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평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는 끝장 투쟁 중인 유최안 부지회장의 모습. ⓒ금속노조 제공
"스스로 철장 감옥에 가둔 그날(6월 22일) 아침에도 같이 출근 선전전을 했거든요. 그때 끝장 농성 계획을 미리 알았다면 유최안 부지회장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줬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게 제일 후회되고, 마음에 걸리네요. 그곳에서 나오면 꼭 안아주려고요."
올해로 조선소에서 일한 지 꼭 20년 차인 홍진영(가명·51)씨는 0.3평 철장 감옥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 부지회장을 떠올릴 때마다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150만 평에 달하는 넓디넓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부지 한 켠에서 극한적인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한동안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유 부지회장과 같은 하청업체 소속인 진기수(53)씨도 비슷한 심경이었다. 진씨는 "제가 눈물이 참 많다"며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어도 쳐다보는 것도 힘들더라"라고 말했다.
잠시 먹먹한 분위기가 흐르자, 진씨는 다시 힘을 내 말을 이어갔다. "저렇게 결사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데, 이제는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끝날 때까지 투쟁해야지." 옆에서 눈물을 훔치던 홍씨도 호응했다. "끝까지 가야지. 누구는 목숨 걸고 하고 있는데."
홍씨와 진씨는 지난달 2일부터 파업 투쟁에 참여한 대우조선해양의 사내 하청노동자다. 7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인근에서 한 달이 넘게 파업을 이어오는 이들을 만났다.
이즈음, 우리나라 조선업이 수주한 선박 물량이 세계 1위를 탈환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식은 하루하루 고통을 호소하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너무도 먼 얘기였다.
조선소에서 일한 지 20여 년인데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받는 하청노동자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 투쟁 및 끝장 농성을 벌이고 있는 1도크와 가까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입구. 이곳에는 정당 및 노동조합 등 여러 단체들의 파업 투쟁 지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민중의소리
조선소 서문은 농성장이 있는 1도크(건조 공간)와 가장 가까운 출입구다. 이 때문에 서문 인근에는 각종 단체들의 파업 투쟁 지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파업 투쟁에 나선 지회가 촘촘히 달아둔 삼각형의 작은 깃발에는 '하청노동자 임금 30% 인상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멀찍이 들리는 투쟁가 소리에 조선소 내부를 기웃거리자, 경비직원은 "들어오면 안 된다"며 출입을 막아섰다. 서문 인근에는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서문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1도크가 있다. 1도크 게이트에는 파업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이 있고, 1도크 안에서 건조 중인 원유 운반선에는 유 부지회장을 포함한 7명의 하청노동자가 끝장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은 만큼, 조선업 불황 시기부터 30%가량 삭감된 임금을 원상회복시켜달라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자들은 시급으로 임금을 받는데,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한 지 각각 20년, 27년이나 된 고숙련 노동자인 홍씨와 진씨도 마찬가지다.
발판을 설치하는 일을 하는 홍씨의 월급은 170~180만원 수준이다. 5, 6년 전보다 절반 이상 깎인 액수다. 20여년을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에서만 일했다는 진씨는 23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한때 550%에 달했던 상여금은 '0원'이 된 지 4년째다.
저임금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하는 대주주 산업은행의 책임이 크다. 하청업체는 수년째 이어지는 저임금에 "원청(대우조선해양)에서 기성금을 많이 인상하지 않아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실정이다.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쓰이는 올해 기성금 인상률도 3%에 그쳤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농성장에 선 진기수 조합원. ⓒ민중의소리
4인 가구 생계비로는 턱없이 모자란 임금수준에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하청노동자도 생겨났다. 진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진씨는 "정말 이 돈으로는 안 되겠어서 작년 10월부터 학원 차를 운전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서도 조선소에서 퇴근한 뒤 자정까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임금은 조선소 인력난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불과 며칠 전에도 "조선소에서는 귀하다"는 30대 하청노동자가 '육상'으로 떠났다. 진씨는 "하루 일당 24만원을 준다고 육상으로 간다고 농성장에 인사를 온 후배가 있었다. 차마 잡지는 못하겠더라"라며 "나도 5년, 10년만 젊었으면 갔을 테니까"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회에 따르면 2015년 13만여명이던 조선업 하청노동자는 2020년 5만여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조선업 위기에 하청노동자 중심으로 대량해고가 이뤄졌고, 생계를 위해 떠난 이들도 많았다.
홍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선소 현실을 전했다. 그는 "제가 이제 50이 갓 넘었는데, 저보다 어린 친구가 한두 명 정도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생수통을 갈아야 할 때 눈치 보다가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나서야 하는 분위기다. 그 정도로 젊은 노동자가 없다"고 말했다.
