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만민보

[만민보]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 의대 교수에서 ‘원미동 주치의’로

769번째 만민보··· “보건의료를 바꾸는 주체는 실제 의료를 이용하는 민중들이에요”

부천시민의원 조규석 원장 ⓒ민중의소리

“어디 아는 의사 없어요?”

가족이나 자신이 아프기라도 하면 이렇게 주변에 질문을 던지며 ‘아는 의사’를 찾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는 집안에 의사나 법조인 한 명쯤은 있어야 큰일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아는 의사’가 있고, 이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렇게 ‘아는 의사’를 애타게 찾는 이들에게 ‘아는 의사’가 되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바로 부천시민의원 원장인 조규석 박사다. 많은 의사가 ‘성공한 의사’를 꿈꿀 때 그는 민중들을 위한 ‘아는 의사’가 되겠다면서 순천향의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원미동 주민들의 ‘주치의’로 나섰다. 지난 19일 그를 만났다.

나를 아는 주치의가 있는 부천시민의원
“비보험 진료를 되도록 하지 않고,
환자분들이 과도한 검사를 하겠다고 요구해도
설명을 통해 꼭 필요한 검사만 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요”


부천시민의원을 찾아가는 길엔 사람 냄새가 물씬 묻어났다. 족발집, 사진관, 동네마트, 떡집, 건어물상, 생선가게, 옷가게 등이 늘어선 부흥시장 골목을 지나면 부천시민의원을 만날 수 있다. 병원 계단을 오르면 ‘나를 아는 주치의가 있는 곳’이란 큰 글귀가 제일 먼저 환자들을 반긴다. 병원 내부엔 동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사치료’, ‘수액치료’를 권하는 광고를 찾을 수 없다. 대신 광고가 붙어야 할 자리엔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 또는 상태에 대해 ‘알 권리’와 ‘진료받을 권리’ 등을 써 놓은 ‘환자권리장전’이 걸려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다른 병원들과 확연히 다른 이곳 부천시민의원의 특징은 ‘돈’이 아닌 ‘환자’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부천시민의원 입구에 있는 안내 글귀와 병원 안에 붙어 있는 환자권리장전 ⓒ민중의소리

“다른 병원과 우리 병원이 다른 점은 비보험 진료를 되도록 하지 않고, 환자분들이 과도한 검사를 하겠다고 요구해도 설명을 통해 꼭 필요한 검사만 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요. 고혈압, 당뇨, 만성 통증 등의 질환이 있는 분들은 약을 통한 치료도 필요하지만, 생활습관을 바꾸고, 운동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운동 교실을 열고,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비보험 진료와 각종 검사는 병원의 주 수익원이다. 영리에 관심을 둔 병원이라면 이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긴 힘들다. 하지만, 병원이 영리만 생각하다 보면 주민 건강은 뒷전이 될 수 있다. 병원이 아무리 많아도 주민들의 건강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말이다. 조 박사는 “부천엔 경기도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의료기관이 많습니다. 의료 자원이 풍부해요. 하지만, 의료 자원이 많음에도 음주와 흡연 비율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높고, 운동하는 비율은 낮아요. 병원은 많은 데 주민들의 건강은 좋지 않은 거예요”라고 꼬집었다.

병원은 많아도 주민들은 건강하지 않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만들고
조합원들과 함께 부천시민의원을 세우다


부천시민의원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병원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주치의’가 되고, 주민들과 함께 건강을 고민하는 병원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병원이 병원답기 위해선 병원의 운영 형태부터 바꿔야 했기에 시민들이 출자해 만든 비영리 법인인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병원을 세웠다. 때문에 부천시민의원은 환자들을 위한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운동 교실을 열고, 비급여 치료와 과도한 검사를 지양하는, 소위 돈에 연연하지 않는 병원이 될 수 있었다.

조 박사는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부천시민의원 개원시킨 주역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조합설립을 위한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조합이 만들어진 뒤엔 이사장을 맡았다. 지금도 부천시민의원 원장과 함께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이사장을 맡는 등 열심히 일선에서 뛰고 있다.

“보건의료 운동이 상층부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환자 당사자, 민중들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생각한 게 바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에요. 조합을 통해 조합원을 직접 건강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들의 건강에 대해 직접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그런 분위기 그런 걸 만들고 싶었어요.”

