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물었다 “‘만 5세 입학’ 대혼란인데, 윤 대통령 휴가 잘 보내시나”

교육부 수습도 역부족, 학부모들 “아이 문제에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부모들과 싸우는 일, 빨리 철회하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부모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만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한 영유아 학부모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한 학부모가 발언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2022.08.05. ⓒ뉴시스


"개미만 보고도 하루종일 좋아서 노는 아이들입니다. 개미 종류를 엄마보다도 잘 알고…"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가 한 학부모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다 눈물을 쏟아냈다. 정 공동대표는 2021년생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오는 10월 둘째의 출산도 앞두고 있다. 두 아이 모두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당사자이기도 하다.

정 대표는 "오늘은 흥분을 안 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직접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답답한 부모들이, 속상한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며 "이걸 그냥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듣지 말고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로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잠시 감정을 가다듬은 정 대표는 미처 읽지 못한 한 학부모의 얘기를 이어갔다. "개미 종류를 엄마보다도 더 잘 알고 벌써 곤충 박사가 되었어요. 아이들의 창의력이 커지는 시기를 제발 빼앗지 말아 주세요. 대한민국 어린이를 인재 키우기를 목적으로, 돈을 목적으로 학대하지 말아 주세요."

대통령은 휴가 중, 교육부 수습은 역부족
학부모 분노 키우는 정부 대응


5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모여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에 대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18개월 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유모차를 끌고 참석한 학부모부터 방학인 아이들의 점심을 해결해주느라 늦었다며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참석한 학부모까지, 다양한 엄마·아빠가 어렵게 시간을 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은 교육부의 학제개편안이 발표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학부모와 교원단체 등 전 사회적인 반발에 직면한 교육부는 뒤늦게 공론화 과정을 밟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직접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한 주 여름휴가를 떠났다. 지방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 자택에 머무르는 윤 대통령이 이번 혼란에 내놓은 입장이라고는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각계각층의 여론을 들어보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학부모들의 분노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정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국민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하는데 이게 지금 제대로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게 맞나"라며 "대통령은 휴가를 가서 연극 보러 갔던데, 우리는 이 더운 날 휴가도 못 가고 집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얼마나 편한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경기도 과천에서 두 딸을 키우는 나성훈 씨도 "지금 20만명씩 반대 서명을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휴가 기간이어도 휴가를 철회하고 와서 입장을 내던지, 장관에게 사과를 시키던지, 메시지라도 내놔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대통령은 휴가 가서 연극 보고, 교육부 장관은 (기자들 질문 피하려다) 신발이 벗겨져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통치 기능이 상실된 정부의 모습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이들 놀 시간 뺏지 말라"
아이들 놀 권리 사수 나선 학부모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부모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만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한 영유아 학부모 긴급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08.05. ⓒ뉴시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길 게 아니라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18개월 아이를 유모차를 태우고 간담회에 참석한 고지영 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경쟁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살아야 할 텐데, 그걸 굳이 왜 앞당겨야 하는지 너무 의문"이라며 "아이들이 놀 시간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밖에 없는데, 그 놀이 시간을 뺏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중학교 1학년 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어린이집 원장인 A씨는 "지난주 금요일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같이 9시 뉴스를 보게 됐다. 둘째 아이가 그 보도를 보면서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애들은 못 놀게 하는 거야? 불쌍하다'고 하더라"라며 "정말 근처에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만 5세) 아이들은 이 시기 때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자율성을 키워줘야 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자유 놀이 없이 단위 시간별로 운영이 된다"며 "이거야말로 아이들에 대한 학대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거센 반발에도 공론화는 거치겠다는 교육부,
학부모들 "빨리 정책 폐기하고 윤 대통령 사과하라"


정부의 뒤늦은 공론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당장 정책 폐기를 선언해야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2017, 2019, 2022년생 아이를 키우는 김보민 씨는 "지금 이 정책을 철회하는 게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실제로 이 나라의 미래가 달린 거고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부모들과 싸우자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물러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성훈 씨는 "공론화라는 말도 꺼내지 말고 빨리 수습했으면 좋겠다. 공론화를 위해 그 많은 비용과 혼란을 왜 감당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정책 폐기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과 장·차관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지현 대표도 "지금 밤잠 설치고 있다는 부모님들이 너무 많다. 분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서 어떻게 한 주를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다"며 "윤 대통령은 계속 국민을 이 상태로 둘 것인지, 휴가 끝나고 복귀할 때 빠른 결정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는 참석자들이 윤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했다. 한 학부모는 "K팝, K드라마, 'K' 붙으면 흥행이고 한류인가"라며 "이상한 K학년제 철회하고 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은 교육부 장관으로 새로 임명해달라"고 적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날 모인 학부모들의 의견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추가로 담아 대통령실에 전달할 예정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학부모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만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한 영유아 학부모 긴급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08.05.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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