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는 항상 뻔한 거짓말을 한다. 실제보다 티켓이 더 팔렸고, 관객이 더 많이 왔다고 부풀리는 거짓말이다. 그래야 다음 해 협찬을 받을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페스티벌을 기록한 현장 사진이나 중계 영상을 촬영할 때에도 사람이 많아 보이는 앵글로 찍곤 한다.
하지만 올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 관객들이 유례없이 많았던 탓이다. 대개 여름에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에서는 금요일엔 관객이 적은 편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람이 몰린다. 그리고 항상 오후쯤에야 다수의 관객들이 들어오곤 한다. 반면 올해 펜타포트에서는 금요일부터 관객들이 그득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12시 반 첫 공연을 시작할 때부터 메인무대와 서브무대의 스탠딩 존에 관객들이 넘쳤다.
관객들의 수만 넘치는 게 아니었다. 반응 역시 뜨거웠다. 세 개의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질 때마다 깃발이 휘날리고 서클 핏이 펼쳐졌다. 슬램, 모싱, 기차놀이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널리 알려진 록스타의 공연 때만 환호가 쏟아지지 않았다.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 마찬가지였다. 데프헤븐처럼 국내에서 마이너한 밴드의 공연에서도 폭발적인 호응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열렬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환호하고, 온 몸을 출렁거렸다. 세련된 무대 영상과 계속 쏘아올린 물줄기는 관객들을 더 신나게 했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현장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2022
관객들의 반응은 이것이 ‘록 페스티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했다. 록 페스티벌에선 유명한 스타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날씨가 얼마나 선선한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즐길 준비가 되었는지, 관객들이 얼마나 서로의 열정을 끌어올리며 함께 불타오르려 하는지다. 올해 펜타포트의 관객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묵은 갈증을 한 번에 날리려는 듯 몰려들어 스스로 발화하고 함께 타올랐다. 누구든 그 열정에 전염되었고, 아낌없이 뛰어놀았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야외에서 열린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지난 해부터 서울재즈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 열렸다. 하지만 그 페스티벌들은 이렇게 뜨겁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예년에 비해 관객들이 줄어든 채 진행되기도 했다.
반면 올해 펜타포트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덕분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여름 록 페스티벌을 만나지 못하면서 기다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장르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여름이면 록 페스티벌에 가서 미친 듯 놀고 온다는 루틴을 수년째 실현하지 못한 이들이 작심하고 몰려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2022 펜타포트락페스티벌 현장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2022
올해 펜타포트의 라인업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의 빅스타를 다수 초대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타히티80, 재패니스 블랙퍼스트, 데프헤븐, 뱀파이어 위크엔드, 모과이를 비롯한 관록의 신구 밴드들이 포진했다. 여기에 크라잉넛, 넬, 체리필터, 자우림이라는 친숙하고 묵직한 한국의 대표밴드들이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헤드라이너로도 손색 없는 선우정아, 잔나비, 새소년, 아도이, 이디오테잎이 무대를 꽉꽉 채웠고, 스타가 된 이무진, 이승윤, 더 발룬티어스가 대중적인 라인업을 실현했다.
새로운 음악을 챙겨듣는 이들이라면 효도앤베이스, TRPP, 해서웨이, CHS, 실리카겔, 소음발광, 이랑, 우효, 더 보울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김뜻돌, 세이수미, 글렌체크의 이름만으로 벙싯벙싯 웃었을 게 분명하다. 바밍타이거가 흥을 돋궜고, 크랙 클라우드, 스킵잭, 봉제인간은 의외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헤비니스 계열의 출연진들이 좀 더 있었다면 더 훌륭했겠지만, 상투적인 출연진이 전혀 없는 라인업은 2022년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어떤 뮤지션도 허투루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관객들과 똑같이 이 무대를 오래도록 기다려야 했던 이들은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연주했다. 일부 공연이 지연되기도 했고, 하지 말았어야 할 멘트를 한 밴드도 있었지만 오랜 기다림은 관객들을 여유롭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유독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데프헤븐과 이디오테잎, 모과이를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겠지만, 울컥하게 만들었던 이랑과 재패니스 블랙퍼스트의 무대 또한 감동적이었다.
아니, 모든 출연팀들의 공연이 농익어 대동소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모든 출연팀들은 제각각 다른 음악과 예열 속도로 끓어올랐고,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고 내려갔다. 관객과 뮤지션들의 기다림과 진심이 만난 덕분에 올해 펜타포트는 예년에 없던 페스티벌, 우리 모두가 꿈꾸었던 페스티벌로 끝났다. 이렇게 즐겁고 뜨거운 페스티벌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우리는 내년에도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뛸 수 있을까.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얼마만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