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치사에서 갖는 위상과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군사독재 시절 정치투쟁의 선봉에 서면서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고, 그 이래로 민주당은 정치 진영의 왼쪽을 대표하는 거대한 축을 담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2년 전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획득한 이후 작년 보궐선거와 올해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까지 연달아 패배하면서 큰 위기에 직면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위상 정립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그러한 국민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가깝게는 8월 말 전당대회, 멀게는 2년 후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연패 뒤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평가 시간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자아 성찰 입장문에 으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위선’, ‘기득권’ 등의 단어도 어김없이 반성의 지점으로 등장했다. 모두 집권 시절 여권의 이중성을 비판받으며 붙은 꼬리표다. 이른바 ‘조국 사태’부터 당내 인사들의 부동산 논란, 권력형 성범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투기 의혹 등이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 안전하고 행복하도록”, “민주주의 세력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목표를 품고 국회에 입성한 교사 출신 비례대표 강민정 의원은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며 퇴보한 민주당의 모습에 수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특혜, 비리를 해소해줄 거라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었는데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상황에 연달아 직면했다”고 떠올렸다.
강 의원은 민주당의 정치에는 ‘세밀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언론 프레임에 끌려다니는 경향’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일례로 의원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공정’에 대해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반문했다. 그는 “앞뒤 과정을 딱 떼어내고 절차의 공정성만 집중하게 만들어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을 강화하는 역작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30세대 청년들이 해소를 바라는 현안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엉켜 있는데 ‘공정’이라는 모호한 프레임이 “청년 문제를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07.11 ⓒ민중의소리
사회적 약자의 편에 기울기보단 기득권과 쉽게 타협한 면이 있다며 “개혁도 못했고, 민생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고도 평가했다. 강 의원은 정치개혁, 언론개혁, 차별금지법 등에서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민주당에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법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민주주의 토대를 만드는 부분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며 낙제점을 줬다.
앞으로 민주당이 “실제 당사자와 현장을 결합해 듣고, 직접 해법을 찾는 방식”의 활동을 늘려가야 한다는 게 강 의원의 생각이다. 그는 1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현장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강 의원은 “극단의 상층부와 다수의 취약계층, 불평등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합리적 중간’이라는 건 없다. 다수의 약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갈 수 있는 걸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그동안 약자의 이익을 철저히 엄호하고 지키는 정치 행위를 해왔는가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선거 패배 뒤 민주당 의원들이 “민생 무한책임 정당”을 결의한 만큼 강 의원은 당내에 사회 불평등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자리가 활성화되고, 입법에 대해서도 종전보다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민주당이 제시할 수 있는 건 약자를 지지하는 정책을 많이 펴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다음은 강 의원과의 일문일답.
- 민주당이 강조하는 ‘민생’이 정확히 무엇인지, 공감하지 못하는 여론이 있다. “부동산 정책이 정확하게 방향을 잡지 못하고 결국 실패한 정책이 되면서 민주당이 하는 모든 민생정책의 평가를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로남불’ 지적이 많은데, 이건 민주당 정책에 대한 프레임이기도 하고, 종합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당내에서도 반성하고 평가하고, 혁신이 필요한 부분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 국민이 민주당을 기득권 정당으로 인식하게 된 일화를 하나 꼽는다면. “대표적인 게 조국 사건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는 정치집단’이라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었는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누린 특혜가 실제로 민주당 구성원 사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며 국민이 많이 실망하게 됐다. 그게 ‘내로남불’의 시작이다. LH 사건도 마찬가지다. 행정부 권력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가 수면 위로 올라온 건데, 적어도 민주당 정부라면 ‘공기업 내 특혜와 비리를 해소해 줄 거라는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거다.”
- ‘기득권 정당’, ‘위선적인 정당’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민주당이 기득권화됐다는 인식을 많은 국민이 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쭉 이어지며 ‘기득권 집단으로서의 민주당’ 이미지를 강력하게 만든 거 같다. 현실 정치의 간극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메우는, 민주당 강령에 적시된 가치를 실제 의정활동으로 실천해나가는 변화가 필요하다.”
- 요즘 사회 화두 중 하나가 ‘공정’인데, 어떻게 바라보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단순히 ‘절차적 공정’이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게 오히려 사회의 불공정을 강화하는 역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절차가 적용되는 토대 혹은 절차를 적용하기 이전 단계에서의 조건부터 결과까지 모두에 공정함이 실현되고 있는지 전체를 봐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화두가 된 공정은 앞뒤를 딱 떼어내고 중간과정에서 절차의 공정성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식의 왜곡된 공정 개념을 우리 사회 시대 가치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이런 공정 프레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건 민주당의 문제 중 하나다.”
- 2030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나. “그렇다. ‘2030 청년의 공정’이라는 네이밍도 바람직하지 않다. 청년들이 느끼는 다양한 절박한 상황이 있다. 정치권이 해결해야 한다. 고(故) 김용균, 이선호, 구의역 김 군의 이야기도 청년의 문제다. 여러 가지 부분들에 주목해야 한다.”
