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판 노라로 새롭게 돌아온 헨릭 입센 원작, 연극 ‘인형(들)의 집’

연극 ‘인형(들)의 집’ ⓒ우란문화재단

노라가 돌아왔다. 2022년 대한민국 연극 무대로 노라가 돌아왔다. 원작인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1879년 노르웨이 왕립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인형으로, 결혼 후에는 남편 토르발트 헤르만의 인형으로 살아가던 노라가 자신의 굴레를 깨닫고 가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형의 집’은 초연 이후 각국에서 공연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초연 이후 14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인형의 집’은 무수히 많은 버전으로 재탄생됐다.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공연될 때마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22년 우현주의 각색과 연출로 무대에 오른 ‘인형(들)의 집’은 어떤 색을 입고 돌아왔을까?

새로운 시공간으로 돌아온 ‘인형의 집’

돌아온 ‘인형의 집’은 새로운 시공간에서 시작된다. 2020년 대한민국 서울, 노라는 인스타그램 6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이자 셀럽이다. 게다가 온라인 의류 쇼핑몰 대표로 완판 행진을 이끄는 성공한 사업가다. 민중 대학의 교수이자 40대에 총장에 낙점된 잘 나가는 인국의 아내이기도 하며, 훈훈한 외모의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열혈 엄마이기도 하다.

연극 ‘인형(들)의 집’ ⓒ우란문화재단

노라의 삶은 대부분의 셀럽들처럼 사람들의 관심사 한가운데 있다. 노라는 완벽한 가정을 가진 아름답고 멋진 커리어우먼이다. 이 정도면 노라가 가정을 버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안락하고 평화로운 노라의 집에 뜻밖의 인물들이 찾아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노라의 오랜 친구 주연은 20년 만에 노라를 찾아온다. 민중 대학 피아노과 교수에게 자신의 딸 피아노 레슨을 연결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뒤이어 남편 인국의 대학 강사 신용진이 노라를 찾아온다. 용진은 노라의 아들 공부를 도와주고 있기도 하다. 용진은 상습적인 성추행으로 피해 여성에게 고소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용진은 인국의 교수 임용 비리에 노라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살려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을 한다.

‘아름다운 집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을 뿐’

원작 속의 인물들이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상황으로 변신했다. 노라의 남편 헬메르는 대학교수 남편 한인국으로, 원작의 랑크박사는 인국과 함께 민중대학교 교수이자 이웃인 유진만 역으로 등장한다. 원작의 린데 부인 역할은 노라의 오랜 친구 김주연으로, 궁지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 온갖 수를 쓰는 원작의 크로그스타드 역할은 대학강사 신용진으로 재탄생했다.

무대 위 노라의 집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랏빛이다. 하지만 노라의 집 천장은 인형의 집처럼 유리로 형상화되어 있다. 순간순간 노라의 집을 들여다보는 등장인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천장 유리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집은 노라가 사는 ‘인형의 집’이다. 또한 60만 팔로우를 거느린 인플루언서 노라의 삶도 ‘인형의 집’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완벽한 삶을 sns를 통해 매일 보고 있기도 하다. 노라는 차를 따르는 순간에도 멈춰 인증샷을 남긴다. 노라의 삶은 매 순간 촬영되고 필터를 통해 편집되어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제 노라는 어떻게 됐을까? 노라는 시어머니 생신날 준비를 위해 전날부터 음식 준비부터 가족 파티 노래 연습까지 정신이 없다. 그런데 하얀 파티 드레스를 입고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온 노라에게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만다. 남편을 대학교수로 만들기 위해 노라가 돈을 상납했다는 사실을 인국이 알게 된 것이다. 2022년 새롭게 돌아온 연극 ‘인형(들)의 집’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간다.

먹이사슬의 시작점을 밝혀 통쾌하게 깨부수는 노라를 만나고 싶다

노라는 남편 인국에게 자신들은 ‘아름다운 집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노라는 최선을 다해 가정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꾸미고 며느리로 시댁 식구들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국은 공정이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위선적인 지식인과 성실한 남편의 역할을, 용진은 가난한 집안 아들로 집안을 일으킬 유일한 희망으로 살아갈 역할을. 주연은 딸 만큼은 좋은 학교 나와 좋은 남편 만나게 하기 위해 입시 부정도 불사하는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 인형(들)로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 결말은 원작과 비슷한 길을 간다. 정확하게 2022년 대한민국의 노라는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가정 내 권력구조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대학 내 ‘미투’ 운동을 연상시키는 대학강사 용진의 에피소드가 희화화되어 사라져버린 점이다. 남편 인국과 갈등을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겠지만 여전히 ‘미투’는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연극 ‘인형(들)의 집’은 그럼에도 제한된 사회 틀 속에서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처럼 갈등과 권력이 이동하는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먹이사슬 속에 여성과 남성이 따로 있지 않다. 우현주 연출은 “결국 모든 사회의 갈등이 ‘누가 누구보다 더 많이 가졌으며 그것이 얼마나 부당한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밝혔다. 혹 다음 버전으로 새로운 인형의 집을 만나게 된다면 그 먹이사슬의 시작점을 밝혀 통쾌하게 깨부수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노라를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극 ‘인형(들)의 집’

공연날짜 : 2022년 6월 16일(목) ~ 2022년 6월 27일(월)
공연장소 :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공연시간 : 평일 20시/토요일 19시/일요일 15시(6월 21, 22일 공연 없음)
관람연령 : 만 13세 이상
러닝타임 : 125분
원작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제작진 : 각색, 연출: 우현주/조연출 김소현/안무 안영준/음악 장한솔/무대 영상 조수현/음향김석기/조명 노명준
출연진 : 임강희, 이석준, 하성광, 김정민, 장석환
공연문의 : 02-794-0923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