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지학의 세상다양] 국가의 역할이 ‘반도체 인력 공급’이라는 대통령

편집자주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의 칼럼을 새로 연재합니다. 세상은 다양한 존재가 다양한 색깔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육과 정치, 미디어에는 일방통행식 시선과 주장이 넘쳐납니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그래서 다양성이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을 꿈꾸는 ‘김지학의 세상다양’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말 중에 가장 나쁜 말로 뽑아야 할 정도로 해로운 말이다. 이런 말을 통해 우리는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 ‘가난은 개인의 문제’, ‘가난은 국가와 사회 혹은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가난은 구조의 문제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가난을 구제하지 못할 나라님이라면 나라님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나라님(국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날 똑같은 시험지로 똑같은 시험을 치는데 차별이 어디 있냐’는 식의 시험주의 수준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주장인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놓은 사회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더 넓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제한된 상상력은 ‘공산주의도 아닌데 결과적 평등까지 보장할 수는 없지 않나? 기회의 평등만 제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 우리를 가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호칭 생략)는 이런 인식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공정’ 담론을 캐낸 것이다. 이준석의 등장과 공정 담론의 유행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어 온 켜켜이 쌓여온 시절의 결과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급식 운영 촉구 기자회견에서 폐암으로 산재사망한 학교급식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2022.06.15 ⓒ민중의소리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인천국제공항 보안경비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일련의 격한 감정과 행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보안경비직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T.O(입사정원)도 겹치지도 않고 공항공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의 정원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타이틀을 그저 ‘공부도 안한 사람들이 대접만 받기를 바란다’, ‘차별받기 싫으면 너도 시험치고 와라’, ‘실력 없는 사람들이 노력도 하지 않고 특혜를 누리려고 한다’는 생각이 세상을 압도했다. 실력이라는 단어가 오로지 ‘시험 성적’을 뜻하는 단어로 변해버렸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80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38.4%로 대한민국 역사상 역대 최대 비율이다(통계청, 202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25년도 더 된 이야기라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1997년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매일 출근해서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은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없었다. 재벌 기업들이 ‘너무 힘들다’며 비정규직 고용을 허락해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것을 당시 정부가 받아들였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한시적으로만 허용했어야 하는 비정규직 고용이 이제는 아주 당연한 고용의 기본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정상화일 뿐이다. 우리는 왜 비정규직 고용이 당연한 세상을 용인할까?

가난 구제 못하는 나라님 아니라
정책과 제도로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국가 역할
공교육과 대학 목표는 ‘자본을 위한 노동자’의 공급 아니다


국가는 정책과 제도를 통해 자본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는 분배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게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심지어 모든 사람을 공멸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음에도 ‘자본주의가 문제다. 체계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다. 돈이 중심이 세상을 끝내고 사람(그리고 모든 생명)이 중심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문재인 정권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시민과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늘 ‘예산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들은 속내를 투명하게 비추지는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하 호칭 생력)은 다르다. 핑계조차 없다. 대놓고 말한다. 후보 시절에도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120시간 노동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도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장시간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닌 ‘장시간 일할 권리’를 말하고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 아닌 ‘가난한 사람이 부정식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6.07. ⓒ뉴시스

‘검사 출신이라 헌법은 잘 모른다’던 윤석열은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 후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발언은 “교육부는 경제부처”라는 발언과 “국가는 기업”이라는 발언이다. 국가의 역할과 존재의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 사망위험이 2.8배나 높다(2019년의 정부의 공식 확인)는 점과 반도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오직 ‘국가 안보와 경제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학과를 늘리라’고 말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행복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기업의 이윤확대와 그것을 위해 기업에 효율적으로 인력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인 정부에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공교육과 대학은 ‘자본을 위한 노동자’의 공급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 정상성에 포섭되기 위한 몸부림으로서의 삶이 아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삶,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발견할 수 있는 능력, 모든 사람과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태도를 배우고 평등, 협력, 연대를 연습하는 시간과 공간이 돼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하자마자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버튼을 열심히 누르고 있다. 인권운동, 노동운동, 성평등운동 등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과거로 빠르게 회귀하는 반지성주의 정권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며 운동의 방향을 잡고 있다. 나는 시민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관점을 소거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빈곤과 차별 등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만들며 손쉽게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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