 당내 기득권과 그들의 조직을 압도함으로써 다른 좌파대중운동이 달성하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 스페인에서 포데모스는 30년 가까이 양당체제의 주축이었던 사회노동당의 하급 파트너이고, 미국에서는 민주사회주의 의원들이 기득권 주류인 민주당 내에서 목소리만 내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키어 스타머가 당수가 되자 노동당내 좌파가 목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 이에 반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스펙트럼이 넓은 좌파세력 모두를 정치적으로 아우르고 이끌게 됐다.

앞서 말했듯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았다. 프랑스 사회적 자유주의를 만든 주역 중 하나인 올랑드 전 대통령은 뉘프가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반기업적이며 친러시아적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발이 큰 만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숫자와 열성은 점점 커졌다. 특히 놀라운 것은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이나 마크롱 진영의 공격으로부터 멜랑숑을 간간히 방어한 일간지 리베라시옹 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몇몇 지도자와 매체가 자석에 끌리듯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따르게 된 것이다.

프랑스 좌파가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도 이것이다. 더 급진적인 리더십이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12일 총선 1차 투표에서 뉘프는 26%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범좌파가 얻은 2007년의 36%, 2012년의 40%는 물론이고 2017년의 28%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좌파는 분명히 더 강해졌다. 좌파가 내세우는 정책과 좌파가 대변하려는 유권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프랑스 좌파를 주도했던 사회당과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녹색당은 지지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달라져 중상류층이 급증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지지자들은 보다 수평적이고 실업자와 청년들의 급증이 눈에 띈다.

아직도 어려운 싸움이 많이 남아 있다. 총선 1차 투표에서 르펜의 극우세력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강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주요 도시들을 제외한 지역에서 더 많은 블루칼라 지지자들을 확보했다. 멜랑숑이 이끄는 운동이 아직 지역적으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고, 주요 선거 때가 아닌 시기에도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노력으로 신자유주의 중도파와 극우의 대결로 굳어질 뻔한 프랑스 정치에 변혁정치가 다시 주요 의제가 됐다. 하지만 투표율이 겨우 50%인 선거에서 4분의 1, 혹은 3분의 1을 득표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19일 총선 2차 투표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지금까지의 변화만으로도 방향은 올바르게 잡혔다. 다음 의회에는 좌파 의원들이 대규모로 유입될 전망이다. 그 중에는 22개월 간의 호텔업계 파업을 이끌었던 청소노동자 레이첼 케케나 기니 출신의 직원이 출국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11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인 제빵사 스테판 라바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정치적 전투력, 강자에 맞서겠다는 결의, 그리고 적대세력에게 지도자나 정치적 의제를 바꿀 힘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 기반을 다졌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지난 수년 간 좌파 안팎으로부터 독단적이고 종파적인 구시대적인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멜랑숑 세력은 정치적 투지로 유권자에게 진정성을 입증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바람이 19일에도 이어진다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자기 정책에 맞게 현실을 변화시켜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