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물의 이중성으로 그려진 폭력의 얼굴,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영국 극작가 마틴 크림프의 작품...오는 10일까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극단 코끼리만보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그리스 희곡 작가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는 당대 적지 않은 작품을 썼고, 그의 작품은 큰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작들은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등이다. 그 중엔 '트라키스의 여인들'도 있다.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헤라클레스의 저택에 헤라클레스에 의해 멸망된 국가의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포로를 받게 된 헤라클레스의 아내는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오이카리아 왕의 딸 이올레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 오이카리아를 멸망시킨 뒤 그녀를 집에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이후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전쟁을 치른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 아내의 사랑·분노·복수는 동시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을까. 극단 코끼리만보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동시대 무대로 데려왔다. 바로 '잔인하게, 부드럽게(Cruel and Tender )'를 통해서다.

이 작품을 쓴 것은 영국 극작가 마틴 크림프(Martin Crimp)다. 마틴 크림프는 다양한 작품으로 주목받는 연극인 중 한 명이다.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작품은 국립극장 NT Live를 통해 상연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다. 마틴 크림프는 이 작품의 각색을 맡았다. 당시 시라노 역할을 맡았던 배우 제임스 매커보이는 "원작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부터 고전을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 시켰다"고 그의 각색을 극찬했다.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극단 코끼리만보

마틴 크림프는 '트라키스의 여인들' 역시 첨예하고 뾰족하게 현대버전으로 각색했다. 헤라클레스의 전쟁은 이라크 전쟁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전쟁중이었던 헤라클레스를 기다리는 아내는, 대테러 전쟁을 위해 멀리 떠난 장군 남편을 기다리는 아멜리아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전쟁 아래에서 벌어졌던 남편의 과오를 맞닥뜨리게 된다.

사실 관객은 원작의 진실과 실상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어떤 한 가지를 느끼게 된다. 대테러 전쟁이라든가, 저택을 찾아온 소녀·소년이라든가, 사실에 기반한 어떤 사건들을 향해서 인물 하나하나가 알을 깨듯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령, 폭력이 정의로 둔갑하고, 평화가 테러로 명분화 되기도 한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아멜리아 집에 온 아프리카 소녀 레일라부터 장관까지 모두 적용된다. 무엇보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 제물이야!"라고 발악하는 장군의 모습은 전쟁 아래에서 적나라게 드러난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런웨이 혹은 전시처럼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평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의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무대를 한 뱡향이 아닌 양 방향에서 보게 되는 관객들은 제각각 자기 위치에서 캐릭터의 얼굴을 보게 된다. 관객 시선에서 인물들은 완전하고 또 불완전하게 보인다. 이런 구조 역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다층적으로 만들어 준다.

조명 아래 비춰진 인물들의 얼굴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은 전쟁과 치정 등을 소재로 했지만 무엇보다 인물 하나 하나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소포클레스 시대부터 현재까지 전쟁이 없었던 시절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극단 코끼리만보의 '잔인하게, 부드럽게'는 동시대적이며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1일 막을 올린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는 오는 10일까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극단 코끼리만보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극단 코끼리만보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