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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위기론’의 노림수

발전소 확충 등 공급 중심 수급 관리 비효율성 커…의무감축 활용 강조되나, 기업 보상금 적정성은 논란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론’이 반복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집중호우로 여름철 무더위가 지나가는 듯하자, 가을철 경고가 나온다. 전력 공급이 부족하다는 우려는 발전소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공포 조장이라고 설명한다. 공급을 늘리기보다 수요를 줄이는 방식의 수급 관리 중요성도 강조된다. 대표적으로는 공장 등 대규모 사업장의 전력 사용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제도가 언급된다. 다만, 제도 참여 대가로 기업에 지급하는 보상금이 과다해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최대 전력 수요는 약 85GW다. 공급능력은 100GW다. 공급능력에서 수요를 뺀 공급예비력(예비전력)은 15GW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전력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를 이번주로 내다봤으나, 집중호우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예상보다 전력수요가 급등하지 않았다.

여름 무더위를 전력난 없이 넘길 것으로 보이자, 가을철 블랙아웃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1년 블랙아웃도 9월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블랙아웃 공포는 여름철 내내 이어지는 레퍼토리다. 지난달에는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공포를 키웠다. 지난달 7일 피크 시간 전력 수요는 93GW로 종전 최고치인 2018년 7월 24일 92GW를 웃돌았다. 공급능력 대비 예비전력을 백분율로 환산한 예비율로는 7.2%였다.

마치 예비율 10%를 최후의 보루처럼 여기는 시각이 있다. 예비율이 10%를 밑돌면 안정적인 전력 수급 수준을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달 7일에도 ‘위기’, ‘비상’, ‘블랙아웃 우려’ 등을 언급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전력 수급 안정성을 예비율로 평가하는 방식에는 근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예비율은 공급능력이 확충될수록 절댓값이 커진다. 비율로 계산하는 예비율보다는 절댓값으로 계산하는 예비력을 기준으로 수급을 관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전력 수급 대응 체계도 예비력이 기준이 된다.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예보단계는 ‘정상-준비-관심-주의-경계-심각’로 이뤄지는데, 각 단계별로 예비력 구간이 설정돼있다. 가령 예비력이 1.5~2.5GW 수준이면 경계 단계, 1.5GW 밑으로 떨어지면 심각 단계다.

전력거래소 예보단계 ⓒ전력거래소

전력피크 대응 공급 확대의 비효율성

‘블랙아웃 위기론’은 전력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전력이 부족하지 않게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소 확충을 통한 수급 대응 방식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전력 수급 대응은 연간 가장 전력 수요가 많은 8월 한 때에 초점을 맞춘다. 최대수요 시점에 전력 공급 부족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연간 전력피크 발생 시간은 50~100시간 정도로, 연중 1% 수준에 불과하다. 전력피크에 대응하기 위한 발전소는 매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동되지 않게 된다.

봄·가을철에는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 올해 4월 평균 최대전력 수요는 약 66GW 정도였다. 예비율은 34%다. 예비력은 해당 규모만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소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원전과 석탄 발전소 연간 가동률은 각각 70% 안팎, LNG 발전소는 40% 안팎이다. 발전소를 늘려 전력피크에 대응하면 그만큼 유휴 시설이 늘어나는 셈이다.

발전소는 가동하지 않더라도 일단 지으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간다. 한국전력은 발전사에 일종의 기본요금을 낸다. 발전소가 가동하지 않을 때도 1kWh당 책정된 요금을 지급한다. 이른바 용량요금(CP)이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시기에도 발전사가 도산하지 않도록 건설비용과 유지비용을 보전하는 성격이다.

