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지은·김별 배우 “‘웰킨’은 집안일에 관한 연극..여러 가능성이 작품의 힘”

두산인문극장 연극 '웰킨'에 출연한 김별 배우와 하지은 배우 ⓒ김세운 기자


한 동네 아이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살인 혐의를 받은 샐리 포피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샐리가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형은 잠시 유예된다. 그리고 샐리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2명의 배심원이 모인다. 12명은 나이도 출신도 다른 여성들이다.

약초를 캐고, 무를 뽑고, 절구질하고, 빨래를 너느라 '하늘'을 볼 새도 없는 '집안일'에 갇힌 여성들이 샐리의 생존 열쇠를 쥐게 된 것이다. 12명의 여성은 임신·출산이라는 개인 경험 혹은 간접적 지식을 활용해 뜨겁게 논쟁한다. 샐리는 임신인가, 아닌가.

관객도 처음엔 그 부분에 몰입한다. 저 12명의 여성이 어떤 방법으로 샐리를 벌하거나 혹은 구하게 될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13인의 대화는 샐리의 임신 여부나 살인 진위 등을 넘어서서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르는 거대한 역사를 건드린다. 여성들의 집안일과 부불노동, 자본주의, 마녀사냥, 법, 여성의 몸, 과학 등 작품은 마치 세포분열을 하듯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 낸다. 웰킨은 '집안일'을 통해서 '우리 세계'를 말한다.

'웰킨'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총 15명이다. 어느 역할 하나 자신만의 서사를 갖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그만큼 작품은 입체적이고 또 촘촘하다. 그중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임신을 주장하는 샐리 포피와 샐리 포피의 임신을 확신하는 엘리자베스 루크다. '영아 살인사건' 이외에도 샐리와 엘리자베스는 '어떤 사건'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샐리 포피 역할을 맡은 김별 배우와 엘리자베스 루크 역할을 맡은 하지은 배우를 만나 '웰킨'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산인문극장 연극 '웰킨'에 출연한 김별 배우와 하지은 배우 ⓒ김세운 기자


'웰킨'의 시작


'웰킨'의 시작은 흥미롭다. 한 배우의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 배우가 바로 하지은 배우다. '웰킨'은 2020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가졌는데, 당시 하지은 배우는 '웰킨' 배우들의 사진을 보게 됐다.

하지은 배우는 "세계 각 곳에 있는 극단들을 팔로우 해놓고 보는 게 취미였다. 그러다가 '웰킨' 사진에 꽂혀서, 아마존에서 검색해 봤는데 E-Book 출판물이 있더라"며 "고어도 있고 어려운데 제가 뭐에 씌었는지 단어를 찾아가면서 하룻밤 꼴딱 새서 읽었다"고 떠올렸다.

이후 그는 '씨어터 송' 대표이자 '웰킨'에서 엠마 젠킨스 역할을 맡은 송인성 배우에게도 '웰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했다.

"제가 장난으로 송인성 선배님에게 작품을 사달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배우들도 작품이 다 취소됐는데 우리끼리 번역해서 읽어보면 어떨까 했다. 근데 선배님이 '네가 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되죠' 이렇게 된 것이다. 제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꽂혀서, 주변 분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물었고 여러 지원 사업에 써서 내고 그랬다. 이런 식으로 '웰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배우 한 명의 관심으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하지은 배우가 뿌린 씨앗으로 '웰킨'은 2020년 낭독공연을 진행하게 됐다. 여기에 진해정 연출가가 함께했다. 어쩌면 '웰킨'의 수명은 여기까지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은 배우는 두산아트센터에도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루시 커크우드의 '차이메리카'(2015)를 올린 바 있는 두산인문극장과 인연이 닿아, '웰킨'은 올해 다시 두산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나게 됐다. 2020년 낭독공연 이후 2년 만이었다.

