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나눈 텔레그램 문자(이준석 대표를 향한 내부 총질 운운)가 공개된 이후 나의 솔직한 첫 심정이 이랬다. 무능과 오만의 극치로 집권 3개월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윤 대통령이나, 혐오를 부추겨 대한민국을 트럼프 집권기로 돌려놓은 이 대표나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 싸움 구경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진 게 또 어디 있다고 이 구경을 놓칠쏘냐?
하지만 싸움 구경은 무릇 누구를 응원하면서 봐야 재미진 법.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둘 중 누구를 응원할지 대상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는데 누구를 응원한단 말인가?
그러다 며칠이 흘렀고,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나는 이번 싸움에서 이준석 대표를 응원하겠다.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하지만 나는 이준석 대표를 매우 싫어한다. 그가 조장한 공정을 가장한 혐오의 정치는 대한민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응원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가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여야 한다고 믿는 ‘우정’을 헌신짝처럼 내던졌기 때문이다.
우정의 경제적 가치
독자 여러분, 혹시 폭이 20cm 정도 되는 높은 난간 같은 데에서 걸어 보신 기억이 있으신가? 겁도 많고 균형감각도 꽝인 나 같은 사람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높은 난간이 아니라 평지에 한 20cm 폭으로 길을 하나 그려놓고 그 위로 걸어가라고 하면 못 걷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똑같이 폭 20cm를 걷는 일인데 길바닥에서 걸으면 누구나 잘 걷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난간에서 걷다 떨어지면 죽거나 다친다. 하지만 평지에서는 아무리 길을 벗어나도 다치지 않는다. 이 차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느냐 없느냐다. 안전하다는 보장만 있으면 사람은 상당히 많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 성공은 전부 내 덕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물론 어떤 사람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좋은 리더십을 발휘해 성공에 지대한 공을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성공은, 그 사람이 실패했을 때 죽지 않도록 도와준 동료들, 즉 그 안전장치에 기대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협동 경제학에서 우정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안전장치라는 것이 우정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7.26. ⓒ뉴스1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 우정의 경제적 가치를 전혀 측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숫자로 정확하게 측정은 못해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때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2013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에 실린 이탈리아 보코니 대학의 경제학과 토마소 나니치니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다. 이 연구는 매우 단순하다. 헌혈이 많이 이뤄지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정치적 선거가 실시될 경우 어떤 차이가 나타나느냐를 살펴본 것이다.
헌혈은 사회적 우정의 징표 같은 것이다. 남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과 연대해 돕겠다는 마음이 충만한 지역에서 당연히 헌혈이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나니치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사회적 우정이 충만한 지역은 정치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일단 우정이 충만한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우정이 부족한 지역의 국회의원보다 훨씬 청렴하다. 부정부패에 휘말리는 횟수나 재판에 기소되는 횟수가 훨씬 적다.
한 가지 더. 이런 지역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우정에 보답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법이 훨씬 공익적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사회적 우정이 적은, 즉 헌혈을 하지 않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지역 예산이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경향이 더 강하다. 비리 관련 범죄에 연루될 확률도 더 높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추정은 할 수 있다. 우정을 지키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는 뜻이다. 후보자가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우리 등이나 처먹을 사람인지 식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정이 강한 지역일수록 정치가 나아지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1953년 8명의 원정대가 히말라야의 K2 등반을 시작했다. 8,611m의 높이를 자랑하는 K2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하지만 산세가 험해 에베레스트보다 훨씬 오르기 어려운 산으로 악명이 높다.
8명의 원정대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다. 이들의 초반 등반은 비교적 순조로워서 7,711m 지점까지 별문제 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날씨만 좋다면 이틀 안에 정상을 찍을 수 있는 페이스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악천후가 시작됐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7,711m 지점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원 중 한 명의 왼쪽 다리 혈관에 염증이 생겼다. 춥고 높은 곳에서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이 폐로 번져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결국 대원들은 정상 도전을 포기하고 환자를 2,700m 아래의 베이스캠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K2 같은 험한 산에서 환자를 끌고 하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원 중 누구도 동료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원정대는 마취약을 투여한 환자 대원을 침낭으로 감싼 뒤 그를 업고 하산을 시작했다. 고작 몇 백m 내려가는 데 6시간씩 걸리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절벽을 내려가다가 대원 하나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대원들은 모두 밧줄로 서로를 연결한 상태. 맨 위에 있던 대원 피트 스코닝 외에 나머지 대원들은 전부 절벽에 매달렸다. 게다가 스코닝은 환자를 업고 있었다.
스코닝은 대원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했다. 밧줄을 끊어 나머지 대원들을 죽이고 환자와 자신은 살 것인지, 아니면 절벽에 매달린 대원들이 발 짚을 곳을 찾을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시간을 벌 것인지.
스코닝은 후자를 선택했다. 심지어 스코닝은 단순히 버티면서 시간을 끄는 것을 넘어 아예 밧줄로 자기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밧줄을 끊지 않는다는 결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신념, 이것이 스코닝의 의지였다. 절벽에 매달린 대원들은 스코닝의 헌신 덕에 시간을 벌어 발 디딜 곳을 찾았다. 결국 그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슬픈 소식도 있었다. 그날 밤 대원들이 야영을 위해 텐트를 쳤을 때, 업힌 채로 간신히 이동을 하던 환자 대원 아트 길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그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갑자기 닥친 눈보라에 쓸려갔던가, 아니면 자신 때문에 동료들의 목숨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길키가 스스로 눈보라 속으로 걸어가 목숨을 끊었거나. 후일 동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은 길키가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라 믿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동료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무사히 캠프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K2를 오르내리는 산악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이후에도 K2에서는 수많은 등반 사고가 발생했는데, 다른 사고에서 살아 돌아온 대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K2는 험한 산이다. 이 전설을 만들어 낸 당시 등반대장 찰스 휴스턴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등반을 시작했지만 형제가 돼서 산을 내려왔다.”
이것이 바로 주류 경제학은 측정 못하는, 그리고 우정과 의리라고는 개뿔도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우정의 경제적 가치다. 내심으로는 ‘아무나 이겨라, 아니 그냥 둘 다 망해라’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나마 이번 싸움에서 내가 이준석 대표를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자기의 당선을 돕기 위해 헌신했던 이 대표를 보기 좋게 걷어찼다. 이런 행태가 자꾸 용인이 되면 이 사회는 우정의 경제적 가치를 포기하는 슬픈 사회가 돼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 하나 묻자. 혹시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자기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가? 웃기고 자빠진 거다. 당신의 성공은 간신이건 악신이건 당신 옆에서 당신을 도운 공동체의 협업의 결과다. 윤 대통령은 그 한 축을 지금 걷어차고 있는 거다.
의리라고는 개뿔도 없는 이자들의 행태는 그냥 그러라고 내버려 두자. 대신 우리는 우리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이 길이 끝나갈 무렵 가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늘 다독이며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 진보가 이 암흑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