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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2년의 새로운 민중가요, 발달장애인과 이민휘가 함께 만든 노래

영화음악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민휘가 전통적인 공동창작 방식으로 노래를 만들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의 노동자들과 함께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는 방식으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이민휘. ⓒ노들 장애인 야학
 

민중가요는 대중음악과 다르다. 노래의 메시지만 다른 게 아니다. 노래를 만들고 듣고 부르는 사람들이 다르고, 노래를 만들고 듣고 부르는 이유도 다르다. 민중가요를 만들고 듣고 부르는 이유는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래가 좋아서만도 아니다.

민중가요를 만들고 듣고 부르는 이유는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같이 만들자고 호소하고 약속하고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인지 고민하고 확인하기 위해, 지금 세상은 어떤지 알리기 위해 노래를 활용한다. 그렇다. 민중가요는 거울이고 스피커이고 무기다.

민중가요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민중가요의 생산자와 향유층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중가요의 창작자들은 단순한 뮤지션이거나 스타가 아니다. 그들은 노래로 활동하는 활동가이며, 노동자다. 민중가요의 향유층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노래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실천하는 신념의 공동체, 그 일원이며, 연대의 당사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끈끈하게 결속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의 노동자들과 함께 이민휘가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노래 T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올린 이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이들은 이따금 서로의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민중가요를 만드는 이들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이들 곁으로 다가간다. 노래를 들려주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노래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삶을 자신들이 직접 노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민중가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줄었고,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 민중가요 45년 역사 안에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스스로 기록한 글로 만든 노래들이 살아 숨 쉰다. 가사를 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못 부른 노래일망정 직접 불러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 이들도 많았다. 삶과 예술을 통일시키고, 생산자와 향유자를 일체화하려는 노력이다. 이 같은 방식은 2000년대 이후 거의 사라졌다가 출장 작곡가를 표방한 싱어송라이터 김동산의 노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중가요가 예전처럼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영화음악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민휘가 전통적인 공동창작 방식으로 오늘의 노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이채롭다.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로 맹활약한 후, ‘최선의 삶’과 ‘너에게 가는 길’ 등의 영화/드라마 음악을 만드는 그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래를 만든다. 그들과 이민휘가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는 방식이다.

T4 노래 악보.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민휘

이민휘의 제안으로 올해 2월 말부터 시작한 노래 만들기 노동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반부터 4시까지 진행한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중증발달장애인 노동자 12명이 꾸준히 참여하는 작업은 계속 묻고 답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어떤 노래를 만들고 싶은지 묻고, 그 주제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면서 떠오른 단어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이민휘는 매개자일 뿐이다. 그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도록 돕고, 그들의 말을 정리하고 연결한다.

곡을 붙일 때도 마찬가지다. 음악 창작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지만 노랫말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발견할 때까지 함께 도전한다. ‘창작의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시는 분’도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흥얼거려 보고, 함께 듣다 보면 노랫말에 맞아떨어지는 멜로디가 등장한다. 이민휘는 이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역할에 충실하다.

이 과정은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그들이 예술노동을 수행하며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시간이다. 예술의 향유자였던 이들이 예술의 창작자로 자리를 옮기는 시간이고, 노래를 만들 줄 아는 장애예술가들이 늘어나는 시간이다.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드는 창작자가 될 수 있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노동의 시간이며, 장애인 단체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스스로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옮기는 최적의 언어를 발굴하고, 자신들의 존재와 차이를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10곡이 넘는 노래가 탄생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의 노동자들과 함께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는 방식으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이민휘. ⓒ노들 장애인 야학


지난 6월 30일 서울 용산역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기획재정부 규탄 전동행진 1박2일 투쟁선포 결의대회’에서는 함께 만든 노래 가운데 하나가 울려 퍼졌다. “우리를 가두지 마십시오 / 우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 우리 목소릴 들으십시오”라는 가사가 이어지는 성가풍의 곡 ‘T4’는 그 자리에 모인 장애인들의 마음을 간절하게 대변했다.

장애인들의 투쟁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지만, 장애인들의 투쟁을 대변하는 곡은 드문 편이다. ‘장애해방가’, ‘장애차별철폐연대가’, 그리고 클론의 ‘소외된 외침’ 정도다. 이 노래들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더 다채로운 노래들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민휘는 장애인이 직접 노래를 만드는 예술 노동자가 되도록 돕고 있다. 이들의 노래가 저항과 투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도 민중가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민중이 스스로 만든 노래인 탓이다.

이민휘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 노래를 신청 받아서 만들기도 한다는 이 작업의 결과물을 앞으로는 집회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노래를 만든 이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부를 순간을 기대해본다. 노래는 모든 이들의 것이며, 모든 이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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