거제가 고향이라, 가족 모두 거제에 살고 있어서, 육상으로 옮겨가 새로운 일을 다시 배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런저런 이유로 하청노동자들은 단 몇백원도 오르지 않는 저임금을 감내하며 이곳에서 버티고 있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5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22.7.5 ⓒ뉴스1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5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22.7.5 ⓒ뉴스1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사측의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최근에는 비조합원인 하청노동자에게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요구안에 서명을 받고 있다고 홍씨는 전했다. 파업에 나선 2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청업체 수십 곳은 일주일 전부터 비조합원 노동자들에게 일제히 서명서를 일제히 돌렸고, 이렇게 1만명의 서명을 모아 경남도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으로 전해진다. 파업에 나선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의 일사불란한 행동에 원청의 지시를 의심하고 있다.
홍씨는 "현재 서명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청업체에서 사실상 강요하는 식으로 서명받으니 하청노동자들이 거부할 수 있겠나"라며 "마지못해 서명한 분들 중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저에게 파업 지지 후원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관리자들이 모인 것으로 추정되는 오픈 카톡방에는 날마다 하청노동자들을 협박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올라온다고 한다. 주로 '회사에서는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텐데, 가족들도 풍비박산 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메시지들이다.
진씨는 "입에 담지 못할 욕도 올라오고, 너무 많은 유언비어가 올라온다. 그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공개적인 압박도 이어진다. 대우조선해양은 CEO 명의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하청노동자의 파업 투쟁으로 회사 존폐가 우려된다며 비상 경영체제를 선포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7일 옥포조선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하청지회 불법파업에 따른 진수 지연으로 하루에 매출 감소 260여억원, 고정비 손실 60여억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달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사실상 하청노동자를 겨냥한 '협박'인 셈이다.
원청의 일방적인 주장에 하청노동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홍씨는 "파업 때문에 몇천억원 손해를 봤다고 하는데, 우리가 요구하는 임금 원상회복은 그 손해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라며 "몇 배의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 요구를 왜 안 들어주는 것인지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파업에 동료·시민연대로 버티는 이들
트위터에 잇달아 올라온 투쟁 기금 모금 프로젝트 동참 인증샷들. ⓒ민중의소리
사실 파업이 이렇게 길어지리라고는 당사자인 두 사람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파업 전 홍씨는 배우자에게 "그동안 너무 억울한 게 많아서 딱 한 달만 파업을 하겠다, 이번 한 번만 봐달라"고 읍소하며 집을 나섰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났지만 그의 배우자는 차마 홍씨에게 "다시 일하러 가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겠다"는 심경을 전했다. 철장 속에 갇힌 유 부지회장의 사진을 본 이후였다. "이 상황에서 동료를 배신하라고 할 순 없지 않으냐." 짧은 한마디에 홍씨는 오늘도 파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진씨의 배우자도 묵묵히 응원을 건넸다. 4년 전 처음 노조에 가입했을 때도 "하는 건 좋은데 머리 삭발하지 말고, 크레인 올라가지 말고. 그 두 개만 지켜라"라는 당부를 했던 배우자는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다"는 짧은 격려를 전했다.
파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었다.
진씨는 "끝장 농성 중인 7명의 동지가 무사히 밖으로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며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든, 원청 대주주인 산업은행이든 빨리 교섭 테이블에 앉아서 이 상황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결국 우리나라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일본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일은 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이 투쟁에서 이겨서 젊은 사람들이 다시 거제도로 와서 조선소에서 일하고,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그 후배들이 또 후배들에게 전수해줘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살아나기를 바란다. 그건 우리의 투쟁이 이겨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시민들의 연대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1만명이 1만원씩 1억원을 모아 파업 중인 하청노동자에게 전달해주자는 기금 모금 프로젝트(1만X1만 프로젝트)는 이미 목표치를 훌쩍 넘겼다.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는 긴급행동을 결성했고, '함께 버스'를 타고 8일 대우조선해양으로 집결할 예정이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대우조선해양 앞에서 '조선하청노동자 투쟁승리 결의대회'를 연다.
뜨거운 시민의 연대도 이들이 투쟁을 이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다. 홍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대해줄 줄 몰랐는데 너무도 고마웠다"며 "이번 투쟁이 끝나고 또 다른 비정규직 투쟁이 있다면 그때는 제가 머릿수 하나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진씨도 "믿고 응원해주시는 만큼 최선을 다해 꼭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