원전과 석탄 발전소보다 건설 비용이 저렴한 LNG 발전소도 1GW당 순공사비만 1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발전소 건설에 따른 전력망 구축 비용 부담도 크다. 전력 소비 비중이 가장 큰 수도권에는 대규모 발전소를 세우지 않는다. 대규모 발전소는 주로 해안가에 몰려있다.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끌어오는 데는 전력망 증설이 수반된다. 전력망은 송배전을 맡는 한국전력이 부담한다. 한국전력 경영 악화가 심화하고,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

2021년 월별 평균 최대 전력 수요 ⓒ전력거래소

탈원전 공격 탓에 개점휴업 중인 수요 관리

전력 수급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발전소 투입·확충 등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무게를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전력 수요가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 날씨가 더워지고 에어컨 보급이 늘고 있다. 석탄이나 가스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이른바 전력화 확대도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고, 난방 시스템을 가스에서 전기로 바꾸는 것 등이 전력화의 대표적인 예다.

늘어나는 수요만큼 발전소를 지으면 가동률 낮아져, 공급 확대 방식의 비효율성이 커진다.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지 않고 수요를 줄이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배경이다.

대표적인 수요 관리 방안으로는 수요 반응(DR·Demand Response) 자원 거래가 있다. 전력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주는 제도다. 전력 사용 감축을 전력 생산으로 간주해, 시장에서 거래하기도 한다. 수요 반응 자원은 전기를 아껴서 만들어 낸 자원이라는 의미다.

운영 방식에 따라 자발적 DR과 의무감축 DR로 구분한다. 의무감축 DR은 전력거래소가 전력 사용량 감축을 지시하면, 각 기업이 사전에 등록한 감축 가능 전력량만큼 사용을 줄인다. 기업은 조업을 조정하거나, 냉난방을 조정한다. 자가용 발전기를 가동하기도 한다. 의무감축 DR은 전력 수요가 치솟는 여름철에 효율적으로 전력 수급을 관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감축 지시는 1시간 전에 이뤄져야 한다. 자발적 DR은 전력거래소 감축 지시와 무관하게 기업이 자율적으로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2011년 블랙아웃을 겪으면서 DR 시장 도입이 추진됐다. 특히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무감축 DR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법령 개정 등 통해 2014년 제도가 시행됐다.

의무감축 DR 참여자는 제도 시행 첫해 861개에서 올해 4월 5,021개로 6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의무감축 용량도 1.5GW에서 4.6GW로 대폭 확대됐다. 참여자 대다수는 산업체, 즉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다. 2017년 기준 산업체의 참여자 비중은 약 72%, 용량 비중은 95% 수준이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제도 활용은 미흡했다. 2018년 2월 이후 의무감축은 발동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영향을 미쳤다. 2017년 12월~2018년 2월 사이 10차례 의무감축이 발동되자, 탈원전 추진으로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겨 공장 가동을 막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기업 옥죄기’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산업부는 원전 가동 중단은 점검 절차에 따른 것으로, 에너지 전환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또한 전력 공급은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예비력을 확보한 상황에도 의무감축을 발동해 전력 수요를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의무감축은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2020년에는 예비력이 5GW 미만으로 떨어져야만 의무감축을 발동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의무감축 참여기업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였다. 기존에는 예비력에 관계없이 전력 수급 계획상 목표한 수요치를 넘으면 의무감축 발동이 가능했다.

지난해 7월에는 전력 공급 확충을 위해 원전 3기를 긴급 투입했다. 화재 등으로 정비가 진행 중이었는데, 기간을 단축했다. 신월성 1호기(1GW), 신고리 4호기(1.4GW), 월성 3호기(0.7GW) 등 당시 투입된 원전의 공급 전력은 총 3.1GW다. 예비율은 10% 이상이었고, 유사 시 의무감축을 발동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지난 7월 의무감축 발동 요건을 예비력 6.5GW로 상향했다. 올해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고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회복돼,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존보다는 요건이 완화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비력 기준을 두고 있어 전력 사용을 낮추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감출 발동에는 제한이 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2017~2018년 10차례에 걸친 의무감축 발동으로 산업체 불안이 제기돼 발동 기준 규정을 두게 됐다”며 “이후 발령 기준은 10GW로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6.5GW 수준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적기에 의무감축을 활용해 공급 중심 전력 관리의 비효율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는 “의무감축에 대한 공격 탓에 정부가 필요한 시기에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공급 확대로 대응해왔다”며 “돈을 들여가며 제도를 운용하면서도 활용하지 않은 건 문제”라고 말했다.