연극 '웰킨' ⓒ두산아트센터


김별의 샐리와 하지은의 엘리자베스


김별 배우는 낭독공연에 이어 올해 무대도 함께 한 배우 중 한 명이다. 결국 '웰킨' 대본을 두 번 접한 셈이다. 그는 처음 낭독공연을 할 땐 작품도 그렇고 샐리도 그렇고 이해가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저 나름대로 편견을 갖고 있었다"며 "'왜 이렇지? 샐리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지?'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김별 배우는 올해 다시 대본을 보면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그 사이에 스스로도 많이 변한 거다. 가치라든지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 많이 바뀌게 된 거다. 그런 면에서 '웰킨'이 좀 다르게 보이더라"며 "지금도 100% 안다고 볼 수 없지만, '아, 이게 그런 말이었구나, 이렇게 해석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이런 편견을 가졌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웰킨'에서 사람들은 샐리에게 재단된 편견을 내놓는다. 악인, 악마, 마녀처럼 보이는 것을 저도 처음엔 경계하긴 했다. 제가 의도를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작품 안에서 그려져 있는 것들이 무대에서 그대로 노출이 됐을 때 거기서만 멈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관객들이 샐리 포피에 대한 동정을 갖게 하거나 '샐리의 편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착각을 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아! 굳이 그것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왜 샐리는 그렇게 보이면 안 되는가, 왜 이 여성은 악마·철 없는 아이·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되는가, 왜 관객들은 이 사람에게 동정표를 던져야 하고, 왜 관객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게 제 안에서 무너진 거다. 이건 허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은 배우는 "캐릭터를 어떻게 읽고 분석했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지금 이 상황들이 어떻게 변질될지 그런 것들을 분석하긴 한다. 그 흐름들을"이라며 운을 뗐다.

"그래서 사실 캐릭터를 분석한다는 말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캐릭터는 사실 분석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람이 만나는 세계, 예를 들면 리지는 버터통을 일주일에 세 번을 쳐야 한다, 아니면 리지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이다, 리지가 하는 일은 이런 일이다 등 리지가 보고 만나왔던 세계들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구성하려고는 했다. 그런 것들이 장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끔. 분석할 때는 배우들도 그렇고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렇지만 원래 원문에서 읽다 보면 각자가 받는 느낌이 되게 다르다. 그래서 일단 팩트를 체크하려고 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시작점을 분명히 하고 가려는 편이다. 대본에서 찾아지는 지점들을 좀 보려고 하는 편이다."

연극 '웰킨' ⓒ두산아트센터


다락방 의미


12명의 배심원이 모인 장소 역시 눈길을 끈다. 바로 법원 '다락방'이다. 이곳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먹을 것도 없고, 춥고, 좁고, 나갈 수도 없다. 무엇보다 법원은 배심원들에게 음식, 음료, 불, 양초 등을 모두 금지했다. 게다가 배심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다락방으로 들어온 미스터 쿰스와 말을 섞어서도 안 된다.

다락방은 '여성들이 집안일에서 벗어나 능력을 발휘하는 한편 또다시 여성으로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 공간'으로 보인다. 그 공간 위에 각 인물의 서사가 층위를 쌓아가면서 공간의 의미는 한층 깊이와 폭을 넓혀간다. 엘리자베스와 샐리에게 이 다락방이라는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김별 배우는 "샐리가 무대 가운데에 있는 것은 몇 순간이 안 된다"며 "대부분 모서리나 기둥 옆이나 난로, 소변을 보거나, 진찰하는 부분도 그렇다. 이 극 안에서 다락방이 더럽고 춥고 작지만, 이 공간 안에서조차 샐리는 밀려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샐리에게 다락방은 처절한 곳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별 배우는 다락방 속 샐리의 움직임을 그림으로 그려봤던 것에 대해 설명했다. 샐리의 직선 움직임과 비직선 움직임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줬다.

"샐리의 움직임은 강하게 직선을 그어 가는 이미지로 떠올랐다. 근데 샐리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직선을 쓰지 않는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장면에선 직선을 쓰지 않는다. 그 싸늘한 공간에서 진찰을 받을 때 차가운 기계음이 들릴 때 샐리가 고통의 소리를 낸다. 그때도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거다. 작품에선 악마로 그려지고, 배심원도 그렇게 보지만 이 다락방에서 고통을 느끼는 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때 움직임이 달라지더라. 직선이었던 움직임이 뭔가 조금 지그재그, 아주 조금 틀어지게 되거나, 그런 부분들이 생기게 된다. 그런 불균형들이, 균열이 생기면서 샐리 본인이든 배심원들이 샐리를 피하기 위해서 균열이 깨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처음엔 샐리가 그 균형을 깼다가, 나중엔 배심원들이 알아서 샐리가 지나가면 그 사람을 피하게 되면서 균형이 깨지거나."

하지은 배우는 "저희 연출님은 다락방 자체를 여자들이 배심원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들어왔지만 마치 샐리랑 별다른 지점이 없는 것처럼 그린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다락방은 어떤 의미의 공간인지도 덧붙여 설명했다.