주민들 집을 직접 방문해 운동법을 알려주고 있는 조규석 박사 ⓒ조규석 박사 제공

조 박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600여 명이 함께 모여 출자해 2015년 조합을 만들었다. 이후 보건복지부에 협동조합 설립을 인가받고, 건강카페를 만들어 회원들을 모집하는 등 부천시민들에게 협동조합을 알리는 작업을 이어갔다. 2년의 노력 끝에 2017년 부천시민의원 개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기쁨도 잠시, 우여곡절 끝에 개원한 부천시민의원은 곧 위기를 맞았다.

“부천시민의원이 개원할 때 저는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원장은 공모를 통해 뽑았어요. 그런데 그분의 병원 운영 방향이 협동조합의 방향과 너무 달랐어요. 그런데다 병원 수익도 없다 보니 적자가 너무 커졌고, 빚도 많이 지게 되었어요, 더구나 친절을 기대한 환자들과 말다툼을 하면서 병원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지난해 12월 교수직 그만두고
부천시민의원 원장 취임
“지금은 주민들이 우리의 진심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결국, 협동조합 임시 대의원 총회를 통해 2019년 4월 개원 2년 만에 폐원을 결정했다. 이후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병원 운영과 관련한 여러 준비를 거쳐 이듬해 2월 송홍석 원장이 취임하면서 병원을 재개원했다. 하지만, 송홍석 원장이 신천연합병원 마을건강센터장으로 가게 되면서 당시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조 박사가 원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원래 2년 뒤에 퇴직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그의 활동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종문 진보당 부천지역위원장은 “조 박사는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며 위암 학회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이자 대학교수였어요. 공공의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함께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모든 걸 내려놓고 부천시민의원을 직접 맡아서 운영하시기로 한 겁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은 그의 결단은 부천시민의원이 원미동 주민들 속에 자리 잡는 원동력이 됐다.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민들이 우리의 진심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흔히 만나는 다른 병원들처럼 돈 벌려고 개원한 게 아니고, 주민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의사들이 있는 병원이라고 믿어주세요. 그러면서 환자들도 조금씩 늘고, 이제는 빚도 웬만큼 갚아서 운영도 안정적이에요.”

조합을 만들 당시만 해도 600명이던 조합원은 이제 1,600명으로 늘어났다. 조합원들은 본인 건강뿐 아니라 동네 이웃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마라톤, 근력운동, 걷기, 배드민턴, 댄스 등 여러 동아리도 운영 중이다. 아울러 건강 강좌도 주기적으로 연다. 지역 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병원에서 진료받고 감동해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등 하루가 다르게 주민들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의대에 입학해 알게 된 광주항쟁의 진실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자”며
파업 현장 의료지원 등 노동자들과 함께하다


이렇게 동네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는 의사’ 조 박사는 올해로 의사가 된 지 28년째다. 그는 과연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의사가 된 걸까? 기자의 질문에 조 박사는 “첨엔 의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1987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그 시절 많은 학생이 그러했듯이 학력고사를 치를 때까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 대입 시험을 치르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의대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5년 서울 중구 구 인권위원회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기아차 비정규직 최정명, 한규협 씨를 방문해 진료를 조규석 박사(사진 오른쪽) ⓒ조규석 박사 제공

“당시엔 전기, 후기로 나눠서 대입을 봤는데 후기 전형으로 순천향대 의대에 입학했어요. 전기엔 공대에 지원했었는데, 떨어졌거든요.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는 학과는 절대로 안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찾다 보니 결국 순천향대 의대에 지원하게 됐어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웠고요.”

의대 진학은 그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의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던 동시에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실을 깨닫고, 보건의료 운동과 진보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였다. 1987년 신입생이었던 그는 전국에 휘몰아친 민주화 투쟁과 함께 학원 민주화 투쟁의 물결을 만났다. 조 박사는 “1학년 때 과대표가 됐어요. 당시 학내민주화 투쟁이 한창이었는데, 과대표다 보니 집회에도 나가야 하고, 학내 토론에 나섰어요. 그러다가 이념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선배와 같이 사회과학 공부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선배를 만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게 된다. 바로 광주항쟁의 진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대학생들은 광주항쟁 당시 학살 사진과 진실을 담은 인쇄물을 은밀하게 돌려보던 시절이었다. 조 박사는 “광주항쟁의 진실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의학 공부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된 거죠. 착취당하는 민중과 현실을 바꾸려고 투쟁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다닐 땐 전혀 몰랐던 세계였어요. 우리나라의 모순된 역사를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뒤 뜨거운 대학 시절을 보낸 그이지만, 학업도 게을리하진 않았다. 의대를 졸업한 뒤 공중보건의를 다녀와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차례로 마쳤다. 그리고, 2001년 순천향대 부천병원 외과학교실 교수로 부임했다. 의대에 다니면서 의료운동을 접했지만, 졸업한 뒤엔 그를 이끌어줄 선배를 만나지 못하면서 조 박사는 “열심히 의학 수련만 했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익힌 의학 기술을 그는 남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가입해 활동에 나섰고,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옥쇄파업 현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치료하는 등 노동자들이 싸우는 각종 파업과 농성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아울러 연변, 라오스 등 해외에 나가 수술과 의료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가운데서도 그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의약품 지원사업이었다.

