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19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재닛 옐런 미국재무장관과 한-미 재무장관회의 후 열린 공식만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제공 : 기획재정부
한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에 동참하기로 했다. 한국이 직·간접적으로 요청했던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는 사실상 얻어내지 못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19일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원유 가격상한제는 서방 세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제재 방안의 하나로 검토 중인 제도다. 러시아산 원유를 일정 가격 이상으로 구매하지 말자는 아이디어지만, 아직 구체적 실행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기재부는 회의가 끝난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옐런 장관은 회의에서 가격상한제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지난 1일 추 부총리와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도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옐런 장관 요구에 추 부총리는 “도입 취지에 공감한다.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동의했다. 추 부총리는 “가격 상한제가 국제 유가 및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기재부가 밝혔다.
미국은 몇 개월 전부터 상한제 실시에 동참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요구해 왔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동참 움직임이 있었지만, 러시아의 ‘에너지 보복’에 대한 우려로 실행에는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나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도 상한제 동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요구해 왔던 양국의 통화스와프는 또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추 부총리와 옐런 장관은 최근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양국 간 외환시장 관련 협력 강화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의 상한제 동참’이라는 분명한 성과를 얻은 반면에 한국은 ‘협력 강화’라는 추상적 원칙 확인에 그친 셈이다.
양국 장관은 “필요시(if necessary) 유동성 공급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필요시’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데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로 치솟으며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재부 등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에도 ‘달러 강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재 상황을 위기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한미 양국이 ‘경제 동맹 강화’를 수차례 강조하고, 외교적 부담이 있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에 한국이 동참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사실상 한국의 통화스와프 요청을 유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는 양국 장관이 “최근 환율 변동성이 증가했으나, 외화 건전성 제도 등에 힘입어 한국 내 외화유동성 상황은 과거 위기시와 달리 여전히 양호하고 안정적이라고 진단했다”는 옹색한 설명을 내놨다.
대통령의 당부도 옹색해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옐런 장관이 예방한 자리에서 “양국의 상대적 통화가치가 안정될 수 있도록 미국도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했으나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