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장 경찰 입직 전후 행적 의혹, 대학동문·노동운동 동료들 해명 요구

노동운동가→공안경찰 180도 돌변, 동료 정보 경찰에 넘기고 특채된 것 아닌가 의구심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 ⓒ경찰청 제공
 
행정안전부 내 신설된 경찰국의 초대 국장이 된 김순호 치안감의 33년 전 경찰 입직 전후 행적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치안감의 대학 동문들, 인천지역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은 당시의 경위를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하고 있다.  

6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부평갑)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 치안감은 지난 1989년 '경장 특채'를 통해 임용됐다. 당시 그는 경찰공무원법 8조 3항 3호의 '특별채용'과 경찰공무원임용령 제16조 제4항 제4호에 의거해 '임용예정직에 상응한 보안업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자' 자격으로 임용됐다. 

당시 경찰공무원 임용령에서는 '대공공작업무와 관련있는 자를 대공공작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기 위하여 경장이하의 경찰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김 치안감이 이에 해당된 것이다. 

이후 그는 1989년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에 부임한 뒤,  1990년대 초반 경사·경위 시절 경찰청 보안5과, 보안4과 등을 거치며 대공수사·보안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경정 시절엔 경찰청 보안3과 1담당을 거쳤고, 총경 승진 이후 2016~2017년에도 경찰청 보안2과·1과 과장을 역임했다. 경무관 시절엔 서울청 안보수사부장을 지냈고, 경찰국장이 되기 직전인 올해 6월부터는 경찰청 안보수사국장이었다. 경찰 내에서 계속 대공수사 및 보안 관련 업무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치안감의 경찰 입직이 대공 수사, 공작 수사와 관련돼 있고, 이후 계속 그런 경력을 살려 일해왔다는 사실은 경력을 통해 드러난다.  그렇다면 입직 전 김 치안감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논란이 되는 것일까. 

그는 1981년도에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이성만 의원실 자료와 대학 동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이 때문에 1983년엔 강제징집 대상자가 돼 군에 입대하였다. 이 의원 측은 입대 후 김 치안감이 "군 보안사의 녹화 사업(전두환 정권의 관제 프락치 육성을 위한 정신교육)대상자로 관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의원실은 군 안보지원사령부가 작성한 김 국장 관련 자료를 이관받아 관리중인 국가기록원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정보공개법에 위배돼 제공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군 제대 후 김 치안감은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그는 1년 대학 선배 최동 씨 등과 함께 1988년 만들어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부천 조직책임자로 활동했는데,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그가 핵심활동가였고 '김동진'이라는 가명을 썼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다 1989년 4월 돌연 잠적했다고 기억한다. 

치안본부는 같은해 1월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지목하고 회원들을 수사해, 15명을 구속되는 '인노회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노태우 정부의 첫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인천·부천 지역 노동운동에 큰 타격이 된다. 김 치안감의 선배 최동 씨도 이 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받았고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후 최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다 이듬해인 1990년 8월 7일 "천인공노할 치안본부의 만행을 규탄한다"고 외치며 분신해 숨졌다. 해당 사건 관련자들은 이후 끈질긴 법정 공방을 벌여 2020년 4월에야 대법원에서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었다'는 최종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김 치안감의 대학 동문들과 인노회 회원들은 김 치안감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시기와 경찰이 인노회를 수사하던 시기가 겹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의 정보를 넘기고 경찰에 특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김 치안감의 대학 동기 A 씨는 "김순호는 '김봉진'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다 89년 당시 인노회 사건으로 회원들이 잡혀 들어갈 시점에 사라졌다. 십여 년이 지나서야 주변에서 그가 경찰에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동문들도 '최동 열사가 경찰에 연행됐을 당시 경찰이 인노회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인노회 관계자들은 "독재정권이 씌운 이적단체 굴레를 벗어난 기쁨도 잠시, 당시 행적에 의혹이 가득한 김순호가 경찰국장이 되는 모습을 보며 회원들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김 치안감 대학동문들과 인노회 관계자들은 1989년 전후 그의 행적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의원도 "노동운동 중 소속 단체가 정부 탄압을 받을 시기 사라졌다가 대공수사 경찰이 되어 나타난 김순호 국장의 과거 이력은 누가 봐도 의혹을 제기할 사안"이라며 "결국 김순호 국장이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치안감은 인노회 사건에 대해 경찰에 자백한 것은 맞지만, 동료들의 신변에 영향을 미칠만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녹화사업을 통해 프락치가 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그는 전날 YTN 측에 "1989년 초쯤 북한 주체사상에 물들어가는 운동권 흐름에 회의를 느껴 고향으로 내려갔다"면서," 7월쯤 직접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가 인노회 사건 책임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또 "인노회 동료들이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이외에도 현재 김 치안감에겐 1989년 경찰 임용 당시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신임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그는 이와 관련해선 "(1994년) 초급간부 직무교육으로 신임교육을 대체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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