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첫 지도부가 2년의 임기 막바지에 받은 외부 평가는 ‘진보당의 약진’이었다. 6.1 지방선거에서 1명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해 총 21명의 당선인을 배출하면서다. 그동안 대중의 관심조차 받기 어려웠던 원외정당에겐 소중한 평가였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엄밀히 따지면 창당한 지 약 5년 만에 진보당이 성장할 수 있는 작은 발판 정도 마련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여기서 언급된 ‘5년’은 통합진보당 해산 후 새롭게 만들어진 민중연합당이 민중당으로, 그리고 진보당으로 이어져온 시간이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기득권 양당으로 고착된 정치구조와 원외정당이라는 뚜렷한 한계에서도 저희가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하고, 또 고민의 결과를 실천한 데 대한 작은 평가가 손에 쥐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결과가 성과였든 한계였든 그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지방선거 당선인들의 모습 ⓒ진보당
진보당은 2년 전부터 계획이 있었다
2년 전 대표로 선출될 당시 “새 시대를 여는 대안정당,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진보집권의 새날을 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김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아직 대안정당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다만 “진보당 당원들이 함께 합의하고 내세웠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는 것은 1기 지도부가 이끌었던 진보당의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고 평가했다.
사실 진보당은 다 계획이 있었다. 김 대표는 “이번에 당선된 후보 대부분이 오랫동안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진보정치를 한결같이 실천해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다 설명되진 않을 거 같다”며 “지방선거 성적표를 받기까지 전력질주를 하자는 목표는 이미 2년 전에 세웠다. 그 목표를 전국 16개 광역시·도 전체가 2020년 가을에 함께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합의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새 세상을 향한 10년의 다짐’을 담은 진보당의 ‘집권전략보고서’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진보집권을 하기 위해선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집권전략보고서에 담겼는데, 지역에서부터 집권이 선행돼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반드시 지역구 돌파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1개 이상의 기초단체장 당선과 진보당 조직이 없는 세종을 제외한 16개 광역시·도에서 모두 당선인을 배출하자’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모든 지역에서 진보집권의 거점이 될 당선인을 반드시 만들자는 결의가 모였다”며 “그러다보니 당연히 지역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 정치적 거점을 만드는데 공을 많이 들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진보당 후보 대부분은 2년가량 자신의 지역구에서 여러 대중사업을 벌이며 지지세를 넓혀왔다. 농촌에선 각 지역 농민회와 함께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 칼갈이 봉사활동 등을 벌여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서울 노원에서 시작된 이른바 ‘주민대회’는 전국 20여 군데에서 잇따라 열리기도 했다. ‘전남 농어민 가구당 월 10만원 지급 조례안’, ‘울산 온종일 아동돌봄 통합 지원 조례’ 등 주민발의 형태의 조례 제정 운동도 활발히 벌였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결합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우리는 공중전으로 뭔가를 하기도 어렵고 현역 의원이 많지도 않아서 ‘민원 해결을 잘했다’고 내세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유권자들께서 ‘우리 농민을 위해 밥까지 굶어준 사람이 오은미야’, ‘박형대는 4년 전에 아깝게 떨어졌는데 배지도 없이 농민수당을 만들어냈어’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오은미를 찍으러, 박형대를 찍으러 투표장으로 가주셨다”며 “진보당이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지를 언론을 통해선 보여줄 수 없었지만, 주민들 가까이에선 보여준 결과였다”고 말했다. 7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오은미·박형대 전남도의원은 각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1위로 당선됐다.
“이제는 실력을 증명해보일 때”
앞으로 진보당은 당선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기에 즉각 대응해야 할 책임을 함께 떠안게 됐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그는 “공직 신분이 아니었을 때는 ‘저희였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주민들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능을 작은 것이라도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해보여야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그 시간이 저희한테 4년(임기)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라며 “시한폭탄처럼 물가가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고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인 상황인데 앞으로의 4년을 바라보면서 ‘다음 선거 때까지 이런 저런 것을 잘 해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정치적 여건이 ‘소수정당’인 진보당에겐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만약 지방의회에서 다수당이 진보당 의원이나 단체장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면, 진보당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정치적 구조다. 그래서 진보당이 찾은 해법은 ‘주민 직접정치’다. 주민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 민심에 이반하는 다수당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진보당은 어디에서나 대부분 의석이 한 석밖에 없기 때문에 의회나 청사 바깥에 있는 대중조직에 기반한 대중운동과 정치를 결합시키고, 그것을 통해 주민들의 정치적 힘을 극대화시켜서 닥쳐오는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런 것들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의석이 없이도 농민들의 힘을 조직해서 농민수당을 만들거나, 주민대회를 성사시켜서 주민들의 조직적 힘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왔다. 저희만의 방식이었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건설현장을 방문한 진보당 김재연 당시 대선후보의 모습 ⓒ김재연 후보 페이스북
직접 대선후보로 나서 진보당 정체성 알린 김재연
김 대표가 상임대표로 선출되던 2020년 6월은 21대 총선 직후였다. 20대 국회에 있던 국회의원 1명(당시 김종훈 의원)마저도 잃으면서 원외정당으로 전락한 때였다. 총선 직후 당 이름을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바꾸고 1기 지도부를 선출한 것이었는데, 패배감에 젖어 있을 줄 알았던 당내 분위기는 예상 외로 활기찼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저도 통합진보당 해산 후에 경기도 의정부에서 두 번이나 총선에 출마했는데 모두 낮은 득표율로 낙선했다. 그런데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전국을 훑어보니 대부분 지역의 당원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더 깊이 주민들 속에, 노동자들 속에, 농민들 속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높이고 있더라”고 전했다.
