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은 4일 오후 첫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찬반 의견을 들었다. 졸속으로 추진된다는 비판에 직면한 대통령실의 ‘국민제안 TOP10’ 온라인 투표에 이어 정부가 규제심판회의 안건으로 올리면서 의무휴업 제도는 뜨거운 논쟁 대상이 돼 지속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SNS에 글을 올려 규제 완화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도 “규제를 넘어서는 안 될 금도로 생각하여 논의조차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의무휴업 제도 폐지 논의를 계속 끌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월 2회 반드시 휴업해야 하고 자정부터 10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한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는 지난 2012년 도입됐다. 당시에 비해 지금의 유통산업 환경이 적지 않게 달라졌지만 소상공인이나 마트 종사자들에게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했다 해도 대형마트의 휴업일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영업 기회를 보장해주는 효과가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는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여러 제도의 하나다. 효과가 약해졌다는 이유로 아무런 대안 없이 하나둘씩 빼면, 소상공인을 보호해주는 제도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대형마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지금의 제도는 필수적이다. 당초 이 제도가 도입된 배경은 마트 노동자의 휴식권 때문이었다. 대형마트가 아무런 규제 없이 일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심야 영업까지 하며 노동자들을 극단적 과로 상태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의무휴업 제도가 없어진다면 쿠팡 노동자의 과로사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120시간 노동’이 대형마트에서 먼저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의 효과가 도입 당시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영계는 이를 근거로 지속적으로 폐지를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부들은 대체로 조심스런 태도를 유지했다. 소상공인이나 대형마트 종사자에게는 영업제한이 제한적이나마 일종의 버팀목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를 과감하게 공식 논의 선상에 올려버렸다. 윤석열 정부가 이전에 비해 사뭇 다른 점이다.
정부가 영업제한 규제를 ‘소비자 선택권 대 골목상권 보호’의 구도로 몰고 간 것도 문제다. 경영계 등 규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야 이런 구도를 선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구도 설정 자체가 특정 입장의 반영일 뿐이다. 소비자 후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소비자는 다른 한 편으로는 노동자나 소상공인 또는 그 가족 구성원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일 뿐, 동일한 존재다. 이런 면에서 대형마트 규제는 소비자 선택권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대형마트 자본과 경영계, 그리고 이에 맞선 소상공인과 종사자의 대립이다. 윤석열 정부의 구도 설정 자체가 의도적 왜곡이다.
정부는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마트 영업제한 문제에서 윤석열 정부는 철저히 경영계 입장에 섰다. 정부가 일단 양측 의견을 더 듣겠다고는 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논의 자체를 멈추고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