"엘리자베스에게 이 다락방이라는 공간은 사형대 바로 밑에 있는 공간이다. 내가 드러날 수도 있고, 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내가 목이 매달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에 오게 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는, 그런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샐리를 대하는 11명과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샐리를 싫어하고, 의심하고, 배척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엘리자베스는 샐리의 임신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나름 정연하게 펼쳐나간다. 그래서 처음에 엘리자베스는 정의와 상식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연 시간이 흐를수록 엘리자베스가 품고 있던 '어떤 일'이 공개되면서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궁금해진다. 엘리자베스가 샐리를 보호하려고 하는 이유가 굉장히 복합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를 이끄는 힘은 다양할 수 있다. 죄책감일 수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일 수도, 법원의 불합리함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다. 어쩌면 연대나 인류애일 수도 있다. 정말 여러 가지 가능성이 담겨 있다. '엘리자베스를 이끄는 힘'에 대해 묻자 하지은 배우는 "정리하는 순간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풍부한 것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대신 그는 경계했던 점을 언급했다.

"작가 인터뷰에 있던 건데, 엘리자베스가 헬리 폰다 신드롬처럼 페미니즘, 인권, 정의를 부르짖는 대단한 슈퍼히어로처럼 보여지기를 기피한다고 이야기를 해놨더라. 저희도 그것에 대해 굉장히 경계했다. 저는 엘리자베스가 여기서 진보적인 사람, 상식과 정의를 알아서가 아니라, 불합리함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부르짖을 수 있고 불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교육을 받고 '인간들은 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당해봤기 때문에 내가 불합리한 것을 겪어 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연극 '웰킨' ⓒ두산아트센터


'웰킨'에 대하여


샐리를 둘러싼 장면 중엔 폭력에 관한 장면도 있다. 김별 배우는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고 했다. 연출가는 아니지만 연기하는 배우로서 폭력 장면이 그대로 재연될 것인지, 재연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왜냐면 누군가에겐 이 폭력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트리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힘의 크기와 양이 똑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터치로 일어나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도구를 이용한, 초라든지 망치라든지 불이라든지, 이런 걸로 인해서 힘의 크기가 똑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폭력 장면과 더불어서 죽음에 대해서 그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과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이 가볍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강했다."

하지은 배우는 2020년 낭독공연 당시 미스터 쿰스의 폭력 장면에 대해서 덧붙여 설명해 줬다.

"낭독이니까 당연히 장면이 재연되지 않았다. 그때는 이름 판을 제작했다. 예를 들어 제가 등장하면 이름 판을 놓고 대본을 읽는 거다. 퇴장하면 덮는다. 이런 식으로 운용했다. 쿰스의 폭력 장면은, 12명 배심원이 이름 판을 세워 놓고 퇴장하고, 쿰스가 맨 끝에 있는 샐리에게 걸어가면서 이름 판을 탕탕탕 덮으면서 다가갔다. 12명의 이름 팻말이 탕탕 부딪치며 꺾이는 거다. 배심원들의 이름, 명예, 존엄, 선택들을 다 꺾는 거다. 폭력이 재연되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부분을 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해 주셨다."

'웰킨'의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뜯어볼수록,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풍성하다. 여러 레이어들이 겹겹이 쌓여 입체적인 세계를 구현한다. 15명의 배우들이 만들어 낸 우리 시대 이야기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연극인 이유다.

하지은 배우는 '웰킨은 어떤 작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루시 커크우드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생각을 밝혔다.

"지금 두산인문극장에서 '공정'이라는 주제 아래 작품이 올라가고 있다. '웰킨'은 집안일에 관한 연극이고, 과연 이 집안일은 누구에게 어떻게 왜 부과됐으며, 그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그게 혹시 창공 하늘은 아닐지. 그런 문장으로 정리되면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별 배우는 "'웰킨'에선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웰킨'이 단순히 연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웰킨' 안에서 처음에 무리를 지어서 다니던 여성들이 나중엔 뒤바뀌어서 다른 무리를 지어서 나가고 하지만 끝까지 모든 여성이 연대했다고 말하긴 어려운 작품인 것 같다. 관객 중에 '웰킨'을 보시고 실제 배가 아프다고 하신 분이 있었다. 그렇게 아프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전하게 봤으면 좋겠다."

지난 7일 무대에 오른 연극 '웰킨'은 오는 25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