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올해로 경찰 경력 23년 차인 A경위는 최근 서울과 천안에 있는 근무지를 오가는 일정으로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막 자다 깬 듯 잠겨 있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그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뒤, 경찰서로 복귀해 야간 당직을 서고 겨우 2시간 눈을 붙였다고 한다.
"저는 경찰이니까, 경찰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나서는 거예요. 경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렇게 정부가 경찰을 직접 통제한다면 경찰이 현장에서 소신껏 수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행정안전부(행안부) 직원의 전화 한 통에도 정부의 지시가 아닌지 괜히 눈치 보게 되고, 겁을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위직 경찰 주제에 감히 거부할 수 있겠어요? 정말 저희는 숨통이 조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A경위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전국의 일선 경찰들의 '상경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 휴가를 내거나 업무 외 시간을 쪼개서 서울로 향하는 식이다. 모두 윤석열 정권의 경찰 통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 속에서 제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하고, 근조 리본을 단 경찰관들이 거리로 나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을 비롯한 전국의 경찰서 앞에는 정권의 통제에 반발하는 현수막도 내걸렸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항의성 사표를 던졌다. 경찰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며 집단적인 목소리를 낸 건 사실상 처음이다.
경찰은 정부의 직접 통제 왜 반대할까 "지금은 정치권에 예속된 상황 더 끊어낼 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난 27일 장관 자문기구인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 권고를 그대로 수용해, 행안부 내에 경찰을 지휘·감독하기 위한 기구로 과거 경찰국과 같은 조직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규칙을 제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윤석열 정권의 경찰 장악 시나리오가 공개되자, 일선 경찰부터 경찰 지휘부까지 유례없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일반 경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일선 경찰에서 반발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했지만 오히려 경찰 내부에서는 이 장관의 인식에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이 장관이 경찰 조직의 속성에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는 것이다.
모든 조직이 인사에 매우 민감하지만 경찰의 경우 인사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총경 이상 고위직 비율이 다른 정부 조직에 비해 매우 낮은 데다가 퇴직 후 변호사 개업 등이 가능한 검사와도 확연히 다른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은 자연스럽게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개별 수사에도 정권의 입김이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경찰과 시민사회단체, 여러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부분이다.
실제 이 장관은 행안부 내에 조직을 두고 경찰공무원법에 근거한 자신의 권한인 총경 이상 경찰 인사의 제청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총경은 경찰서장이나 경찰청 시도청의 과장급이다. 총경 이상으로는 시도청 차장급인 경무관, 시도청 청장급인 치안감, 경찰청 차장급인 치안정감, 경찰청장인 치안총감 등이 있다.
경남 마산에서 근무 중인 B경감은 "경찰청 시도청의 수사과장, 형사과장 등도 다 승진하고 싶지 않겠나. 그러면 인사권을 사실상 쥐게 된 행안부 장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정보부터 시작해 모든 걸 다 (정권에) 갖다 바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C경위도 "경찰을 향해 그렇게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요구해도 그에 어긋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지 않았나. 그런데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장악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더 심해지겠나"라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근무 중인 D경위도 "지휘관 성향에 따라서 수사나 업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업무가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이겠나"라고 지적했다.
제일 먼저 우려되는 건 집회·시위 대응의 변화다.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지구 끝까지' 발언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집회·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경찰청 소속 E경정은 경찰권이 오·남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이명박 정부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만일 정부에서 '집회·시위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하라'고 하면, 과거 '명박산성'이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당장 정권의 기류를 읽은 서울경찰청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지구 끝까지 쫓겠다고 하지 않나. 윤석열 정부에서도 유모차 끌고 집회에 참가한 엄마들을 때려잡는 일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봉쇄하기 위해 광화문에 컨테이너 박스로 바리케이드를 쳐 '명박산성'이라는 조롱을 자초했다. 당시 경찰은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참석한 엄마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했다.
E경정은 "당시 나타난 문제들이 정부의 주장처럼 경찰권이 비대해져서 생긴 문제인가. 경찰권이 정치권에 예속돼서 생긴 문제 아닌가"라며 "그런 역사를 볼 때, 경찰이 정치권에 예속된 상황을 더 끊어내려고 노력해야 할 때인데 지금은 정권에 더 예속시키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나아가 E경정은 다른 수사 영역에도 정권이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선거 범죄의 경우 기본적인 선거사범의 통계 현황 정도야 공유할 수 있지만, 인사권 등을 다 쥐고 있는 행안부 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느니마느니 논란이 너무 길어지지 않느냐', '이건 확실히 수사하라'는 식으로 압박을 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박산성' 떠올리게 하는 윤석열 정권의 경찰 통제 구상 "정권이 영향력 행사할 우려 커져"
경찰 수사관 출신인 손병호 변호사는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쉽게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다. 그는 현재 상황을 두고 "기시감이 든다"고 평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서울 노량진경찰서(현 동작경찰서) 지능팀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손 변호사는 경찰서장의 호출로 서장실에서 국무총리실 관계자를 만나게 된다. 당시 총리실 산하에는 공직자 비위를 감시·감독한다는 명목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 중이었는데, 자신들이 수집한 한 민간기업과 관련된 문건을 건네며 사실상 수사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지금은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로 널리 알려진 김종익 씨에 대한 얘기다.
