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무대의 감격은 ‘뒤편’에서 시작된다

무대 디자이너와 무대 제작소의 콜라보...무대는 이렇게 탄생된다

명동예술극장 ⓒ김세운 기자

관객은 무대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세계가 주는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무대의 감동은 무대 뒤편의 치열함과 파트너십으로 탄생된 것이다. 무대의 감동은 앞이 아닌 뒤에서 시작된 것이다. 관객 눈에 보이지 않는 무대 건너편에서 무대의 세계를 풍성하게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조명, 분장, 의상, 음향, 무대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엔 무대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대 디자이너다. 그들은 현실의 세계, 고전의 세계, SF의 세계, 상상의 세계 등 작품 속 모든 세계를 무대로 구현한다.

무대 구조나 공간적 디테일은 작품의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전달하는 또 하나의 무기다. 이유 없이 놓인 소품은 없다. 비뚤어진 무대 구조, 벽장을 가득 채운 책들, 무대 사이의 작은 홈 등 무대 위 모든 것들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무대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무대는 작품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고 풍성하게 만든다. 무대 디자이너는 공연에서 절대 없어선 안 되는 인물들이다.

두산아트센터 ⓒ김세운 기자

무대 디자이너의 섭외,
작품의 세계를 가장 잘 구현할 사람


공연을 떠올렸을 때 '대학로'가 익숙하겠지만, 사실 무대 디자이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대학로만이 아니다. 대학로(민간극단들)를 포함해, 재단 소속 극장·국립극단 등에서도 다양한 무대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다.

물론 민간극단, 재단 소속 극장, 국립극단 등은 제작 환경·제작비·인프라 여건 등 전혀 다른 공연 제작 환경을 가지고 있다. 1년 동안 제작하는 공연 수, 제작비, 스텝 구성 등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무대 디자이너는 '작품의 세계를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섭외된다.

민간극단과 오랜 기간 작업을 해온 한 공연계 관계자는 "작품의 결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보통 연출가가 자기와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를 데려온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작가나 연출부가 섭외되면 (그분들이) 좋아하는 스태프들이 있어서 (창작진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라며 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기획자 역시 "저는 꼭 그 디자이너랑 작업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연출이 바뀌더라도 프로덕션에서 디자이너에게 계속 작업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연출가가 기존에 합을 맞추던 디자이너와 시간이 맞지 않아서, 디자이너를 소개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는 기획자나 PD들이 공연에 구현된 무대를 보고 무대 디자이너에게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의 주목을 받아온 두산연강재단 산하 두산아트센터는 어떨까. 그간 두산아트센터는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DAC Artist'를 통해서 주목받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공연계에서 널리 주목받고 있는 이자람, 양조아, 손상규, 양종욱, 박지혜, 이경성, 여신동, 한아름, 진해정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특히, 두산아트센터는 몇 년간 진행해 온 '두산인문극장'으로도 관객들에게 유명하다. '두산인문극장'은 당해 특정 주제를 택해, 그 주제 아래 강연·공연·전시 등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두산인문극장'은 '공정'이라는 주제로 총 3개의 연극을 선보였다. 3명의 PD가 각각 한 작품씩 맡았다.

두산아트센터 관계자는 무대 디자이너 섭외와 관련해 "주요 창작자분들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하게 되면, PD와 연출님이 주축이 돼 프로덕션을 꾸리기 시작한다"며 "거의 처음에 무대, 조명, 음향 등 주요 디자이너분들도 섭외를 완료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보통 무대 디자이너분들은 연출님이 함께 하고 싶은 분이거나, 아니면 작품에 맞는 디자이너님일 수도 있다"면서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저희 측 PD님이 작품에 맞을 것 같은 분을 추천 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통 무대 디자이너분들이 본인의 색깔이 다 있다"면서 "그래서 그간 작품을 보고 이 디자이너랑 하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매칭도 많이 된다"고 덧붙였다.

'소극장판-타지' 창작과정 공유 사진 ⓒ국립극단


무대 디자이너와 무대 제작소의 관계


크레딧 속 창작진의 이름에 가려서 잘 보기 어려운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무대 제작소다. 무대 제작소는 무대 디자이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왜냐면 무대 제작소는 무대 디자이너의 무대 도안을 실물 형태로 구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 제작소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소통하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 혹은 경력이 좀 오래된 디자이너들은 보통 '자주' '항상' 작업하는 무대 제작소가 있다고 했다.

