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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업 미래 해답 찾을 수 있을까

정부가 제안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두고 낙농단체-유업체 충돌

마트 우유 진열대 ⓒ뉴시스


낙농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우유 재고는 남는데 치즈, 버터 등 가공 유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6.5kg에서 2020년 31.8kg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 가공유제품의 소비는 63.9kg에서 83.9kg으로 증가했다.

유업체가 치즈, 버터 등을 만드는 가공유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값싼 가공유를 수입한다. 수입 가공유는 2001년 65만t에서 2020년 243만t으로 273% 급증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국산 우유 원유는 비싸다. 현재 리터당 1,083원이다. 수입산 가공유 국제가격은 리터당 절반 수준인 400~500원 선이다.

수입산 가격은 앞으로 더 낮아진다. 수입국 대부분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낙농업 보호를 위해 아직은 관세를 물리고 있지만, 2026년 부터는 보호 장벽도 사라진다.

이대로 가다간 국내 낙농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전문가도, 유가공업체와 낙농가 등 이해당사자까지, 변화 필요성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양쪽 모두 손해를 감수하고 한 발씩 물러서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제품 소비 패턴 변화에 따라 낙농산업에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말부터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제도다. 같은 원유지만 용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현재 낙농가는 원유를 용도 구분 없이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유업체에 단일 품목으로 납품하고 있다. 납품가는 대략 리터당 1,100원 꼴이다. 납품을 받은 유업체는 원유를 마시는 우유(음용유)로 가공해 판매하거나, 치즈나 분유 등 유제품(가공유) 형태로 판매한다.

현행 가격 제도는 유업체의 용도를 불문하고 납품가를 결정한다. 반면,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음용유를 리터당 1,100원 선에, 가공유를 리터당 800원에 납품하게 된다. 농가로서는 가공유 용도로 납품하는 단가가 현행 제도 대비 리터당 300원씩 줄어드는 꼴이다. 

유업체 입장에선 값싼 수입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공유를 국내에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이있는 것도 사실이다. 400원대에 수입하는 가공유를 800원에 국내에서 조달해야하는 것이다. 정부는 유업체에 리터당 200원의 지원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지만, 가격 격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향후 수입산 가공유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용도별 차등가격제와 보조금을 두고, 낙농가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마트 유제품 진열대 ⓒ뉴시스


낙농단체-유업체 갈등…’용도별 차등가격제’ vs ’생산비연동제’


원유 가격은 생산비연동제도에 따라 결정된다. 낙농가의 원유 생산에 든 비용에 근거한 산출식을 통해 정해진다. 낙농가 소득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협상력이 낮은 낙농가와 대규모 유업체간 형평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다.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젖소를 대거 살처분했다. 원유 생산이 급격히 줄었다. 낙농가와 유업체 모두 원유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시급성에 공감했다. 생산비연동제는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부터 시작됐다.

구제역 피해가 복구되면서 원유 공급이 과잉 상태에 빠졌다. 유업계는 소비량이 줄어드는데, 원유 가격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줄면 가격을 낮춰 수요를 자극해야 하는데 생산비연동제로 ‘우유 최저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낙농육우협회(낙농협회)는 최근 생산비가 올라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낙농협회에 따르면, 생산비 상승 등으로 인한 농가 채산성 악화로 폐업한 목장은 2021년 12월 기준 전년 대비 67%나 증가했다.

원유 생산비의 55%가량 차지하는 사룟값은 10년 동안 증가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457만 4,130원으로 전년 대비 9.7% 올랐다. 2011년(370만 268원)과 비교하면 약 20% 상승했다. 미국, 유럽 등 수입산 가공유보다 원유 가격이 비싼 이유도 생산비에 있다. 주요 수입국은 사료를 자급할 수 있지만, 국내 낙농가들은 모두 수입에 의존해 생산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낙농협회 측의 설명이다.

낙농협회는 “사룟값을 비롯한 농구비, 시설비 등 생산비용은 쭉 증가해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공용 원유 가격마저 내리면 생산 기반은 무너지고, 생존 위기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국낙농육우협회 농성 천막 ⓒ한국낙농육우협회


원유를 ‘음용용’ ‘가공용’ 구분…낙농단체가 반발하는 이유


현재 낙농가는 원유를 용도에 상관없이 음용유 가격의 단일 품목으로 판매한다. 낙농진흥법에 따라 연간 쿼터범위 222만t 내에서 정상 가격으로 연간 계약량을 유업체에 전량 납품할 수 있다. 유업체는 원유 가격이 비싸 음용유로 판매해야 이득이 남는데, 구매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 실제 음용유 소비량이 넘는 양을 사야 한다. 원유 쿼터제는 매일 생산되지만 쉽게 상해 보관이 어렵다는 원유 특성을 반영한 제도다.

유업체의 연간 쿼터 범위는 222만t이다. 음용유 소비량이 줄어 유업체가 222만t을 전부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업체와 농가는 협의에 따라 연간 생산 쿼터를 자체 조정하고 있다. 유업체가 실제 구매한 물량은 지난해 203만t 수준이다. 이 중 198만t이 리터당 1,083원 정상가격에 납품됐다. 

