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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사적채용 논란 권성동은 왜 이렇게 당당할까?

나는 원래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다. 개가 짖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새벽마다 닭이 운다고 열을 내서도 안 된다. 개는 원래 짖는 동물이고 닭은 원래 새벽에 우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을 뜨겁게 달군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내놓았다는 해명을 읽고 마음을 바꿨다. “개는 짖는 동물이고 닭은 새벽에 우는 동물이고, 권성동 대표는 원래 헛소리를 하는 인물이니 그걸 탓해서는 안 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멍청함이 빛나는 대목들을 짧게 살펴보자. 우선 권 대표 본인이 문제의 우 모 씨 채용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도 (우 씨가 9급으로 근무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난 그래도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에 넣었더라”라고 말한 부분.

첫째, 명색이 윤핵관이라는데 파워가 얼마나 없는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래, 이왕 사적채용을 저지를 거면 7급에 꽂아 주지 그것도 제대로 못 해주냐?

둘째, 애프터서비스 정신도 없다. 건달들도 고객(?)에게는 애프터서비스라는 걸 한다. 명색이 윤핵관이라는 자가 이왕 채용비리를 저지를 거면 7급인지 9급인지 확인까지는 해줘야지 그것도 확인 안하고 넘어갔다가 지금 와서 알았다는 게 말이 되냐?

셋째, “(우 씨가)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다. 한 10만원 더 받는다. 내가 미안하더라.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강릉 촌놈이”라고 말한 대목. 권 대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인식할 지적 능력도 없다. 강릉 촌놈이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자가 최저임금 인상에는 왜 그렇게 반대하냐?

얼버무리기 기술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도대체 왜 권성동 대표는 저런 사적채용을 저지르고도 저렇게 떳떳한가 하는 부분이다. 행동경제학자인 듀크대학교 경제학과 댄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퍼지 요소(Fudge factor)라는 용어로 그 이유를 분석한다.

퍼지(Fudge)란 ‘얼버무린다’라는 뜻의 단어다. 애리얼리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느냐? 자기의 범죄를 범죄가 아닌 것처럼 얼버무릴 자신이 있을 때 그 짓을 저지른다. 말이 좀 어려운데 이해를 위해 애리얼리의 실제 실험을 따라가 보자.

그는 미국의 명문 MIT대학교 기숙사에 잠입해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에 덫을 놓았다. 냉장고 곳곳에 1달러짜리 콜라 6개짜리 팩을 넣어두었고, 나머지 곳곳에는 1달러짜리 지폐 6장을 접시에 담아놓았다. 학생들이 무엇을 더 많이 훔치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콜라를 훔치건 1달러짜리 지폐를 훔치건 모두 똑같은 절도 범죄다. 콜라 한 캔에 대충 1달러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라건 지폐건 없어지는 속도도 비슷해야 한다. 오히려 1달러 쪽이 조금 더 빨리 없어지는 게 경제학적이다. 1달러를 훔치면 콜라 대신 더 필요한 것을 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72시간이 지나도 1달러 지폐는 거의 사라지지 않은 반면 콜라는 72시간 만에 깡그리 없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폐를 훔치는 것은 범죄다’라는 생각이 확고한 반면 ‘그깟 콜라 한 캔 마시는 게 무슨 절도야?’라고 얼버무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포스트잇이나 볼펜을 슬쩍 집으로 가져오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들이 회사에서 돈을 훔치지는 않는다. 이것도 비슷한 심리다. 돈이나 볼펜이나 회사 재산을 훔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볼펜을 들고 오는 것은 퍼지 요소, 즉 얼버무릴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일에 속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진짜 범죄자들이 이런 심리를 철저하게 이용해 일반인들을 범죄의 소굴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다. 2007년 삼성그룹 전직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문건에는 2003년 겨울 이건희가 직접 지시한 어록이 담겨 있다. 그 어록 내용이 이렇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신 요금 다양화와 소비자 권익 증진’ 긴급 토론회를 마친 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2.7.14. ⓒ뉴스1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

이게 이건희가 직접 했다는 말이다. 현금을 주면 그게 범죄인 줄 알고 받지 않는 사람들의 퍼지 요소를 이용해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으로 꽤서 삼성 편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범죄를 자꾸 얼버무리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런 얼버무림이 연쇄 범죄를 유발한다

나도 이런 경험을 숱하게 했었다. 과거 종합일간지 기자 시절 선배들 중에는 “나는 현금은 절대 안 받아. 상품권 정도면 몰라도” 뭐 이런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인간들이 꽤 있었다. 현금은 뇌물인데 상품권은 괜찮다? 상식적으로 뭔 개떡 같은 논리인가 싶은데도 이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뇌물 범죄를 얼버무린다. 그렇게 재벌과 언론은 유착된다.

한발 더 나아가보자.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이론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차를 한 대 방치해 두고 트렁크를 열어 두었다. 하지만 이 차에는 1주일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짐바르도는 같은 골목에 똑같이 차를 1주일 동안 방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렁크를 열어두는 대신 차 유리창을 하나 박살을 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 차에서 배터리와 카오디오, 내비게이션과 타이어 등을 모조리 훔쳐갔고, 훔쳐갈 것이 없어지자 차를 박살 냈다.

같은 골목에 주차를 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바로 범죄의 전염성 때문이다. 트렁크가 열린 차를 보면 사람들은 ‘주인이 트렁크를 열어둔 모양이네’라고 가볍게 지나친다.

하지만 유리창이 깨진 차를 보면? 사람들은 ‘누군가 뭘 훔쳐간 모양이네’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어차피 누군가가 저 차에서 뭘 훔쳐갔다면, 나도 좀 훔치면 어때?’라는 유혹에 빠져든다. 그래서 무심코 범죄에 가담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아니라 친구 따라 범인이 되는 것이다.

권성동 대표의 저 당당한 사적채용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첫째, 그는 명색이 윤핵관이며 여당 서열 1위(임시이긴 하지만)의 어마어마한 권력자이다. 그런 인물이 자기의 범죄를 얼버무리고, 그게 범죄가 아닌 것처럼 태연히 말한다.

“7급도 아니고 9급인데 뭐 어때?” 이러고 자빠졌는데 이게 “현금도 아니고 상품권이나 와인인데 뭐 어때?”라는 태도와 뭐가 다른가? 7급이면 범죄고 9급이면 범죄가 아니냐? 현금이면 범죄고 상품권이나 와인은 범죄가 아니냐고?

둘째, 이 엄청난 권력자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히 얼버무리고 있으니 그 뒤의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 주변, 혹은 여당 주변 인사들 대부분이 앞으로 그 범죄를 따라 할 가능성이 무지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자동차에 유리창 하나 깨놓는 것처럼 여당 실세가 인사 범죄의 물꼬를 당당하게(!) 터버렸다. 장담하는데 앞으로 5년 동안 윤석열 정권 주변에 붙어있는 자들은 저 정도 사적채용을 추진하며 아무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이 칼럼에서 이 표현을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라꼴 정말 자~알 돌아간다. 대통령실에 영부인 지인, 대통령 40년 지기 지인의 아들, 윤핵관이 꽂아준 사람들이 득실대는데 이게 사적채용이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자빠진 게 이 정권이다.내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요즘은 정말 신에게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신이시여, 부디 이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 미친 자들이 대놓고 나라를 망치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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