2006~2007년 즈음부터 무대디자인을 시작했다고 밝힌 정숙향 무대 디자이너는 연극 '도둑맞은 책', '조립식 가족', '가면을 벗다-뒤렌마트 오디션', 2016 창작산실 무용 '옛날옛적에', 무용 'B.C.(Before Christ)', 어린이 뮤지컬 '프린세스 마리'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 세계를 구현해 왔다.

정 디자이너 역시 자주 함께 하는 무대 제작소가 있다고 했다. 자신과 맞는 무대 제작소를 찾기 위해 몇 번의 시행착오도 겪었다고 했다. 15년 동안 무대디자인을 했는데, 지금 같이하고 있는 제작소와는 약 6년을 함께 했다고 했다.

그는 "디자이너마다 좋아하는 색깔들이 다르고 좋아하는 형태의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면서 "그러다 보니까 같이 하는 제작소의 경우 제가 도면이나 이런 것들을 넘겼을 때, '아 이 디자이너는 이 부분은 꼭 지켜줘야 하지' '이런 걸 좋아하지'라는 것들을 알고 있어서 훨씬 이야기가 빠르고 조율하는 과정도 빠르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을 때 제가 원하는 제작소랑 하자고 이야기를 한다"면서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엔 제가 제작소랑 이야기하고 정리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그래서 웬만하면 제가 원하는 제작소랑 작업해서 좀 더 그림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극 '조립식 가족' ⓒ(주)데일리창

올해 국립극단 '창작공감:연출'의 모든 무대를 디자인했던 송성원 무대 디자이너 역시 세 무대 모두 한 제작소와 함께했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의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소극장판-타지', '커뮤니티 대소동'의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송 디자이너는 "국립극단에서 했던 작품 하나 빼고 다 그 제작소랑 했다"고 말했다.

그 제작소란, 송 디자이너가 2013년 입봉하면서부터 쭉 함께해온 곳이다. 거의 10년이다. 송 디자이너는 "오래 하다 보니 제 취향도 제작소에서 알고 있다"면서 "제가 디자인하기 전에 뭔가 '저 이런 걸 만들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여쭤볼 때도 있다. 아이디어를 제작소 덕분에 좀 더 얻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관객은 완벽하게 완성된 무대를 본다. 하지만 무대가 완성되기 전까지, 무대 뒤편은 하루하루가 치열함과 타협으로 채워진다. 공연이라는 장르는 막이 오르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우 자잘한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대거 수정해야 할 일도 많이 생긴다. 창작진들이 "처음 구상한 디자인이 끝까지 간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디자이너들이 마음 잘 맞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마치 영화계에서 '천만 관객' 감독이 전작에서 마음 맞는 촬영·음악 감독 등과 계속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송성원 무대 디자이너는 "공연이 완성된 상태에서 도면을 넘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크게 수정해야 할 부분도 생긴다"면서 "그런 지점에서 친하지 않은 제작소의 경우 견적을 받은 상태에서 새로운 추가물이 생기거나 크게 수정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그걸 좀 부탁드릴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게 작업할 때 완성도도 그렇고, 제가 뭔갈 하고 싶을 때 부탁드리기도 그렇고, 이해하실 때가 많다"면서 "소통이 제일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 2021.01.18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무대의 탄생
한국 대표 무대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곳


국립극단 내 주목받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바로 '창작공감' 이다. '창작공감'은 국립극단이 지난해 '과정 중심의 동시대 창작극 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개시한 신규 사업이다. 지난해 '창작공감'에 선정된 작가 김도영·배해률·신해연, 그리고 연출가 강보름·김미란·이진엽 등이 올 초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을 만났다. 이들은 동시대 화두는 물론이고, 그간 다뤄져야 했지만 다뤄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국립극단은 프로덕션 구성 및 무대 디자이너 섭외 과정과 관련해 "'창작공감'은 국립극단의 창작극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작품개발 과정에서 참여 작가, 연출가, 운영위원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 스태프를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에 따르면 '창작공감:작가'의 경우 작가와 협의 하에 희곡을 잘 구현해줄 수 있는 연출가를 섭외하고, 이후 작가 및 연출가와 제작 주체인 국립극단의 논의 하에 공연 특성을 고려하여 창작 스태프 및 출연진 섭외, 프로덕션을 구성한다.

