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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무 리포트] “전도하면 성과급? 교회가 무슨 보험회사인가요?”

교회 십자가 자료사진 ⓒ사진 = 뉴시스

‘성도 정착 시 성과급을 드립니다.’

한 대형교회가 최근 교회 내 교구장과 부교역자들에게 내 건 교회 부흥 방안이다. 예를 들어 40명 전도해 정착시킬 경우, 해당 교구에 500만 원을 주겠다는 게 교회가 내놓은 교회 부흥 방안이라고 한다. 내부에서는 “교회가 무슨 보험회사냐”며 하소연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교회 측은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교회 측이 내놓은 답변은 아래와 같다.

“코로나19로 2년간 예배가 중단되거나 정상화되지 못해 전도와 선교를 하지 못한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됐고, 올 들어 정부의 방역지침이 완화되어 예배가 활성화되자 산하 교회발전위원회가 전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도에 필요한 물품들 구입에 소요되는 비용을 교회가 전도 지원금으로 지급하자는 방안을 제시해 현재 시행 여부를 논의 중입니다.”

그러니까 전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도 있고 밥이나 차를 살 수도 있으니 전도에 성공할 경우, 이 비용을 보전해주겠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답변을 보고, 한참을 웃었는데, 이게 나만 웃긴가? 이게 다 숫자에 미친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내가 출석하는 이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하는 한국교회 수준이기도 하다. 웃었다고 했지만, 매우 슬픈 일이다.

이 교회에서 사역했던 어떤 사역자가 과거 받았다는 ‘전도상’을 입수해 살펴보니, 상장에 “전도 실적이 우수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크게 힘썼기에 이 상패를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실적이라.’

이 사역자의 말을 들어보니, 과거 전도를 위해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1인당 1만 원씩 용돈에 점심 제공도 하는 등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성공에 미쳐 있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 사역자가 이런 방식으로 전도하던 과거에도 영혼 사랑의 마음이 왜 없었겠나. 나는 당연히 영혼 구원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성공지향적’이었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그 이면에는 이를 통해 교회와 담임목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 매우 양심적이고 솔직한 분인 게다.

‘전도에 성공하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노골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경쟁을 부추기고 전도를 무슨 영업처럼
전락시킨 것 아닌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도 교회의 소위 노방전도라는 것에 몇 번 동원된 기억이 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주일학교 학생이나 중고등부 학생들까지 노방전도에 동원하곤 했기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 주변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기독교단체들이 기도회형식의 반대집회를 열고 북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정의철 기자

주일학교 반끼리 또는 교회에서 나눈 팀끼리 교회에서 배분해 준 전단지와 휴지 같은 작은 선물을 들고 행인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한국이 못 먹고 못살던 시절, 교회 가면 알사탕도 주고 학용품도 주던 시절의 전도 방식을, 찾아가는 서비스로 바꾼 듯한 노방전도를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에도 했고, 중고등학생이던 1990년대에도 했다, 그런데 지금도 종종 길을 걷다 보면 똑같은 방식으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세월이 흘렀지만, 고전은 통한다는 것일까. 교회는 썩어가는데 그 썩은 교회로 오라고 외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라는 고민을 절로 하게 되는 현실이지만, 노방전도는 그나마 순수하다.

‘전도에 성공하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노골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경쟁을 부추기고 전도를 무슨 영업처럼 전락시킨 것 아닌가.

내부가 곪아가고 있는데,
무슨 영혼 사랑을 위한 전도를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전도 방식들을 비판하면, 이들은 분명히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지 않나. 주님의 최대 지상명령이 전도다’, ‘지옥 불에 떨어질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뭔들 못하겠나. 다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꼬투리를 잡는다’ 뭐, 이런 정신승리에 가까운 말들을 할 게다.

