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무시한 ‘재정의 세 가지 딜레마’

높은 복지, 낮은 세금, 국가채무비율 하향 공언한 윤 정부…이상민 “최적의 국가부채, 사회적 합의 필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국가재정전략 진단과 평가 긴급좌담회'에서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윤석열 정부는 재정의 트릴레마(trilemma)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릴레마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세 가지 딜레마(3을 뜻하는 단어 tri와 딜레마_dilemma_의 합성어)를 뜻한다.

국가재정에서 트릴레마는 ① 높은 복지수준과 ② 낮은 조세부담률, ③ 낮은 국가채무비율이며, 이 세 가지는 동시에 만족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세금을 적게 내면서 높은 복지수준을 누릴 수 없고, 거기에 국가채무 비율까지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방향, 국가재정전략 등을 발표하며 지출 확대(소상공인지원 확대, 선택적 복지 강화 등), 감세, 국가채무비율 하향 등을 목표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수석연구위원은 윤 정부의 세 가지 목표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11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재정전략 진단과 평가 긴급좌담회’에서 “겉으로 보기엔 (윤석열 정부가)코로나19 방역 피해에 따른 소상공인 보장을 강화하고, 법인세 인하 등 세금을 줄이면서도 국가부채를 낮출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지난해 발생한 53조원의 초과세수 착시효과”라고 강조했다.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초과 세수로 재정의 트릴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해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세수 예측 실패(고의 여부와 무관하게) 또는 대응 실패(소극적 재정)로 발생한 초과 세수로 올해는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매년 반복되는 재정의 트릴레마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실시한 2차 추경 역시 ‘착시현상’의 일종이라고 이 수석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추가로 빚 내지 않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추경 예산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지출 구조조정 대부분은 실제 쓸 돈을 줄인 것이 아니라 ‘기술적 회계처리’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2022년 추경에서 국방예산 감액(방사청 예산 삭감)은 미국을 상대로 무기 구입할 때 쓰는 돈의 시기를 조정할 것일 뿐이다. 기술적 회계 방식을 사용하면 지출액은 물론 국가채무액도 시기 조절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재정지표를 기술적 회계로 ‘좋아 보이게’ 만드는 방식도 사용되고 있다고 이 수석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국회 2차 추경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출자 방식을 현금에서 정부 자산(기재부 보유 공기업 주식 5천억원 규모) 출자로 변경한 것을 예로 들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채무 지원 프로그램에 필요한 재원을 현금 1천억원을 지출하는 대신 기재부 보유 주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재정지표를 개선했다는 것이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기술적으로 통계만 좋게 만드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숫자 꿰어 맞추기 식의 재정건전성 보다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트릴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조적인 ‘국가채무 비율 00%’를 추구하기 보다는 재정 정책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브레이크와 악셀을 동시에 밟는 정책이 필요한(금리를 높이면서도 국가 지출을 늘려야 하는) 시대이며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재정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재정의 세 가지 딜레마 중 한 부분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면 낮은 국가채무비율(정부 재정 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부채비율이 낮을수록 재정건전성이 좋은 것’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에 “재정건전성을 위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적당한 부채비율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성장률과 정부 부채(국채)의 이자비용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24개 선진국 가운데 국채를 활용한 재정 비용이 가장 작았던 나라라는 것이 이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는, 국채를 발행해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폈을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회를 박탈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가정에선 수입이 줄면 지출도 줄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정부 살림은 반대다. 내수가 안좋아 수입이 줄면 지출을 늘려야 경기가 살아난다는게 국가재정 운용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은 낮아졌지만 복지 수준은 반대로 높아졌다. 한국은 ‘부담률이 높아져야 복지가 확대된다’는 편견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경제 위기가 닥치자 지출을 늘려 복지를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2018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OECD 국가의 조세부담률과 복지수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폭락이 시작된 1990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국민 조세부담률은 대폭 낮아졌거나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같은 기간, 일본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은 2배 이상 확대됐다. 그 결과, 일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50%를 넘어섰다.(한국은 47%) 정부가 부채로 지출을 늘리며 경제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전 정부 실책을 과장하고자 현재 부채 수준을 지나치게 높다고 과장하는 것은 근거를 찾기 어려운 주장에 불과하다”며 “부채가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적 수준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도록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윤석열 정부 국가재정전략 진단과 평가 긴급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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