김 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한 일명 '쥐코'라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했다는 이유로 정권의 표적이 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수사권이 없음에도 김 씨 회사로부터 회계자료와 법인카드 사용 내역 등을 강압적으로 확보했으며, 그렇게 불법 사찰한 정보를 일선 경찰서에 쥐여주며 '김종익의 뒤를 파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한 당시 수사팀장과 손 변호사는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강조하면서 수사를 착수할 근거가 될 수 있는 공문을 요구했고, 그 뒤에야 진정 사건에 준해 내사에 착수했다. 공문에는 김 씨가 회사 자금을 횡령해 촛불집회의 자금을 댔다거나, 노사모 핵심 멤버라는 등의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혐의없음'이었다. 그러자 총리실 관계자는 자신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장을 총리실로 불러 사실상 감금했다. '당신, 좌익 경찰이냐'는 폭언을 하고, 감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쓰게 했다. 당시 수사팀장은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손 변호사는 전했다. 손 변호사 역시 수사팀에서 배제되고, 다른 수사관으로 교체됐다. 정권이 원하는 대로 경찰 수사 결과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일로 손 변호사와 수사팀장은 감찰까지 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역임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경찰청 소속 정보국·보안국·대변인실 등 부서 소속 경찰 1,500명을 동원해 댓글 등을 통한 여론 조작 활동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이 확정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지낸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이철성 전 경찰청장도 정보 경찰을 동원해 총선과 관련한 선거 정보를 수집하는 등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손 변호사는 "만약 경찰국이 생긴다면, 행안부는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할 것"이라며 "경찰국장이나 그 밑에 있는 실무진들이 사실상 실세가 돼서 정권 차원의 주문을 받아 경찰 수사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훨씬 커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총경 이상은 행안부 장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고, 총경 밑의 경찰들은 간부들이 하달하는 세세한 지침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정권 차원에서 개별 사건마다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 역시 윤석열 정권의 경찰 장악이 현실화될 경우 이명박 정권의 집회·시위 과잉 진압이 재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집회 주최 측과 경찰이 현장에서 소통하며 돌발 상황이 발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정권 눈치를 보느라 현장 경찰관의 재량이 거의 없었다"며 "물대포를 쏴야 할 상황도 아닌데 위에서 쏘라고 하니 '큰일 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간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경찰관이 현장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겠나. 이런 게 경찰관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민 장관은 대체 왜? 뒤따르는 의문에 궁색한 변명만 하는 정부
각계각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은 "두 달이면 여론 수렴은 충분히 된다"며 데드라인까지 공개했다. 내달 15일 최종안을 발표한 뒤 시행령을 개정하면, 8월 말에는 경찰국 설치가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최종안 발표 전까지 현장 경찰관 등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이 삭제된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처사이며, 시행령 개정만으로 경찰국을 설치하는 건 위법이라는 거센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 장관의 강행 의지를 막지 못했다. 이 장관의 속전속결 행보를 두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라고 강변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을 장악한 데 이어 윤 대통령 고등학교·대학교 후배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통해 경찰마저 장악하려 한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연이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축소되자, 그 권한을 넘겨 받은 경찰까지 통제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미 자문위 설치 단계에서부터 강행 조짐은 엿보였다. 이 장관은 취임 전부터 자문위를 꾸렸고, 자문위는 이 장관 취임식 당일 첫 회의를 가졌다. 자문위는 한창섭 행안부 차관(공동위원장), 이용철 행안부 기획조정실장, 경찰청 수사기회조정관 등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6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됐는데, 외부위원 대부분이 법조인으로 꾸려졌다. 한 차관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정근 변호사 역시 법조인이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자문위 인적 구성에 경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있는 전문가가 포함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자문위 구성 단계에서 그간의 경찰 현안을 잘 알고 있는 학자들을 추천받아야 한다는 의사 표현을 했지만, 행안부에서는 '장관이 직접 하는 것이니 손을 떼라'는 식으로 얘기했다"며 "결국 경찰 쪽에서 추천한 교수는 한 명도 받아주지 않았고, 자문위원 중에 경찰을 잘 아는 사람이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을 제외하고) 한 명도 없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구성된 자문위는 5월 13일부터 6월 10일까지 불과 4차례의 회의를 통해 논란의 경찰 통제 방안을 만들었다. 이 장관은 이런 권고안에 "적극 공감"한다며 이를 공식화했다. 경찰청은 전문가를 비롯해 국민과 현장 경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협의체를 구성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협의체는 구성되지 않았다. 김 청장이 이 장관에게 요청한 면담도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뤄진 장시간 통화에서 이 장관은 자신의 입장만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 청장은 "국민을 위한 경찰제도 발전 논의"를 강조하며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의 경찰 통제를 두고 검은 속내가 의심되는 배경은 이미 사회적 공감대를 이룬 경찰 개혁 방안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찰은 물론 전문가, 시민사회단체는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가 아닌 시민에 의한 통제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의견을 모아왔다. 이에 따라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인 국가경찰위원회와 자치경찰위원회, 경찰수사심의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등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공통된 요구가 이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직전 정부인 문재인 정부 역시 이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그간의 사회적 논의를 외면하고 왜 경찰을 직접 통제하려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장관은 "행안부에서 경찰을 지휘·견제·통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는 법률개정 사안이고, 제가 드릴 말씀 수준을 벗어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