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커피 생두의 할당관세와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볶은원두는 할당관세만 면제된다. 면세 효과는 생두 수입 업체,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제조업체마다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 생두에 대한 부가세 10%는 6월 28일 수입분부터 연말까지 면제된다. 생두(2%), 볶은 원두(8%)의 할당관세 면제는 7월 20일부터 적용된다.
15일 커피 업계에 따르면,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에 원두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10% 이하다. 450원 가량인 원둣값에서 8~12%를 절감하겠다는 게 이번 정책의 취지다. 최대 12%를 절감하면 54원이 깎이는 수준이다.
커피 원두 자료사진 ⓒ뉴스1
원두 12% 세금 면제분, 그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
이번 정책으로 커피값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비프랜차이즈 카페(개인 카페)다. 그중에서도 생두를 사서 직접 로스팅을 하는 곳이다. 이들은 생두를 수입 업체를 통해 구매한다. 수입 업체가 면제분만큼 생두를 싸게 팔면, 원가 절감 효과를 보게 된다. 다만, 원두는 여러 국가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품목마다 면세 혜택 적용 정도는 다르다.
생두 수입 업체는 FTA체결국, 미체결국 관계없이 다양한 국가의 생두를 취급한다. FTA체결국은 대부분 무관세다. 대표적으로 콜롬비아, 베트남, 코스타리카 등이다. FTA미체결국 중 에티오피아 등 최빈국특혜관세 0%를 적용하는 국가도 있다. 브라질, 케냐는 할당관세 대상국이다.
이번 할당관세 면제 수입국 중 브라질은 생두 수입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브라질산은 여러 국가의 생두를 섞는 블렌딩 작업에도 대량 쓰이는 대중적인 품종이다. 지난해 생두 전체 수입량 중 브라질산은 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베트남 19%, 콜롬비아 18%, 에티오피아 10% 등이었다.
한 생두 수입 업체 관계자는 “아직 관세 대상국이 많다. 전체 수입량 절반 이상은 관세 국가”라며 할당관세 면제 효과를 일부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두 수입 업체에게 부가세 10% 면제도 도움이 된다. 수입 업체는 생두를 로스팅하는 가공작업을 거치지 않아 부가세 환급 대상이 아니었다. 생두 원물은 국내 유통 과정에서 면세 농산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번 부가세 면제로 수입단가 10%가 절감되는 셈이다.
6월 28일 수입분부터 적용되는 부가세 면제는 이미 시장 가격에 소폭 반영되고 있었다. 다만, 품목마다 적용 시점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산, 베트남산 생두는 한 달에 컨테이너 몇 채씩 들여오는 인기 품목이다. 이미 6월 28일 이전에 들여온 물량을 다 소진한 경우, 새로 들인 물량부터 부가세 면제분 수준으로 가격을 내려 판매 중이다. 반면, 고가에 품질이 좋은 원두는 한 번 수입하면, 소진까지 3~4개월 또는 5~6개월 정도 걸린다. 이미 세금을 낸 품목의 가격을 당장 내리면 수입 업체는 손해를 볼 수 있다.
생두 수입 업체 관계자는 “생두 품목마다 가격을 내리는 시점에 차이는 있다. 비싼 고품질 생두는 상업적으로 잘 안 쓰기 때문에 회전율이 낮다. 면제분 적용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생두 수입 업체들이 할당관세, 부가세 면제 혜택을 모두 받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면제분 12%를 그대로 낮춰 가격에 반영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환율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생두 수입 원가에는 환율이 포함돼있다. 수입 통관 과정에서 생두 가격은 달러로 결제해야 한다. 이달 15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년 2개월 만에 장중 1,320원을 돌파했다. 지난 1월(1,202원) 대비 100원이나 올랐다.
생두 업체 관계자는 “수입 원가에는 관세, 부가세를 비롯한 환율, 물류비, 창고 보관 비용 등 다른 요소도 있다”며 “업계 경쟁이 격화되면서 마진을 깎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지만, 환율이 오른 상황에서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소포장된 커피 원두 자료사진 ⓒ뉴시스
커피 프랜차이즈·제조업체 “생두 면세만으로 커피값 못 내려”
생두를 직접 수입하는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커피 제조업체는 정부의 면세 정책 효과는 거의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주로 콜롬비아, 베트남 등 FTA 체결국에서 수입해 이미 관세를 내지 않고 있었다. 관세 대상국인 브라질산은 일부 사용하지만, 2% 세율이 애초에 크지 않아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한 커피 제조업체 관계자는 “주요 수입국 중 브라질처럼 관세를 내는 국가는 적은 편이다. 세율도 2%였기 때문에 크게 실효성이 있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도 볶은 원두를 미국(FTA체결국)에서 무관세로 들여오고 있었다. 볶은 원두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수입해 관세 0%가 대다수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부가세 10% 면제 효과는 어떨까. 커피 프랜차이즈, 제조업체는 이미 부가세 환급받고 있었다. 부가세는 최종 소비자가 내는 세금이다. 제조업체가 원료를 사서 ‘가공’한 제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부가세를 모두 환급받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가 부가세를 포함한 생두를 수입했다. 이 업체는 국내 로스팅 공장에서 볶은 원두로 만들어 각 가맹점에 판매하기 때문에 생두 수입 시 냈던 부가세를 환급 받는다. 1년에 2번 국세청에 부가세 신고를 통해 환급받고 있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부가세 면제는 업체가 별도 부가세 신고를 하고, 환급받는 과정만 없어지는 셈”이라며 원가 절감 효과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업체는 생두가 면세 농산물이 되면서 의제매입세액 공제 혜택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의제매입세액 공제는 무관세 농산물을 사서 가공해서 판매하는 사업자, 법인 등에 일부 세액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커피 업체들이 무관세로 생두를 수입해오면, 수입 가격에 부가세가 붙은 것으로 간주하고 가공해 만들어 판매한 만큼 공제 혜택을 받는 것이다. 법인은 커피 매출의 106분의 6 정도 공제된다.
커피 업계는 이번 면제 정책이 커피값을 내릴 정도의 효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커피 한 잔에는 원두 원가 말고도 로스팅 비용, 수입 물류비, 인건비, 임대료, 매장 운영비 등 제반 비용이 들어간다.
생두 국제 가격도 2배가량 올랐다. 미국 시카고 거래소에 따르면 커피 선물 가격은 1파운드(약 0.45kg)당 2020년 123.4달러였다. 2021년에는 234.5달러로 1.9배 올랐다. 올해 6월은 232.37달러를 기록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생두 국제 가격이 2배로 뛰어 관세 인하로 가격 통제 효과를 보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가격 인하보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커피값을 더 이상 올리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