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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 5세 입학’ 정책에 분노한 엄마 “대통령과 장관은 현실을 하나도 몰라요”

[만5세 취학 논란②] ‘세 아이 엄마’ 윤소은 “만 5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이건 모두가 불행해지는 정책”

서울에서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소은 씨와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7월 29일 금요일 오후, 갑자기 뜬 뉴스에 엄마들이 크게 술렁였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1년 빨라진다"는 제목만 나온 속보 기사였다.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일부 조기 입학이나 빠른 년생의 입학을 얘기하는 게 아니겠냐며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잠시 뒤 내용이 보강된 기사들이 추가로 나오자, 분노의 댓글이 쏟아졌다.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온다며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글을 쓴다는 엄마들도 많았다. 평온한 금요일 저녁이 순식간에 혼란의 금요일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윤소은(43)씨도 그중 한 명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사 준비로 정신이 없던 날, 친한 학무모들이 모인 단톡방에 올라온 뉴스 링크를 본 윤 씨는 "이게 대체 무슨 얘기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평소 정치와 관련된 민감한 얘기는 일부러 피하는 분위기의 단톡방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날 선 메시지들을 연달아 주고받았다고 한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난 윤 씨는 "저는 원래 조용히 일상생활만 하는 사람인데,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밝혔다.

정치 얘기 조심스러워하던 엄마들 단톡방도 불났다
"만 5세가 학교를? 정말 말 안 되는 정책"

교육부 학제개편안이 발표된 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 ⓒ네어버카페 '맘스홀릭 베이비' 캡처

윤석열 정부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정책은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 뒤 공개됐다. 박 장관은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르면 2025년부터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입학 연령을 1년 낮추는 방안을 보고했고, 윤 대통령은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은 일절 없었다. 정책이 발표된 뒤 거센 반발 여론에 직면하자, 박순애 장관은 '4년이 너무 빠르다면 12년에 걸쳐 입학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대안 아닌 대안을 내놨다. 정부는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다.

윤소은 씨는 중학교 2학년인 첫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딸,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살의 아들 등 3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만일 이 정책이 실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목표는 2025년부터 시행되는 것이어서 윤 씨의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윤 씨는 이번 정책 발표로 벌써부터 걱정의 날을 보낼 다른 엄마들을 생각했다. 그는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자신의 육아 경험에 비춰보며 "만 5세에 학교를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만 5세가 초등학교에 간다? 학교는 정말 아비규환이 될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들 중에서 대소변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어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의 경우 입학 초기 기저귀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또 그 나이에 40분을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계속 돌아다닐 테고, 수업과 관련 없는 말을 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많이 혼낼 수밖에 없겠죠. 그러면 반 분위기도 당연히 안 좋아질 테고요. 이건 정말 모두가 불행해지는 정책이에요."

초등학생들 자료사진. 본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스1

사실 윤 씨는 만 5세의 막내 아이가 상대적으로 발달이 더뎌 초등학교 입학을 한 해 늦추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딸을 두 명 키우고 아들을 키워보니, 같은 나이임에도 남자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이 늦다는 걸 체감했다고 한다. 윤 씨에게 '지금 만 5세의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면 어떨 것 같나'라고 묻자 "너무 스트레스받을 것 같다"며 "아이가 당장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 아들만 봐도 익숙한 글자만 읽지, (수업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하게 읽지를 못해요. 다른 만 5세 아이들도 ㄱ, ㄴ을 모르는 애들이 많아요.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에서도 한글을 배우지만 아이들이 안다는 전제로 빨리 진도를 나가거든요. 아이들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해도, 연초에 태어난 아이들과 연말에 태어난 아이들의 발달 차이가 엄청난 데, 학교 수업은 뒤쳐지는 아이들 기준으로 수업을 나가지 않잖아요. 그러면 이 엄마들은 한글부터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멍하게 있다가 올 게 뻔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당장 한글 사교육부터 활발해지지 않을까요."

정부는 해당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유에 대해 조기에 아이들을 공교육에 편입시켜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지적한다. 윤 씨도 "정말 하나도 모르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지금도 좋은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아요. 영어 학원은 기본이고요. 1년 빨리 입학한다면 사교육비가 더 들면 들었지, 덜 들지는 않을 거예요. 이제 (초등학교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과목별로 붙여야 하니까요. 한글을 잘 모르는 애들이라면 한글 학원도 보내야 할 테고, 한글을 모르는데 수학을 잘 할 수 있겠나요. 당연히 수학 학원도 보내야 하고요. 다 같이 1년 빨리 사교육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한국에서 교육 문제 굉장히 민감한데
느닷없는 정책 발표 이해 안 돼,
반대에도 밀고 나가면 어쩌나 걱정"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7.29. ⓒ뉴시스

학부모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뒤늦게 파악한 정부는 부랴부랴 공론화 절차에 나서고 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목적의 의견 수렴이 잘 될 리 만무하다. 당장 박순애 장관은 학부모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설익은 교육 정책의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며 눈물을 흘린 학부모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려다 오히려 지탄을 받았다.

정부는 오는 9월 학제 개편안에 대한 대국민 수요조사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문가 토론회, 국회 논의 등 공론화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시행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학무모들의 불안은 앞으로 반년가량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이라도 공론화 절차에 나섰으니 다행인 걸까. 윤 씨는 정부의 태도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교육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 아닌가요. 그런데 공약에도 없던 정책을, 그것도 교육의 근본을 뒤흔드는 정책을 이렇게 느닷없이 발표한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물가도 오르고, 금리도 오르고, 코로나도 다시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는데 이게 방아쇠를 당긴 것 같고요.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반대한다면 빨리 이 정책을 철회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잖아요. (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학부모들이 반대하지만 그냥 하겠다'는 식으로 밀고 나가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들어요."

끝으로 윤씨는 설익은 교육 정책 대신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 정책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저에게 필요한 교육 정책은 온전히 그 아이에 대해서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한 명의 선생님이 너무 많은 아이들을 맡고 있어서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 줄 수가 없는 구조잖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는 더 많은 선생님을 뽑아서 선생님 한 명이 적절한 학생 수를 맡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정말 맞지 않는 얘기라,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정말 이민 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이런 마음을 정부가 잘 헤아렸으면 좋겠네요."

3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저지 릴레이 집회에서 용인에서 온 어린이들과 어머니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2.08.03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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