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3년 만에 열린 퀴어축제

퀴어축제 건너편 맞불 집회, ‘오세훈 시장 규탄·주한미대사 지명 반대’ 주장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222.07.17 ⓒ민중의소리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대형 무지개 깃발이 서울광장 한 가운데를 뒤덮었다. 광장은 연인, 친구, 가족과 축제를 찾은 발걸음으로 가득 찼다. 날씨는 흐리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은 밝았다. 저마다 무지개 깃발을 들거나 어깨에 두르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오후 4시쯤 행진이 시작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머리와 옷이 빗물에 흠뻑 젖은 채, 참가자들은 우산을 펼치고 웃는 얼굴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2022년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이하 퀴어축제)가 열렸다. 축제는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라는 슬로건 아래 꾸며졌다.

서울광장에는 성소수자 연대와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인권 단체와 시민단체, 정당,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등 부스 총 72개가 설치됐다. 캐나다·호주·독일·미국 등 외국 대사관과 종교단체들도 각각 부스를 꾸렸다.

이날 축제는 오후 2시 환영 무대와 연대발언, 오후 4시 퍼레이드로 진행됐다. 행진이 끝난 뒤에는 오후 7시까지 서울광장 무대에서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서울시가 퀴어축제를 막으려고 했지만, 1인 시위 등 목소리를 내고 민원 넣어주신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이곳에 모일 수 있었다”며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이번 슬로건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는 우리 존재가 각자 살아가는 게 세상을 변화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내가 보잘것없어 보여도, 세상이 우리를 죄라고 해도. 동성애를 물러가라고 해도, 우리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22.07.16. ⓒ뉴시스

이날 모인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1만 3천 명이었다. 광장 내부는 앞으로 걸어 나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한자리에 모였다.

관악구에 사는 김 모 씨(30대)는 “저는 퀴어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적극 연대하고 싶다는 생각에 매년 찾아온다”며 “해방된 공간에서 함께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차별 없는 세상을 원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퀴어 축제가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중 딱 하루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안전한 공간에서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이 퀴어 축제 당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작은 시간이고, 소중한 시간이 3년 동안 못 열린 게 속상했다. 퀴어 축제 말고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들이 늘어야 한다는 감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22.07.17 ⓒ민중의소리

퀴어 축제 무대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봄 국회 앞에서 39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였던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작년 한 해 우리가 지독하게 싸웠고, 지난번 시민 여러분과 함께 단식했다. 우리가 마주한 건 정치의 참담한 실패였다”며 “ 정치는 차별금지법 제정만 못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한 현실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앞으로 더 싸울 날이 있다. 사실 평등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왔다. 우리 퀴어들이 그 평등의 역사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사회가 더욱 안전해져서 역사에 2022년은 차별금지법 제정된 해였고, 대한민국이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가 됐다고 기록되기를 바란다”며 “우리는 게이나 논바이너리(여성, 남성 등 이분법적 젠더 구분에서 벗어난 개념)도 안심하고 가질 수 있는 직업과 직장을 원한다. 성소수자가 행복한 세상은 비성소수자도 행복한 세상”이라고 밝혔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도 퀴어 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어느 곳에서도 차별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 이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며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 계속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유럽연합(EU),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판란드, 호주 주한대사도 참석해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남겼다.

기독교단체 회원들이16일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7.16. ⓒ뉴시스

서울광장 맞은편인 대한문과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예수재단, 샬롬선교회, 정의로운사람들 등 기독교·보수단체의 퀴어축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축제 입구 건너편 도로에 자리 잡고 애국가, 헤비메탈 등 음악을 크게 틀었다. ‘동성애 반대’ ‘오세훈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쳤다. 축제 개최를 허용한 오세훈 시장을 규탄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주장했다. 집회 현장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대사 지명을 반대하는 피켓도 눈에 띄었다.

퀴어축제에서는 이런 반대 집회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김유미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Q&A 활동가는 “혐오 세력을 넘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 개신교인으로서 여러분에게 빚진 게 많다. 마음 열고 자리 내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실은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정신 아닌가 싶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한 축제 참가자는 “맞불집회 단체들이 (누군가를) 혐오해도 (자신들은) 공격받지 않고, 다치지 않는 엄청난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너무 우습다”며 “성소수자는 안 된다는 구호를 들으면서 축제에 왔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어떤 권리든 차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진 길에 만난 이 모 씨(은평구·20대)는 “펜스 안에서 걸으면서 내 권리를 보장 받는다는 느낌과 동시에 혐오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경찰들이 막고 서있는데도 어떤 남성이 동성애 혐오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어쩌다가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는지 의문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6일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진행중인 참가자들이 을지로 일대에서 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있다. 2022.07.16.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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