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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보호” 전력공사 국유화하는 프랑스…윤 정부는 반대로

민영화 논란 기름 부은 한전 지분 매각…공공성 훼손 우려 크고, 재무 개선 효과 미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APR1400 원자력발전소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2022.06.22. ⓒ뉴시스

프랑스가 전력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코로나19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한국은 정반대로 간다. 한국전력이 재무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출자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 민영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공공성 훼손 우려가 나온다. 재무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해 에너지 가격 변동성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3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일 전력공사(EDF) 재국유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 보유 EDF 지분을 기존 84%에서 100%로 늘린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국유화 방안과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EDF 재국유화에 대해 에너지 주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EDF는 2000년대부터 부분적인 민영화와 상장이 이뤄졌다. 이후 정부와 민간 주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갈등을 겪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물가 상승 국면에서 전력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민간 주주 요구를 정부가 거부한 게 대표적이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EDF 재국유화를 발표한 자리에서 “유럽의 문 앞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평화라는 게 얼마나 취약한지 일깨워준다”며 “치솟는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전역에서 전력 공기업 국유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공공서비스노조연맹(EPSU)은 EDF 재국유화에 대해 “필수 공공 서비스를 자유 시장에 맡긴 데 따른 전력 시장 모델의 붕괴를 보여준다”며 “자유화된 시장에서는 정당한 전환과 공급 안정성,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악화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에 대한 공공적이고 민주적인 통제와 소유권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민영화 바람이 분다. 한전과 자회사 등 전력그룹사는 지난 5월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한전 재무 개선을 위해 한전 자회사와 출자 회사의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실제 매각이 이뤄졌거나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한전의 출자 지분 매각은 민영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민영화 논란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이던 지난 4월이다. 인수위가 발표한 에너지정책 방향에 한전 판매 부문을 개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업이 전기를 팔도록 허용하면, 전기요금이 치솟을 우려가 있다. 국민 부담을 고려해, 필수재인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한다는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다.

새 정부는 “민영화를 검토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불식되지 않았다. 공공기관 구조조정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한전 등 14개 공공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하면서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한전이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방만 경영으로 재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출자 지분과 부동산 등 자산을 팔고 인력도 조정하라는 얘기다.

일련의 민영화 논란을 보면, 이번 한전의 출자 지분 매각도 그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6일(현지시간) 프랑스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2.7.7. ⓒAP


한전기술 지분 과반 유지한다지만…끊이지 않는 공공성 훼손 우려

주목되는 매각 대상은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이다. 주요 사업은 원전과 화력 발전소 설계다. 한전 발전 자회사와 민간 발전사가 주요 고객사다.

한전이 한전기술 지분을 매각해 민간 주주 비중이 높아지면, 수익성 추구를 위해 설계 단가를 올려받는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발전사 입장에서는 발전 단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사 오는 전력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전은 원가 상승 부담을 떠안거나, 전기요금에 반영하게 된다.

한전 보유 지분이 줄어들면서 한전기술의 사업 전환이 더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전기술 매출 비중은 원전과 석탄 발전에 치중돼있다. 지난해 한전기술이 진행한 해상 풍력 발전 단지 건설 사업과 해상 풍력 시범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 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8%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성 측면에서 재생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한전기술도 변화가 필요하다.

민간 주주는 장기 이익보다 단기 이익 위주의 사업에 집중하라는 압박하게 된다. 당장 돈이 되는 원전에 집중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수 있다.

