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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2년 7월, 은희영이 내놓은 좋은 음악

싱어송라이터 은희영의 첫 정규음반 [Suna]

싱어송라이터 은희영의 첫 정규음반 (Suna) ⓒ은희영 인스타그램

참으로 신기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은 어디에선가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다양한 장르에서 고르게 좋은 음악이 나온다. 그렇다고 완전히 획기적인 음악,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음악이 자주 나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모든 게 상향평준화 하는 대신 독보적이기 어렵다. 이미 많은 실험과 모색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금세 서로 배우며 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준급의 음악이 쏟아져 다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음악들이 좋은 만큼 알려지거나 사랑받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듣지, 새롭게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지금 귀 기울이면 좋을 이야기를 더 하는 게 낫다.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할 기회조차 충분하지 않다.

자, 싱어송라이터 은희영이 7월 23일 발표한 포크 음반 [Suna]를 들어보자. 재즈 기타리스트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영역을 바꾼 그는 지난 2019년 첫 EP [Groove Merchant]를 내놓았다. 그 후 드문 드문 싱글을 발표하다가 드디어 첫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Full Album, 은희영 (john eun) - Suna

음반을 들으며 가장 먼저 감지하는 느낌은 음악이 한국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9곡의 수록곡 대부분을 영어 가사로 노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세계의 모든 콘텐츠와 정보가 통합되는 추세라 국적을 나누는 일이 갈수록 무용해지지만, 은희영이 노래하고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피아노, 플루겔혼, 트롬본, 하모니카, 신시사이저, 밴조, 퍼커션까지 연주하는 음반엔 분명 영미권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음반을 레퍼런스로 삼았을 것만 같은 여운이 선명하다.

이는 비트가 느리거나 빠르거나, 소리를 높이거나 낮추거나 일관되게 작동하는 공간감과 어쿠스틱한 자연스러움 때문이고, 멜로디를 이어가는 흐름과 악기들의 개입 방식 때문이다. 음반의 사운드는 음반을 듣는 게 아니라 연습실에서 데모를 녹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수수하게 다가와 은희영의 음악을 관조하게 만든다. 그의 노래는 따라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감상하는 노래이며, 빠져드는 노래가 아니라 지켜보는 노래다.

은희영은 “쏟아지는 빗속의 나비”처럼 힘겨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마음을 소박하면서도 울림 깊게 노래하고, 견디는 삶에 대해 말한다. 챔버 팝의 질감이 배어 있는 은희영의 음악은 곧잘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노래 속의 고백을 영원과 기도의 차원으로 변모시킨다. 그 여운이 안희영의 음악을 이질적이자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들려주는 곡 ‘Doppelganger’이나 실패한 사랑을 토로하는 ‘Weak’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희영 (john eun) - Weak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다른 태도와 감각의 포장일 것이다. 은희영의 노랫말이 유사한 이야기들과 달라지는 지점 역시 그의 어법이다. 매끄럽고 정교한 연주 대신 맥없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는 은희영의 노래와 연주는 그 질감으로 자신의 음악을 감싼다. 그리고 곡마다 뽑아낸 선율은 소리의 질감이 무너지지 않게 채워주면서 노랫말을 실제의 이야기처럼 흐르게 한다.

가령 쓸쓸하고 아프게 이별을 회상하는 노래 ‘Eyes’는 안희영의 목소리와 사운드를 통해 희미해진 기억 사이에서 명징한 통증을 전달한다. 유일하게 한국어로 노래한 ‘오늘은 울지마라’에서도 은희영은 후반부의 허밍으로 자기다운 음악을 완성한다. ‘Shape Of Rain’의 후렴구에서 은희영이 여린 목소리로 흔들리며 치달아 올라갈 때 내뿜는 여운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네 심장을 다시 만들 수 있을지 말해줘”라는 마지막 곡 ‘Love's Whisper’의 노랫말 또한 아찔하다. 수수하고 무심하게 흐르는 노래가 마음을 사로잡고 좀처럼 놔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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