- 민주당이 민생우선실천단을 발족하고, 을지로위원회를 재가동하며 현장 밀착형 일정을 늘리고 있다. “제 경우에는 민생우선실천단 장애인권리보장팀에 있는데 지난주 월·수·금요일을 장애인과 관련한 현장에 있었다. 이전에는 주로 말로 정치했다면, 이제 실제 당사자와 현장을 결합해 듣고, 직접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 민주당은 주로 선거 국면에 장애인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번 활동은 앞선 것과 어떤 점이 다른가. “진정성을 갖고 장애인의 권리를 확대하겠다는 당의 의지가 밑받침된 활동이다. 그동안은 장애인에게 관심이 있거나 당사자성을 가진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장애인 권리 보장 문제를 당의 해결 과제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입법 활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나갈 거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07.11 ⓒ민중의소리
“이재명 후퇴 아쉬워...대선에서 남은 건 ‘소확행’뿐”
- 윤석열 정부의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증원’ 정책이 지방대학소멸 위기를 심화하는 갈등 요인이 됐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집권 세력의 너무나 천박한 교육관이다. 철저히 경제 종속적이고 시장주의적인 교육관이다. 반도체 인재가 정말 필요하다면 지방대학에서 인재가 양성되도록 집중 지원하고 투자해 ‘윈윈’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런 사고 자체를 않는 게 놀라울 뿐이다.”
-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에 사용되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떼 대학 교육에 충당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아이들 수가 줄었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 예산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하는 건데, 문제다. 아이들 수가 줄었다면 거꾸로 아이들 하나하나가 가진 중요성을 생각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지원해야 한다. 군인 수가 준다고 국방예산을 줄이지는 않는다. 정부의 교육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교육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나 자기 철학, 정책 의지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교육 혁신에서 중요한 부분은 거의 손을 못 댔다. 교육 문제를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잘못 건드리면 득표에 불리한 문제 정도로 인식했던 게 아닐까 싶다.”
- 문재인 정부 시절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 방식에 대한 비난,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청소노동자 소송 건 등과 같은 사회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일련의 사건은 사회자원 배분 문제에서의 불균등성이 근본적인 원인인 거 같다. 너무 각자도생이고, 치열한 경쟁이 격화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익이 커지는 건 ‘내 이익을 뺏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됐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불평등 해소에 집중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다. 민주당이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약자를 지지하는 정책을 많이 펴는 방법’밖에 없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 등 후퇴는 철저히 반대해야 한다. 다수의 저소득층 계층을 부양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 불평등 해소법으로 꼽히는 대안들은 왜 민주당의 당론이 될 수 없을까. “임대차 3법이 당론이었는데, 현실에 안착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민주당의 실력이 부족했다. 현실에 안착시키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설계했어야 했는데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정부 정책이 불안전한 방식으로 설계되며 부작용이 터져 나왔을 때 이럴 해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비정규직 철폐는 소위 ‘인국공 사태’ 트라우마가 너무 강렬하게 작용한 면이 영향을 미친 거 같다.”
- 이재명 전 대선 후보는 ‘불평등 완화 정책’에 강점을 보인 인물로 평가받았는데 선거 과정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민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이재명 의원에 대한 그런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대선에서 이 의원이 제시한 우리 사회의 비전이라는 건 명확히 없고, 남은 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뿐이다. 선거가 끝나고 많이 아쉬웠다. 불평등 문제를 직시하고, 불평등 완화에 앞장선 삶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분인데 대선 과정에서 그 부분이 뒤로 밀리고 희석됐다. 좀 더 명확했다면 훨씬 더 강력한 지지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이재명과 윤석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사람들에게 (이 후보의 후퇴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07.11 ⓒ민중의소리 “정치개혁 뭉개면 국민 불신 회복 어려워...다당제 위해 선거제도 바꿔야”
- 민주당 선거 평가 과정에서 어떤 의견을 냈나. “민생 개혁도 제대로 못했고, 정치개혁도 제대로 못했다. 이분법적인 선택적 반성 말고 총체적인 한계를 짚어야 한다고 했다. 민생 개혁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예로 들면, 현실적 타협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재해의 직접 피해자인 다수의 노동자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이익을 얼마나 최대치로 관철하려고 했는지에 관해 문제의 여지가 있다. 더 할 수 있었는데 쉽게 타협한 부분이 있다.”
- ‘거대양당 체제’ 정치개혁은 번번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선거 연패를 통해 국민에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실한 경고를 받았다. 정치개혁을 지금처럼 뭉개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돌파구를 내지 않으면 현재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회복하기 어렵다. 부분적으로 파열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 민주당은 진보 진영 군소정당과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할까. “진보 진영 군소정당이 정확히 제 자리를 잡고 훨씬 더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 나가는 건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 요구가 정치권에 반영되기 위해 진보 진영 정당들이 건강히 뿌리내려야 한다. 민주당과는 각각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되, 협력할 부분과 독자적인 의견을 낼 부분을 충분히 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은 그동안 민주당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다른 당과의 협력에 있어서 절실함,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당제가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부터 앞장서야 한다. 그 맥락에서 위성정당 방지법도 통과시켜야 한다.”
- 앞으로 민주당은 어떤 정책 노선을 확고히 해야 할까. “약자의 이익을 지키고 엄호하는 노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정책 생산 능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권한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민주당의 강령 가치를 확인하고, 정치적 존재 이유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다시 좌표를 잡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 불평등 해소가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주거·의료·교육 등 삶의 필수제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민주당의 원칙이 나와야 한다. 못 가진 사람끼리 싸우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