그런데 교회의 숫자 불리기식 전도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핵심은, 이런 대형교회들의 행보에서 영혼 사랑의 마음을 전혀 느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혼을 사랑한다면서 기득권들로부터 탄압받고 압제당한 약자,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봤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애써보길 했나.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를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기득권에 협력하거나 부역하는 방식으로 약자들의 삶을 외면하면서 겉으로 수혜를 베푸는 게 얼마나 감동이 있겠나. 물론 그거라도 하니 다행이지만, 진정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현장에서 생고생하면서 영혼 사랑을 불태우는 것도 순진하고 성실한 교인들과 부교역자들이지, 그 교회 담임목사는 아니다. 교회가 어려움 이웃에게 베푼다고 하는 구제 역시 교인들의 헌금으로 하는 일이다.

돈이 많은 교인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이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인데 안 먹고 안 쓰고 아껴서 헌금을 내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그 헌금을 교회가 어떻게 썼는지, 제대로 공개나 하면서 할 말이다.

더구나 담임 목사가 본인 교회 부교역자들도 사랑하지 않고 쥐어 짜낼 생각만 하면서 내부가 곪아가고 있는데, 무슨 영혼 사랑을 위한 전도를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소위 ‘오너리스크’가 너무 많은 한국의 대형교회다. 교회가 사회정의에도 무관심한데다 의혹이든 사실이든 재정과 성 문제와 관련한 의혹이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교회. 그걸 의혹을 해소하는 방식도 투명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는 교회, 담임목사가 무슨 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교회, 담임목사 설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여도 누구 하나 그 앞에서 직언조차 못 하는 게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다. 사고는 누가 쳤느냐는 말이다.

전도 목적이 교회 헌금 규모를 늘리기 위함이나, 담임목사 박수부대 늘리기로 의심부터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현실이다.

5만원권 ⓒ뉴시스

분명 이런 반박도 내놓을 것이다. 이 땅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천국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소망은 사후세계에 있는 거라고.

정작 나부터 한국의 소위 대형교회 담임목사란 분들과 죽어서도 같은 곳에 갈까 봐 무서워지는 마당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소개하는 천국에 사람들이 가고 싶겠나?

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전도가 어려워졌다는 진단을 내렸다면서,
모여서 기도나 하고 행사나 치르겠다?
이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린가.


여전히 목회 철학을 전도로 내세우는 목사들이 많다. 교회로 불러들인 숫자가 많을수록 하늘에 쌓인 상급이 클 것이라 믿고, 전도를 많이 하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치환돼 칭찬받는다.

지난달 29일 국민일보 기사를 보니, 평생 전도에 힘썼다는 한 목회자를 중심으로 ‘9.1 Day’가 열린다는 소식도 살펴진다. “세상에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등 수많은 세상 문화가 있는 것처럼 전국 교회들과 함께 매년 9월 1일을 9.1 Day로 정하고 교회마다 상반기와 하반기 40일 작정 전도를 통하여 교회마다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9.1 Day 운동에 앞장서겠다”는 목회자의 인터뷰가 실렸다.

또 지난달 28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여러 교회들이 연합해 ‘지저스 페스티벌’를 연다고 한다.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져 전도가 어려워졌으니, 지저스 페스티벌을 개최해 한국교회가 하나돼 복음을 전하는 ‘전도운동’, 한국 교회 미래 주역을 세우는 ‘다음세대룩킹 운동’, 교회들이 연합해 기도하는 ‘어머니연합기도운동’ 등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10월 23일에는 서울시청에서 다음 세대 회복을 위한 대규모 집회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전도가 어려워졌다는 진단을 내렸다면서, 모여서 기도나 하고 행사나 치르겠다? 이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린가. 이런 행사를 하면 신뢰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인가? 모여서 기도하면 저절로 해결되는가? 혹시 한국교회가 무슨 짓을 하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불신자들의 꿈속에 나타나 ‘교회에 가라’고 협박이라도 해주시기를 바라고 그렇게 믿는 것인가?

이런 행사 열 시간에 대형교회 부자 세습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성범죄 목사를 제대로 치리부터 해봐라. 이를 훼방하는 종교사기꾼들과 맞서봐라. 교회 재정부터 투명하게 밝히고 건강하게 쓰는 재정구조를 만들어봐라. 당장 위험천만한 노동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과 함께해 봐라.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연대해 봐라. 최저임금·주52시간 개편 등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하고 나서봐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 봐라.

교인 숫자 늘릴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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