쿼터제를 통해 음용유를 의무 매입한 유업체 과제는, 판매되지 않고 남은 물량을 소진하는 일이다. 유통기한이 짧은 음용유는 탈지분유로 가공한다. 탈지분유 유통기한은 1년이다. 그러나 분유로 만들어 가공유제품으로 만들면 단가가 안 맞아 손해를 보게 된다. 탈지분유 1kg 판매가는 6천원대다. 탈지분유 1kg을 생산하기 위해 국내산 원유를 사용하면 원룟값만 1만3천원이다. 원료가 판매가보다 7천원이 높다.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문제점을 해소할 지 주목된다. 차등가격제가 시행되면 적용 첫해 원유를 음용유 190만t, 가공유 20만t으로 나눠 적용하게 된다. 음용유(190만t)는 기존 원유 가격(1,083원/L) 수준인 1,100원으로 정하고, 가공유(20만t)는 800원으로 가격을 고정한다. 정부는 가공유 가격이 여전히 수입산(400~500원)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유업체에 정부 지원금 리터당 200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유업체는 가공유를 리터당 600원에 살 수 있다.

정부는 가공유 쿼터를 단계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제도 적용 이듬해에는 음용유 185만t-가공유 30만t, 다음 해에는 음용유 180만t-가공유 40만t으로 조정하는 식이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농가는 리터당 100원 수준으로 싸게 넘기던 초과 유(연 5만t)를 리터당 800원에 받게 된다. 해당 제도는 가공유 생산량을 점차 늘리면 원유 전체 생산량이 222만t으로 함께 확대될 거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농가는 수익을 보전하고, 유업체는 싼 가격에 가공유를 들여오니 윈윈(win-win)이라는 것이다.

낙농협회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도 쿼터 감축이 이뤄질까 우려했다. 2014년부터 유업체의 구매 여력을 고려해 사실상 ‘마이너스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공유 쿼터 확대로 총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전망에도 의문을 표했다. 2026년 FTA 체결로 미국, 유럽산 치즈와 음용유 관세가 철폐되는데 비교적 저렴한 수입산을 더 쓰지 않겠냐는 것이다.

낙농협회는 “2020년 연말 유업체는 낙농가 쿼터를 4~15% 삭감한 바 있다”며 “유업체가 낙농가의 증산원유를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현재 정상 원유 가격을 받는 쿼터 내에서 소득 감소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원유를 용도별로 나누면 농가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원유 생산비는 그대로인데, 음용유를 줄이고 가공유 쿼터를 늘리는 방향이라면 농가 소득이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낙농협회는 “음용용 젖소와 가공용 젖소가 따로 있는 건지 의문”이라며 “농가수취가격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뮬레이션 실시 여부 및 결과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트 우유 진열대 ⓒ뉴시스


‘원유 가격 협상’ 무기한 연기…낙농단체 “제도 도입 반대” vs 유업체 “원윳값 협상 안 해”


낙농단체와 유업체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올해 원유 기본 가격 조정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유업체 측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원유 가격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원유 가격 협상은 낙농진흥회의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을 근거로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에서 진행된다. 우유 생산자 단체 소속 3명, 유업체 소속 3명, 학계인사 1명 구성이다. 원유 가격 협상은 통계청이 발표한 우유 생산비용 증감률에 따라 진행된다. 지난해 우유 생산비 증감률이 ±4% 이상이면 해당 연도에, ±4% 미만이면 2년마다 원유 생산자인 낙농가와 수요자인 유업체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정한다. 새롭게 정한 가격은 해당 연도 8월 1일부터 적용된다.

지난달 24일 통계청 농축산물생산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 생산비는 전년 대비 4.2% 증가한 리터당 843원이다. 원유 기본 가격 산출식에 따라 올해 인상 폭은 47~28원이다.

우유 생산자 단체인 낙농협회와 판매자 단체인 유가공협회는 이달 24일까지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양측은 단 한 번도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논의 진척이 없다는 이유로 유업체가 협상위원을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유업체는 현재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척도인 생산비연동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유업계는 낙농제도 개선을 계속 주장해왔다. 개선이 안 되면 협상 자체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제도 개선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낙농협회는 용도별 차등제 도입을 멈추지 않으면 납유 중단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승우 낙농협회장은 성명을 통해 “사룟값 폭등, 마이너스쿼터제, 환경규제정책 양산 등을 낙농가 사육 환경이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라며 “정부와 협의가 최종 결렬되고 유업체의 협상거부가 지속될 경우 조만간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낙농단체의 우려를 받아들이고 음용유 쿼터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소한의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원유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려는 것”이라며 “생산량에 대한 우려가 있어 음용유 쿼터를 더 확대할 수 있게 논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낙농산업의 유지를 위해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식량 안보를 확보해야 하고, 지역사회가 유지를 위해서도 낙농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인배 동국대 식품산업학과 교수는 “시장이 변하고 소비자도 변하는데 낙농가도 선제 대응을 해야 산업이 지속 가능하다. 농가소득 보존, 국내 낙농산업 보호와 유업체 원자재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보다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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