한전은 한전기술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 공공성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한전기술 지분 65.77% 가운데 51%는 남겨두고 14.77%를 매각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사례를 들며 한전의 한전기술 지분 매각이 공공성에 미치는 영향을 역설한다. 프랑스 정부가 이미 상당 수준 지분을 보유한 EDF의 완전 국유화를 추진하는 것에서 정부의 공기업 지분 매각이 가져올 공공성 훼손 문제를 읽을 수 있다는 게 김철 사회공공성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설명이다. 그는 “50% 이상 지분을 유지한다고 해도, 매각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전의 한전기술 지분 매각을 완전 민영화 단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례가 있다. KT가 대표적이다. 정부기관으로 출발해 국영기업으로 운영되던 KT는 정부 지분이 점차 축소되더니, 정부 계획하에 2002년 완전 민영화됐다. 현재 소액주주 비중은 60%를 웃돈다. 회사 경영이 수익성 논리로 흐르면서, 통신비가 올라가고 이익은 배당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하진수 한전기술 노조위원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은 “2012년 한전기술 지분 추가 매각이 계획돼 있었으나 무산된 이후 새 정부에서 다시 추진되는 것”이라며 “KT 사례처럼 한전기술도 한전이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을 보유하다가 점차 완전 민영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도 “정부 기조가 바뀌어서 공공성을 무시하고 지분을 더 판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했다.

지난 5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전력 전력그룹사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그룹사 대표자들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회의는 6개 발전 자회사(남동, 중부, 서부, 남부, 동서발전, 한수원) 대표자들과 한전원자력연료, 한전 KDN 대표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022.05.18. ⓒ뉴시스


원전 핵심 자회사 매각, 앞뒤가 안 맞는다

한전의 한전기술 지분 매각은 재원 확보 측면에서도 모순된다. 한전기술은 견실한 우량기업으로 평가된다.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27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 AA를 부여했다. 최상위 등급 바로 아래 단계로, 원리금 지급확실성이 높아 투자위험이 낮다는 의미다.

정부가 원전 확대를 강조하는 가운데 한전기술 수익성 개선이 점쳐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첫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원전 생태계를 조속히 복원하고 일감을 조기 공급하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5일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원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 3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 정부가 줄곧 원전 확대에 대한 입장을 견지해왔던 만큼 신규 프로젝트 포함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른바 ‘원전 정부’에서 한전이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한전기술을 매각하는 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철 수석연구위원은 “한전기술은 계속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이윤이 남을 수 있는 곳”이라며 “적자 해소를 위해 매각하는 건 단기 이익을 위해 장기 이익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하진수 위원장은 “한전기술이 보유한 세계 수준의 원전 설계 기술력은 국부”라며 “당장의 재무 개선을 위해 지분을 민간에 넘기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출자 지분 매각을 통한 한전 재무 개선 효과는 전반적으로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자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원은 8천억원이다. 한전기술 매각 대금은 4천억원으로 잡았다. 최근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어, 주가 반등 추이를 살펴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는 매각 주관사 선정 과정에 있다.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경우 보유 지분 17.5% 전량에 대한 매매 계약을 최근 체결했는데, 이번 지분 매각으로 한전이 확보한 금액은 28억원에 불과하다. 한전KDN 등 비상장 자회사 지분은 상장 후 매각을 추진한다.

지분 매각을 통한 재무 개선 효과 8천억원은 한 분기에 수조원씩 쌓이는 한적 적자를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한전은 올해 1분기 7조 7,869억원의 적자를 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전 적자 규모가 2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한전의 출자 지분 매각이 ‘미봉책’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땜질 처방 말고 변동성 취약한 전원 믹스 개선해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한전 적자 핵심 원인으로 석탄 발전과 원전 중심의 전원 믹스가 지목된다. 한전 적자 핵심 원인으로 석탄과 원전 중심의 전원 믹스가 지목된다. 한전이 사들이는 전력의 발전원 중에서 석탄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수준으로 가장 크다. 신재생에너지는 8%에 못 미친다.

한전의 전원 믹스는 변동성에 취약하다. 석탄 발전 단가는 국제 시장의 화석연료 가격에 좌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했다. 점차 발전 단가가 떨어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전력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한전 재무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한전이 떠안은 부채는 정책 실패에 따른 것”이라며 “한전 재무 상태를 경영실패 탓으로 몰아가서 지분 매각과 사업 축소를 압박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이지언 활동가도 “체질 개선은 강조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화석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한전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지금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앞으로 화석연료 청구서가 계속 날아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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