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코인’ 광풍 속 가짜 희망보다 진짜 절망을 이야기 하는, 전윤환의 ‘자연빵’

전재산을 비트코인에 올인한 귀농 연극인은 어떻게 됐을까

연극 '자연빵' ⓒ세종문화회관

점심시간, 하나둘씩 모여앉은 회사원들 사이에서 주식·투자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바야흐로 투자 열풍 시대다. 어느 날 극단 앤드씨어터 대표 전윤환 연출가는 연극계에서도 투자 이야기가 흘러들어온 것을 눈치채게 됐다. 연극계에도 흘러들어 왔으면 대부분 사람이 다 하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강화도로 귀농한 어느 날 전윤환은 연극하며 번 돈을 모두 비트코인에 올인했다고 했다. 100만 원으로 시작한 금액이 300만 원으로 늘어나고, 추가로 넣은 돈이 다시 900만 원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계속 추락 중이라고 했다.

전 연출의 연극 '자연빵'은 전윤환 자신의 비트코인 투자기를 담았다. 하지만 평범한 투자기록이 아니었다. 상연 진행 방식이 흥미로웠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연출은 관객에게 실제 공연 수익 일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연 중앙에 위치한 화면에 비트코인 관련 창이 떴다. 그가 실행 버튼을 누르자, 어떤 관객은 '엇'하고 놀라기도 했다. 공연 내부엔 알게 모르게 코인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관객들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공연장 한가운데에서 비트코인은 들쭉날쭉 춤을 췄다. 그 속에서 전윤환은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귀농한 이유, 100년 뒤를 생각하며 쓴 영상 편지, 귀농 후 친구들과 가꾼 작은 텃밭, 텃밭에서 성장하는 잡초와 잡초를 없애기 위한 멀칭(잡초 방지를 위해 땅에 검은 봉지를 씌우는 것) 기법, 귀농 후 만난 고양이들,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이 그것이었다.

전윤환의 이야기들은 왜 우리가 비트코인이나 투자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진실을 보여줬다. 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다리가 삭제된 세계. 돈 없는 부모와 그들의 부모들을 탓해야 하는 세계. 그리고 한탕을 꿈꾸지만, 한탕에 좌절당하는 허무의 세계가 펼쳐쳤다.

그 세계 속에서, 그리고 이날 실제 무대 위에서, 전윤환은 직접 빵을 만들고 공연을 만들었다. 육체적인 허기를 채워줄 빵을 만들고, 관객들의 영혼을 채워줄 예술을 만드는 '빵과 인형극장(Bread & Puppet Theatre)'의 예술감독 피터 슈만(Peter Schumann)처럼 말이다.

관객들이 비트코인 화면 속 '죽은 고양이 반등(주식의 급락 속 일시적인 상승)을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있을 때 전윤환은 살아있는 고양이의 밥을 챙겼다.

그리고 그는 극장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한 공간 안에서 같은 감각으로 연결되는 귀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시에 공동체의 감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코인 광풍에 문득문득 균열을 일으켰지만,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자본주의 풍경은 결국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전윤환이 일시적으로 극장을 멀칭 상태로 만들었을 때, 관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전윤환의 이야기는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절망을 이야기한다. 그가 남겨놓은 절망 속에서 관객들은 요동치는 비트코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몇몇 관객들은 끝까지 비트코인 앞을 지켰다. 그리고 모든 관객이 떠난 자리엔 아이러니하게도 온기가 가득했다. 오븐 속 온기를 지키고 있는 빵처럼. '자연빵'은 그런 작품이다. 

연극 '자연빵'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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