'창작공감:연출'은 어떨까. 연출 부문의 경우 3개년 연간 주제가 정해져 있는데, 지난해 주제는 '장애와 예술'이었다. 이 주제로 연출가들은 공통리서치, 개별리서치를 통해 각자 만나고 싶은 전문가, 함께하고 싶은 창작자들을 리서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작품개발 프로듀서 및 운영위원과 함께 미팅을 진행하면서, 각자 필요로 하는 창작 워크숍을 세밀하게 맞춤형으로 설계했다.

국립극단은 "이때 연출가들이 기존 공연 작업방식의 사고와 관점을 전환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을 목표로 창작자들을 섭외했고, 특히 '장애' 관련 작업경험이 있거나, 꾸준히 관심을 둔 분들을 우선으로 섭외했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올해 '창작공감' 총 6개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이중 '창작공감' 선정자 김미란 연출가는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으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 출연한 박지영 배우는 농인 사상 최초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그간 국립극단은 큰 규모의 무대부터 미니멀한 무대까지 다양한 무대로 관객을 만나왔다. 이태섭, 박동우, 여신동, 정승호 등 공연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크레딧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디자이너들도 국립극단과 작업했다.

특히 명동예술극장을 하나의 거대한 바닷가로 만들어 버린 연극 '만선'이나, 관객에게 스탠딩 박수 세례를 받았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 두 무대 모두 이태섭 무대 미술가의 손에서 태어났다. 무대 위에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 스카팽의 말재주와 대범함을 유쾌하게 표현한 '스카팽'은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장장 8시간에 달하는 대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투' 무대는 조수현 무대 디자이너가 맡았다.

국립극단 연극 '만선' ⓒ국립극단

국립극단의 시노그라퍼,
그리고 무대 제작소 섭외


또한 무대의 시각 전반(무대, 조명 등)을 아우르는 미술감독들의 무대 감각이 돋보였던 '산허구리'(신성희 감독), '영지'(송성원 감독), 우리연극 원형의 재발견 '불꽃놀이'(정민선 감독), '사랑Ⅱ'(누스바우머 율리아 감독) 모두 국립극단에서 탄생했다.

국립극단은 '창작공감' 이외의 작품들도 무대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과정이 비슷한지 묻자 "비슷하다"고 답했다.

국립극단은 "매뉴얼로서의 섭외기준이 있지는 않으나, 국립극단이 3개 공연장을 운영하며 연간 지속적으로 공연을 제작하기 때문에 최소한 국립극단이 제작하는 비슷한 시기의 공연에 동시에 참여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면서 "제작 일정이나 업무에 차질을 주는 환경이나 요인을 줄이고자 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매년 작품을 만드는 제작극장들은 지속적인 관계 및 계약을 맺고 작업하는 무대 제작소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무대 제작소가 섭외되는 것 역시 거의 무대 디자이너에게 달려 있다. 작품에 관한 창작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도면에 그려낸 것도 무대 디자이너고, 크고 작은 수정 요청을 바로 전달하기 용이한 사람도 무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정숙향 무대 디자이너는 "보통 프로덕션은, 디자이너가 같이 움직이는 제작소가 있다는 것을 거의 알기 때문에 '어느 제작소랑 작업하세요'라고 먼저 물어본다"며 "제가 작업하는 곳이 괜찮으면 '이번에 같이 할 수 있도록 일정 조율을 부탁드릴게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저희가 작업하는 제작소가 있는데 거긴 어떠세요'라고 묻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두산아트센터 관계자는 "극장이랑 연계돼서 계약하고 있는 무대 제작소가 있는 게 아니라, 보통 무대 디자이너분이 같이 하는 무대 제작소가 있다"면서 "무대 디자이너가 섭외되면, '제작소도 여기랑 하겠다' 이렇게 하면 진행할 수 있는 거고, 만약 예산이라든지 일정이라든지, 이런 행정적인 게 맞지 않을 때는 극장에서 제안해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국립극단은 프로덕션이 꾸려지고, 해당 무대 디자이너와 무대제작 감독이 논의하여 무대 제작소를 섭외한다"면서 "섭외하는 과정에서 제작소가 중복되기도 한다. 무대디자인이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우선 고려하며 2~3개 제작소의 견적 비교를 통해 업체를 선정하거나, 입찰을 통한 업체 선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경기아트센터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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