북한 방문하는 등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활동
연변 등 방문해 탈북자 위한 의료지원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활동했어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명박 집권 초기까지 북한에도 직접 방문하면서 적극적으로 함께했어요. 당시 북한이 미국에 의한 경제 봉쇄 등으로 의약품도 부족했고, 상황이 열악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도 몸을 던져 일하는 북한 의사들을 보면서 감동도 느꼈습니다.”

일례로 당시 북한에선 환자들의 엑스레이를 인화할 수 있는 인화지가 없어서 의사들이 직접 엑스레이를 몸으로 맞아가며 환자들의 상태를 봐야만 했다. 목숨을 내걸고 진료에 나선 셈이다. 대북 지원에 나선 의사들이 이런 북한 의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엑스레이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시설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교류도 이명박 정부가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끊어졌다. 대북 의료지원이 막히면서 조 박사는 중국 연변의 탈북자들을 위한 의료지원에 나섰다.

중국 연변에 의료 지원을 나가 수술을 하고 있는 조규석 박사(사진 오른쪽) ⓒ조규석 박사 제공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중국 연변에 가서, 탈북자들과 조선족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했고, 저도 같이했어요. 당시 연변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사연은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탈북한 여성들이 갈 데가 없어서, 중국 민간인 집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무국적자가 돼요.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남한으로 와도 애는 데리고 올 수 없는 상황이고,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어요. 이들을 위한 의료적 지원 활동을 했어요.”

동포들을 돕는 데 진심이었던 그는 촛불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큰 기대를 했다. 그동안 끊겼던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대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했지만, 남북의 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까지 나왔음에도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면서 아쉬워했다. 아울러 의료보건 분야에서도 약속했던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의약품 지원, 금강산 관광 등 대북 민간교류와 관련해 기대했지만, 끝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못한 채 말뿐이었어요. 대선 과정에서 공공의료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공약했지만, 이 역시도 바뀐 건 없었어요. 공공의료와 보건의료 시스템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어요”라고 지적했다.

당시 조 박사는 다시 한번 민주당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는 과거 2002년 대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도 큰 기대를 걸었지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2004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고도 ‘이제는 박물관에 가야 한다’던 국가보안법을 끝내 폐지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는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다 당시 한나라당과 야합하는 걸 보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아무리 노무현 개인이 좋아도, 열린우리당 또는 민주당의 한계는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인터넷으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제가 속한 부천 원미을지구당에서 전화가 왔어요.”

2004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진보정당 당원 활동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 안엔 지금 보건의료계가 주장하는
공공의료 정책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다 담겨 있어요”


그렇게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은 조 박사는 민주노동당을 거쳐 통합진보당, 현재의 진보당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조 박사는 진보정당의 보건의료 공약이 시대를 앞서갔다고 말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돈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무상의료와 공공의료를 실현하겠다며 50%에 그치고 있는 국가와 기업의 의료비 부담을 70%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안엔 지금 보건의료계가 주장하는 공공의료 정책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다 담겨 있어요”고 강조했다. 그가 지금까지 진보정당 당원으로 활약하는 것은 이런 진보정당의 훌륭한 보건의료 정책을 실현하고 싶은 의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정책과 이상을 직접 지역에서 실천하는 행동하는 의사다. 그리고, 그의 그런 노력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2018년엔 제12회 강희대 부천시민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시절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본인부담금 상한액 인하를 위해 거리 서명에 나섰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촛불 집회가 있었는데, 당시 의료민영화 저지도 주요한 의제로 제시됐어요. 그리고, 결국 저지하는 성과도 거뒀어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거리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어요.”

