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원료인 원유의 가격 정책을 두고 정부와 낙농단체의 갈등이 심화했다. 새 원유 가격이 적용되는 8월 1일에도 협상에 진척은 없었다.
하지만 낙농업계는 그동안 예고했던 ‘납유 거부’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와 협상 의사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일 낙농가는 유업체에 원유 납품을 정상적으로 이어갔다. 이날은 협상을 통해 정해진 새로운 원윳값이 적용돼야 하는 날이었다. 낙농육우협회(낙농협회)는 지난 6월부터 원유 가격 결정 방식을 두고 ‘납유 거부’ 투쟁 의사를 밝혀왔다. 일각에선 우유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원유 가격 협상 여부는 전년도 생산비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해 원유 생산비는 4.2% 올랐다. 생산비가 4% 이상 오르면, 낙농진흥회의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에 근거해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협상위)를 통해 원유 가격을 협상해야 한다. 협상위는 원유 생산자 단체 소속 3명, 유업체 소속 3명, 학계인사 1명으로 구성된다. 새로 정한 원유 가격은 8월 1일부터 이듬해 7월 31일까지 적용된다.
그러나 원유 가격은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두고 벌어진 갈등으로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협상 테이블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유업체 측이 차등가격제 도입 논의에 진척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다. 연간 원유 생산량은 총 205만t 수준이다. 최근 정부안에 따르면, 연간 생산량을 기준으로 음용유(195만t)는 1,100원, 가공유(10만t)은 800원으로 가격이 고정된다. 가공유 쿼터(할당량)는 제도 도입 다음 해부터 점차 늘려갈 방침이다.
원유는 그동안 용도에 상관 없이 단일 품목으로 취급됐다. 리터당 1,100원에 납품됐다. 낙농가는 같은 원유지만 용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생산한 원유 일부를 300원 낮은 가격에 넘겨야 한다.
낙농협회는 차등가격제가 농가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유 생산비의 55%를 차지하는 사룟값이 10년째 상승하고 있다. 차등가격제가 도입되면, 생산비 상승분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원유 쿼터 감축 우려도 있다. 낙농가는 유업체에 원유를 최대 222만t까지 납품할 수 있다. 2014년부터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유업체의 구매 여력을 고려해 실제 납품하는 쿼터량은 점차 줄었다.
2026년 FTA 체결로 미국, 유럽산 치즈와 음용유 관세가 철폐된다. 현재 미국, 유럽 등지에서 들여오는 가공유 수입량도 늘고 있는데, 관세가 없어지면 더 저렴한 수입산(400~500원 수준)을 쓰지 않겠냐는 게 협회 측의 지적이다.
우유 자료사진 ⓒ뉴시스
정부, ‘낙농제도 개편·원윳값 협상’ 논의 중단 선언
지난달 28일 정부가 낙농협회와 대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지난달 차등가격제 도입을 위해 낙농가를 상대로 지역 설명회를 두 차례 열었다. 설명회는 지난달 26일 경기도, 27일 강원도에서 진행됐다. 당시 경기도는 농가 3명, 강원도는 1명이 설명회에 참석하는 등 저조한 참석률을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낙농제도 개편과 원유가격 결정을 위한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농가의 저조한 참석률에 낙농협회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봤다.
반면, 낙농협회는 그동안 정부가 낙축협조합장 간담회, 낙농진흥회 이사회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협회 패싱’에도 참아왔는데, 정부의 논의 중단 선언은 갑작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가 도별 설명회를 사전에 알리지 않아, 지회별 일정을 파악해 설명회에 적극 참여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경기, 강원 설명회가 긴박하게 진행돼 참석률이 저조했다. 농식품부가 협회의 방해로 오해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27일 당국자에게 충분히 해명했다”며 “원유 가격 협상은 시작도 안 헀는데 뭘 중단하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낙농육우협회 충북지회가 19일 충북도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용도별 차등가격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22.07.19 ⓒ뉴시스
정부 “낙농협회와 갈등 오래가지 않을 것”
정부는 낙농협회와의 논의 중단 상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비가 올라 낙농가들에게 새로운 유대 적용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설명회를 둘러싼 갈등이 있기 전, 차등가격제 도입에 대해 일부 협의하려는 낙농협회의 움직임도 있었다.
다만, 정부는 용도별차등가격제 도입과 원유가격 협상 논의 재개 여부가 낙농협회에 달렸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뢰문제가 해소되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낙농협회가 설명회에 적극 협조하고, 차등가격제 도입 반대 집회를 중단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헀다.
이어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면 원유 쿼터 감축, 소득감소가 발생한다고 낙농협회 측이 왜곡해서 농가에 전달한 내용 시정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낙농협회는 차등가격제에 반발해 지난 2월 16일부터 국회 앞 농성 투쟁을 168일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충북, 충남, 경남. 강원 등 각 지역별로 궐기대회와 우유반납 투쟁을 포함한 전국 릴레이 집회도 열고 있다.
낙농협회는 당장 납유 거부를 벌이진 않았지만, 이번 정부의 대화 중단 선언에 대해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