특히 노동자들은 ‘입당’으로 진보당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진보당이 아직 힘을 가지지 못한 소수정당이란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입당으로 호응해주셨다”며 “그래서 덕분에 내부 자신감도 더 커져간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실제 진보당의 당원은 2년 사이에 6만 7천여 명에서 8만 7천여 명으로 2만여 명이 늘어났다.
이런 분위기는 지방선거보다 3개월 앞서 열린 대선에도 이어졌다. 당시에도 진보당에 유리한 정치구도가 아니었던 만큼 꽤나 힘든 선거를 치렀는데, 그럼에도 김 대표는 “저는 신나게 선거운동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진보당이라는 우리가 가진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를 전 국민 앞에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이번 대선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 간 후보단일화를 비롯한 연대를 주장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낸 것도 나름의 성과였다. 대선을 앞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민주노총을 매개로 진보당은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과 대선후보 단일화를 포함한 선거연대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결국 후보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정당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후보단일화는 불발됐지만, 큰 틀에서 지향점이 같다는 점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지방선거 때 진보정당 후보단일화가 전국적으로 이뤄지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진보정당 연대를 주장한 이유에 대해 “일단 진보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이 상당기간 불분명했다. 특히 언론에선 ‘진보 대 보수’를 ‘민주당 대 국민의힘’이라고 손쉽게 표현했다. 그래서 ‘조국 사태’를 보고도 청년들이 ‘진보도 다 똑같네’라고 느낀다던지 ‘민주노동당 말고 진보정치가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명확한 자기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설명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한 “진보당이 말하는 진보정치 정체성의 1번은 노동이다. 그런데 선거 때 진보정당들이 각자 기호를 달고 나와서 ‘저는 노동자 후보입니다, 그러니 찍어주세요’라고 하면 노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싶었다”며 “결국 노동중심의 진보정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함께 단결을 해야 하고, 이때 진보당은 노동중심성에 기반한 모든 진보정치세력과 단결하고 연대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임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노동중심의 진보정치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굉장히 크게 공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8일 당시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가 공식선거운동 마지막 날 저녁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진보당
“역시 거저 되는 건 없구나”
그러나 대선 결과 0.11%(37,366표)라는 아주 낮은 득표율을 거둔 것은 진보당이 현재 지닌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득표 수는 당원 수에도 한참 못 미쳤다. 진보당에 대한 지지가 표로 직접 연결되진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분명한 저희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노동자들이 노동중심의 진보정치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마음을 주기까지는 또 다른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노동자들이 많이 입당했는데, 그런 양적 확대가 질적 전환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역시 거저 되는 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김 대표는 “늘 과제로 생각했던 정규적인 분회(5인 이상 당원 모임) 생활, 노동현장의 정치활동 등 모두가 체계적이고 내실 있게, 그리고 꾸준히 진행돼야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당원들도 정말 모든 걸 걸고 진보정치와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내어주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는 “노동계급에 대한 신뢰도 없이 무엇을 기반으로, 누구에게 지지를 얻어 진보정치 집권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며 “이건 해명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오히려 “‘진보정당은 충분히 노력했는가’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적 성장의 속도가 질적 전환의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아직 진보당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진 못했지만, ‘거봐라, 안 되지 않느냐’는 평가를 받지 않도록 더 역동적인 정치활동의 모범 사례를 앞으로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한다”며 “저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성장 가능성을 굉장히 크게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김철수 기자
진보당의 다음 시험대는 총선, ‘원내 교섭단체’ 이룰 수 있을까
지방선거로 ‘생존신고’를 마친 진보당이 다시 평가를 받는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2년 뒤 총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가장 역동적인 선거가 될 것”이라며 “진보당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진보당이 거대양당의 대안세력으로 인정을 받으면 ‘원내 교섭단체’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위기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있고 거대야당인 민주당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두 안타까운 일”라며 “이럴 때 절박한 심정으로 민생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진보당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보당이 과제를 잘 수행하고 국민들이 이것을 인정해준다면 진보당을 소수의 감시자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국회에서 일할 수 있는 교섭단체까지 만들어주시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2004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이던 민주노동당이 단숨에 10석을 차지했던 사례,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단숨에 원내 3당 교섭단체가 된 사례에 비춰보면 진보당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교섭단체가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결국은 거대양당 중심의 정치구도를 깨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무엇으로’ 지지를 얻어 거대양당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것이냐가 핵심이다. 김 대표는 “저희는 불평등 구조를 공고히 하는 집단이 아니라 그걸 깨뜨리는 정치세력임을 분명히 보여드려야 할 거 같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도 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했던 김 대표는 2014년 박근혜 정부에 의한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20대, 21대 총선에서 의정부시을 지역구에 연이어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번에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진보당은 당원 투표를 통해 7월 22일 총선을 이끌 2기 지도부를 선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