조규석 박사가 통합진보당 보건의료위원장이던 지난 2013년 의료민영화 저지 100만 인 서명운동에 나선 모습 ⓒ진보정치

이렇게 적극적으로 거리에 섰던 조 박사의 활동에 대해 이종문 진보당 부천시위원장은 “조 박사는 그동안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있으면서도 지역의 취약계층 의료지원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하였고, 통합진보당 보건의료위원장을 맡아 의료분야의 진보적 의제를 제기하고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역 활동에서 실천에 옮겼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공약엔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넘기겠다는 의도 엿보여”

조 박사는 통합진보당 마지막 보건의료위원장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보건의료위원장을 맡았고, 2년 뒤인 2014년 12월 당이 해산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후임 위원장에게 물려주지 못한 통합진보당 보건위료위원회 깃발을 부천시민의원 진료실 책장에 보관하고 있다. 깃발을 아직 놓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동네 주치의’로 활동하는 그는 윤석열 시대가 걱정스럽다. 윤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의료민영화를 말하진 않지만, 그의 발언과 공약엔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넘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꼬집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도입을 약속하며 “공공정책 수가를 별도로 신설해 더 큰 의료적 재앙이 닥치더라도 중환자실, 응급실이 부족해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는 그럴싸한 말처럼 들려요. 마치 ‘코로나19와 관련된 필수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내용을 보면 음압병실, 중환자실 등을 민간의료기관에 위탁해 운영한다는 거예요. 지난 2년간 코로나 환자의 70%를 공공의료기관이 치료했고, 나머지 30%를 민간의료기관에서 치료했어요. 그런데, 비용은 민간의료기관이 더 많이 들었어요. 환자 1인당으로 따져보면 공공의료기관보다 민간의료기관에서 치료하는 비용이 10배 이상 든 거예요. 결국, 코로나19로 민간의료기관, 특히 대형병원들이 돈을 벌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는 공공이 해야 하는 의료 영역을 민간에 넘기고, 대신 의료수가를 넉넉히 주겠다는 거에 불과해요.”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건강교육에 나선 조규석 박사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여기에 더해 최근엔 건강관리서비스를 민간회사에 넘기려고 시도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조 박사는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20일 제4차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는 민간보험사 등 비의료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서비스 대상, 제공목적, 기능 등에 따라 3개 군으로 분류해 복지부에서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조 박사는 “만성질환은 약과 생활습관 2가지가 함께 진행돼야 관리 가능해요. 하지만, 지금은 생활습관 관리엔 무관심한 게 사실입니다. 부천시민의원이 ‘동네 주치의’가 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생활습관 관리를 아예 민간에 넘기겠다는 거예요. 민간 보험과 연계한 상품까지 개발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거예요”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민간기업에 전해지게 되고, 그것이 또 다른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는 위험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의사의 위대함은 실력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냐가
아니라 환자와 그 주변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의 아픔이 돈벌이 수단이 되기 시작하면 결국 누구도 건강해질 수 없다. 조 박사는 지난해 12월 열린 부천시민의원 원장 이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저희 조합원이 밴드에 올린 글을 제가 봤습니다. ‘진짜 처방전’이라고 하는 글이었는데 한 의사가 환자를 방문해 살펴보니 그 환자분이 병을 앓는 게 아니라 지독한 영양실조여서 처방전 상자 안에 처방전이 아닌 돈을 넣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의사의 위대함은 실력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냐가 아니라 환자와 그 주변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와 그 주변을 건강하게 만들 ‘진짜 처방전’을 쓰기 위해 조 박사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부턴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방문진료 서비스도 시작했다. 방문 진료를 통해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환자의 삶 전반을 살펴 사회복지 서비스로 연계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또한,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과 함께 부천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끝으로 이런 다짐과 계획을 밝혔다.

“부천에도 성남시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을 만들려고 해요. 부천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시민발의를 통해 조례를 만들어야죠. 그러기 위해 공공병원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교육, 홍보 사업을 펼치려고 해요. 시민참여를 이끌기 위해 매달 3천 원씩 회비를 내는 후원조직도 만들고, 시민축제도 만들려고 해요. 이렇게 시민과 함께하면서 세상을 바꿔나가야죠.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분들과 당원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어요. 이런 시민과 함께, 주민과 함께하는 사업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해요. 늘 ‘민중 속으로’를 외쳐왔지만, 아직 민중과 제대로 함께하진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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