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죽은 척하는 순간에도 이어지는 해파의 노래

싱어송라이터 해파의 첫 정규 음반 [죽은 척하기]

싱어송라이터 해파 ⓒ기획사 해파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비평은 안일하다. 하지만 오래 품지 않은 이야기는 대개 난삽하다.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면 대개 작가의 경험일 거라 단정한다. 언제 그런 경험을 했는지 궁금해 하고, 작가가 진실하고 진정성 넘친다고 평가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예술을 통해 진심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하물며 “2016년부터 올해까지 어푸어푸하며 만든 노래들이 담겨 있습니다.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파도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제 나름의 방책들입니다”라고 적은 음반 앞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솔로 음반을 발표하기 전 포크 듀오 시옷과 바람에서 활동했던 해파의 전력은 그의 첫 솔로 음반 [죽은 척하기] 또한 당사자의 진솔한 고백으로 듣게 유도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무엇이 행복인지 알려주는 / 사람들에게서 멀리 /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 방향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 정처 없이 흔들리다 / 결국 제자리로 왔구나”(‘나의 언덕’), 또는 “눈을 떠도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 지금 여기 이 공기가 이대로 멈췄으면”(‘Safe Heaven’) 같은 노랫말은 다른 해석이 불필요하다. 불가능하다. 이것이 싱어송라이터 해파의 경험이고, 삶이고, 생각일 거라 확신하기 마련이다.

Haepa (해파) - I'm Finally a Ghost

하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쓸 수 있고,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수천 곡씩 쏟아지는 새 노래들은 결핍 아니면 충만을 노래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극 받으면서 무한정 넓어지고 매 순간 작아진다. 그렇다고 아무 노래에나 마음을 들키지는 못한다. 노랫말과 멜로디와 리듬과 사운드가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에 자신을 동여맬 수 있어야 한다.

해파의 음반은 노랫말만으로 심장을 묶지 않는다. 보컬, 일렉트릭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 코러스를 사용한 음악은 흐리고 축축하다. 소리의 채도와 농도, 점성과 굵기 때문이다. 음반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부유하듯 울려 퍼진다. 부유하듯 울려 퍼짐으로써 노랫말을 음악으로 완성하고 외화한다. 매끄러운 멜로디에 붙은 조심스럽고 간소한 연주는 노래에 엉겨 붙지 않고 미끄러진다.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의 간절함을 표출하는 해파의 방식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비중이 높은 음악은 포크 듀엣 시절의 해파를 떠올릴 기회를 주지 않고, 새로운 뮤지션으로 해파를 기억하라 종용한다.

음반의 전반부에 담은 쓸쓸한 노래들은 비관과 냉소만 노래하지 않는다. “아 나는 느리게 가고 있지만 / 아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 / 만난 적은 없지만 모른 척 하긴 싫어요 / 말주변은 없지만 침묵하기는 싫어요”(‘혼잣말’)이라는 노랫말에서, “이유는 없어요 그게 내 마음이에요 / 바보 같다 해도 그게 내 마음이에요 / 어쩔 수 없어요”(‘마음’)라는 목소리에서 해파는 스스로를 감당하고 살아가는 이를 그려낸다. 또 “조용히 가라앉아 손잡고 / 미운 세상을 바라봐요 / 조용히 가라앉아 손잡고 / 미운 우리를 바라봐요 / 끈적하게 엉킨 / 분노와 체념과 사랑의 / 춤을 춰요”(‘춤‘)라고 청하는 노래에는 소극적인 적극성, 혹은 절망의 의지라고 해도 좋을 태도가 오롯하다.

싱어송라이터 해파 ⓒ기획사 해파

그럼에도 좀처럼 자신의 마음 바깥을 이야기하지 않는 노래들은 마음의 밝은 구역과 어두운 구역을 고루 기록하는데 충실하다. 흔들리는 마음과 흔들림을 견디는 마음까지 담는 노래는 한 사람의 보편적인 실체에 근접한다. 그리고 음반의 일관된 사운드는 해파의 음악과 음악 속 세계의 튼실함을 증거한다. ‘커다란 망치’와 ‘I'm Finally A Ghost’에서 록킹해지고 리드미컬해지는 노래의 태도를 특이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모르겠어요’에서 고요하게 침잠하던 연주가 잠시 재즈의 방식으로 펼쳐질 때에도 마찬가지다.

죽은 척 하는 순간에도 사람은 견디고 꿈꾸고 기다린다. 살다보면 살아지고, 그 순간들이 노래가 되기도 한다. 이 또한 삶이다. 그래서 삶은 신비롭고, 노래는 특별하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