올해 4월 기준 거래소가 확보한 의무감축 용량은 공급능력의 4.5% 수준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전력 수급 경보 단계인 심각 단계에서 의무감축을 발동하면 정상 단계로 복귀할 수 있는 규모다.

2014년부터 2020년 하계까지 의무감축 및 시험 DR 발동 이력. ⓒ에너지경제연구원

참여 기업 인센티브 필요하지만, 타당성은 따져봐야

의무감축 제도 운용에도 돈이 든다. 의무감축이 발동되지 않더라도 기본정산금을 지급한다. 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다.

의무감축 참여 기업이 받은 기본정산금은 2018년 한 해 1,857억원에 이른다. 의무감축이 발동되지 않은 2019년, 2020년에는 각각 2,128억원, 1,985억원에 달한다.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약 7년간 지급된 기본정산금은 1조 972억원 규모다.

기업이 실제 전력 소비를 줄이지 않고서도 받아 가는 기본정산금이 과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철강 기업이 기본정산금으로 상당한 이익을 냈다. 용광로는 단시간 전력을 쓰지 않아도 공정에 큰 영향이 없어, 사전에 약정하는 의무감축량을 비교적 크게 잡는다. 한 전력 업계 관계자는 “일부 철강 기업은 코로나19 시기 기본정산금이 적자를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비판이 지속되자 정부는 2020년 기본정산금 제도를 손봤다. 기본정산금에 전력 감축 실적을 연동한 차등제도를 도입했다. 감축 실적이 없으면 기본정산금의 58%만 지급하고, 의무·자발 감축이 40시간 이상인 경우에만 100% 지급하도록 했다.

정부는 의무감축 참여 기업에 기본정산금을 지급하는 편이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설명한다. 발전소에 지급하는 용량요금은 24시간 적용되지만, 기본정산금은 의무감축 발령 시간인 평일 9시부터~20시까지(12~13시 제외) 10시간만 반영해 유지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산업부가 추산하기로 발전소 용량요금 대비 의무감축 기본정산금 비용은 연간 1,600억원 정도 싸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의무감축 참여를 유인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인센티브 지급은 필요하다”며 “유사시 실제 감축이 가능한지 연 6회 불시에 감축 시험을 진행하는 등 사업체가 대비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보상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기본정산금의 타당성을 검토할 여지가 남았다는 시각도 있다. 차등제도 도입 이후에도 총 기본정산금 규모는 2천억원 수준을 유지해 비용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정산금은 한국전력이 부담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전력 2분기 영업손실 증권사 추정치는 약 5조 3천억원이다. 1분기에는 적자 규모는 7조 8천억원 수준이었다. 하반기 비슷한 규모의 적자가 이어질 경우 연 30조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날 전망이다. 한국전력은 출자지분 매각, 부동산 매각, 긴축 경영 등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핵심 자회사인 한전기술 일부 지분과 부동산 15개소를 팔아 각각 4천억원, 1천억원을 마련하는 등 내용이 포함됐다. 미래 성장 동력을 포기하며 적자를 메우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매년 수천억원을 기본정산금으로 지출하는 모양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전력 대용량 사용자인 기업이 피크 시간에 사용을 감축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는 필요하다”면서도 “실제 전력 사용을 줄이지 않은 기업에 과도한 이득을 보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크 시간 대응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전력 수요를 줄여야 기후변화와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대응할 수 있다”며 “공장 자체적인 에너지 효율 향상 설비를 개선하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 의무감축은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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