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노동조합 조직율은 14.2%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자 280만 5천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의미다. 2019년(12.5%)과 비교해 1.7% 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 가운데 85.5%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조합의 결성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다. 윤석열 정부 들어 근로시간을 늘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등, 노동자들을 향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지금 노동자들을 지켜줄 노동조합이라는 보호막이 절실하다. 하지만, 학교는 물론 그 어디에서도 노동자로의 권리를 배우고, 노동조합 결성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배워본 적 없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을 위한 보호막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 친절하고, 생생하게 전해주는 노동조합 결성과 운영 방법
노동조합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만, 어떻게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평범했던 게임회사 직원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야기를 담은 ‘노동조합은 처음이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게임의 심장’ 판교에 있는 한 게임회사의 정보보안정책 담당이자 노조 수석부지회장이다. 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다. 26살에 국토 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지인을 따라 게임업계에 발을 디뎠고, 그렇게 10년쯤 흘렀을 때 노동조합의 ‘ㄴ’자도 배워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좌충우돌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쉽다는 데 있다. 문외한이 보기엔 너무나도 어려워 보이는 노동조합의 설립과 운영과정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마치 롤플레잉 게임처럼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결심하는 과정은 물론 부딪힐 수 있는 어려움,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대리 경험을 할 수 있다.
설립 2년 차 꼬꼬마 노조에 현수막을 걸 일이 생겼다. 키보드로 하는 거라면 뭐든 잘하는 IT인 답게 문구는 금방 확정 지었지만, 몸으로 하는 거면 뭐든 못하는 IT인 답게 현수막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랐다. 그랬다. 길에 걸린 수많은 현수막을 보며 욕은 해봤지만 직접 현수막을 걸어본 적은 없었다.
고민하다가 경험이 있는 A 지회에 물어보았다. “외부 게시용이니까 각목 마감으로 요청하시고 줄도 넉넉히 달라고 하세요.”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 기억하자. ‘각목 마감, 줄 넉넉히.’
이 책은 “막상 내가 보고 겪고 느껴보니, 내 생각과는 아주 달랐던 노동조합에 대한 해명 프로젝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노조 설립 뒤 첫 임금 교섭. 마지막까지 희망을 걸었던 회사와의 대화는 역시나 잘되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노동조합의 첫 번째 집회가 시작되어 버렸다. “자! 다들 밖으로 나가십시더! …근데 우데로 갑니까?” 그랬다. 집회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햇병아리 노조는 몰랐다.
이런 실무적인 어려움은 물론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동조합과 관련한 편견들을 이겨내고, 주변의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담아냈다. “노동조합을 하면 인생을 망친다”, “노조 놈들은 귀족이다” 등 다양한 편견을 만난다.
2020년 현재 280만 명이 노동조합원인 만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그 속엔 수많은 갈등과 사건·사고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대체로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언론은 이러한 복잡한 갈등의 서사보다는 이 갈등으로 빚어진 현상, 가령 파업이나 집회 같은 결론을 주로 다룬다. 이렇게 되면 기-승-전 과정을 모르는 제3자인 시민들은 내 생활에 불편을 주는 노조를 좋게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것이 형편이 조금 좋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만 부리는 집단으로 비칠지 모른다.
글쓴이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에는 생각이 비슷했다. 그러나 직접 노조를 만들어 활동해보니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몰라서 오해했던 부분들이 이해됐고, 이해되니 공감되고, 생각도 바뀌었다.” 이 책은 “막상 내가 보고 겪고 느껴보니, 내 생각과는 아주 달랐던 노동조합에 대한 해명 프로젝트”이다.
사실 노동조합은 유럽 선진국에서는 초등교육 필수 과정이고,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 교양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선 노동인권 교육의 주요 주제로 노동조합을 다룬다. 그런데도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9명 중 1명으로 매우 낮다. 그나마도 큰 기업이나 형편이 좋은 기업에 노조가 많아 노동조합의 활약이 정말 필요한 곳엔 노조가 없다. 이 책은 노조를 만들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노동자들, 살아있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