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원전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란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다. 비상한 각오로 일감과 선(先)발주를 과감하게 해 달라. 그러지 않으면 원전 업계 못 살린다.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이게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를 방문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에게 했다는 발언이다. 오해니 어쩌니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을까봐 일부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모조리 옮겨 적었다.
나는 이 보도를 보고 정말로 정신이 멍해져서 혹시 진짜로 내가 오해한 대목이 있을까봐 저 인용문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니까, 원전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 안전을 중시하는 사고를 버려라, 이게 그 발언의 요지 아닌가?
그래서 묻는다. 윤석열 대통령, 진짜 회까닥 미치셨나? 헛소리에도 레벨이 있다. 그런데 이 발언은 헛소리 레벨에서도 측정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진출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두 번이나 안겨준 핵발전소 안전사고를 두고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라”라고? 그 핵발전소가 너님 집 앞마당에 있어도 그따위 소리를 할 것인가?
안전의 경제적 가치
지금 윤석열 대통령 말은 “안전을 포기하는 대신 핵발전소로 돈을 잔뜩 버는 것을 선택하자”는 말이다. 이 말은, 이 사람 머리에는 오로지 돈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는 모든 문제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설명을 무척 혐오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같은 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인간의 가치? 생명의 소중함? 이런 설명을 아무리 해줘봐야 알아먹지를 못한다. 그래서 (하기 싫은 설명이지만) 돈의 액수로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해 주려 한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있었다. 사고를 수습하는데 든 사회경제적 비용이 얼마였을 것 같은가? 2006년까지 피해자 숫자는 무려 260만 명, 2015년 기준으로 비용은 1800억 달러에 육박했다. 200조 원이 넘는 돈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분의 1이 이 사고 한번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어땠을 것 같은가? 애초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처리 비용을 11조 엔 정도로 추산했지만 2016년에 이 수치를 갑절(22조 엔)로 늘렸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정부의 생각일 뿐, 2019년 일본경제연구센터(JCER)는 이 비용을 무려 35조~80조 엔으로 늘려 잡았다. 80조 엔이면 우리 돈으로 약 800조 원이다. 우리 정부의 1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고, 한국이 매년 생산하는 총 부가가치의 절반에 육박한다. 게다가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사고 처리 비용은 일본 정부의 예상보다 매년 1조 엔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후쿠시마 참사의 원인
2011년 사고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도쿄전력이 소유하고 관리하던 발전소였다. 그리고 당시 도쿄전력은 공기업이 아닌 민영기업이었다. 이 사실은 이 사건의 핵심 원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영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오로지 이윤, 즉 돈벌이이기 때문이다.
공기업과 민영기업이 핵발전소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공기업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반면 돈벌이를 중시하는 민영기업은 안전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조차 아끼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공무원들에게 이 민영기업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핵발전소가 주로 바다를 끼고 건설되는 이유는 냉각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는 우라늄의 핵분열로 생긴 열을 이용해 물을 끓인 뒤, 이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이 매우 뜨거워 반드시 식혀줘야 한다. 냉각수는 바로 이 과정에서 필요한 물이다.
문제는 핵발전을 통해 발생하는 열이 엄청나 이를 식히는 데 사용되는 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데 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핵발전소 1기 당 사용되는 냉각수의 양은 1초에 수십 톤에서 수백 톤에 이른다. 그래서 주로 바닷가에 핵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는 모습. 2021.12.29 ⓒ뉴스1
그런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혹은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불리는 그 지진이 발생하면서 높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쓰나미가 핵발전소를 덮치고 말았다. 이 바람에 발전소 일부가 물에 잠겼다. 그리고 이 사고로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에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냉각수가 부족해지자 발전소 내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흡사 발전소가 용광로와 비슷해졌다고나 할까? 결국 발전소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됐다. 이게 바로 이 사고의 요지다.
윤석열의 시장주의와 핵발전소가 만나면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쿄전력이 오판을 거듭했다는 데 있다. 냉각수 펌프 작동이 중지됐을 때, 열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직접 퍼부어서라도 원자로를 식혔다면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민영기업이었던 도쿄전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제된 냉각수가 아니라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을 그대로 원자로에 쏟아 부을 경우 그 원자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을 아끼려다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도쿄전력이 지은 죄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발전소 노동자들이 대부분 사고 당일 퇴근해버린 것도 참사를 키운 중요한 원인이었다.
지진 직후 도쿄전력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퇴근을 할지 말지는 현장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를 받은 현장 노동자들 대부분이 퇴근해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노동자들 대부분이 도쿄전력 본사 소속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서 파견을 나온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는 대목이다. 이 또한 도쿄전력이 비용을 아끼려고 한 짓이었다.
사고 총 책임자인 도쿄전력 사장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의 무책임한 태도도 전 세계의 분노를 자아냈다. 시미즈는 사고가 발생한지 29시간 뒤인 3월 13일, 단 한 차례 사과회견을 한 이후 잠적해버렸다. 노동자 300여 명이 현장에서 냉각 작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시미즈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후쿠시마를 찾은 때는 사고 발생 무려 한 달 뒤인 4월 11일이었다.
시미즈는 사고 직전해인 2010년 도쿄전력 사장에 오른 인물이었는데, 그의 별명은 ‘비용 감축의 귀재’였다. 그는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했던 민영기업 도쿄전력에 가장 적합한(!) 경영자였던 셈이다. 이 긴 이야기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도쿄전력은 그 알량한 돈벌이에 목숨을 걸다가 이 끔찍한 사고를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지금 “안전보다도 돈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치하에서 핵발전소가 계속 확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이 정권은 보나마나 공기업 효율화 운운하며 비용을 줄이자고 난리를 칠 것이다. 벌써 “안전이 뭐가 중요하냐?”는 참담한 말이 대통령 입에서 버젓이 튀어나오지 않나?
그러면 핵발전소를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비용 절감을 최우선의 가치로 둘 것이다. 그래서 벌어진 사고가 후쿠시마 참사다. 이 끔찍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안 벌어질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말실수로 치부할 일이 따로 있고, 절대 그렇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따로 있다. 핵발전소를 확대하면서 안전을 중시하지 말라니, 윤 대통령 정녕 미친 건가? 도대체 뭐에 그렇게 미쳤나? 돈에 미쳤나? 원전 카르텔 보호에 미쳤나? 아니면 그냥 미쳤나?
제발 이 광기를 멈춰라. 다른 건 몰라도 국민 안전이 걸린 문제에 지도자가 미치면 이 나라는 정말로 답이 없다. 윤 대통령 당신에게는 돈이 걸린 문제일지 몰라도, 우리 민중들에게는 생명이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